홈 > 바라밀법회 > 바라밀법회 안내바라밀법회 안내

※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매월 마지막주 일요일에 바라밀법회를 봉행합니다.
[ 시간 : 오전 10시 30분, 장소 : 대웅전 ]


바라밀법회에 대하여

1. 들어가는 말

불교는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의지하여 기도와 수행을 통하여 스스로가 부처님임을 자각(自覺)하여 행복한 주인공이 되는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웃종교들이 완전하고 절대적인 신의 힘에 의하여 구원을 받는 타력신앙(他力信仰)이라면 불교는 불보살의 원력을 믿고 의지하는 타력(他力)과 스스로의 노력을 통하여 완성하는 자력(自力)이 겸비된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원력(願力)은 고통 속에 빠져있는 중생입니다. 마지막 한 중생까지 구제하기 위해서는 대상을 차별하거나, 선택하거나, 버리거나, 남김이 없어야 합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원력입니다.

부처님의 원력을 이어받아 자신의 완성을 위하여 노력하면서 가족과 이웃을 구제하고 이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기 위한 부단한 노력으로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를 이 땅에 실천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보살이라고 부릅니다.

백련사에서 부처님을 믿고 의지하여 기도하면서 보살의 원력을 세워 보살의 삶을 닮고, 보살의 삶을 이 땅에 실천하기를 발원하는 바라밀법회를 시작하면서 바라밀법회가 무엇이며 왜 우리들이 법회에 동참해야하는지 설명하고자 합니다.


2. 보살(菩薩)

대승불교에서 가장 이상적인 인간을 보살이라고 합니다. 보살은 부처님의 자비와 원력이 현실 속에 구체적으로 나타난 모습이며, 중생들의 앞에 중생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여 나타나신 부처님의 화현(化現)입니다. 보살의 두 가지 마음은 자비(慈悲)와 지혜(智慧)입니다. 오직 고통속의 중생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결코 한 중생도 버리지 않으시는 자비와, 마지막 한 중생까지 해탈의 길로 인도하는 지혜야말로 보살이 지니고 닦아야 할 실천덕목입니다. 자비와 지혜는 따로따로 수행하고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새의 두 날개나 수레의 두 바퀴와 같이 동시에 닦고 동시에 실천해야하는 덕목입니다.

보살은 자비와 지혜로 자신을 정화하면서 동시에 세상을 구제합니다. 보살은 그 이름만으로 희망이며 구원입니다. 보살은 원망하거나 불평하거나 좌절하지 않으며 세상을 지혜와 행복으로 선도(先導)합니다. 보살은 스스로 깨달음에 나아갈 뿐만 아니라 이웃과 대중을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하며, 괴롭고 더러운 세상을 즐겁고 깨끗한 정토(淨土)로 변화시킵니다. 팔천송 반야경에서는 보살을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보살, 이 사람은 세상을 편안하게 만들기 위하여 깨달음의 마음을 일으키고,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하여 깨달음의 마음을 일으킨다. 보살은 괴롭고 힘든 세상을 피하여 밖으로 도피하지 않고 고통과 한숨과 소외의 역사를 기쁨과 깨달음의 세계로 장엄하여 간다.”이러한 보살의 창조적인 실천을 여러 경론에서는 바라밀다(Paramita)라고 하였습니다.


3. 반야(般若)

보살의 생명은 반야(般若)입니다. 반야는 보살의 양식이며 도구입니다. 보살은 안락한 삶에 안주하는 소극적인 삶을 버리고 현실 속의 모든 어려움과 괴로움을 극복하면서 고난과 시련 속의 중생들에게 스스로 안심과 행복의 주인공임을 실천적으로 보여주는 구원자입니다. br>
반야를 번역하여 지혜(智慧)라고 합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바르게 보는 힘을 말합니다. 바르게 보는 힘, 바르게 생각하는 힘, 바르게 판단하는 힘, 바르게 실천하는 힘을 말합니다. 반야를 쓰는 사람을 부처님이나 보살이라 하고 번뇌를 쓰는 사람을 중생(衆生)이라고 합니다. 마하(摩訶)라는 말은 크다는 뜻으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보살의 적극적이고 실천적인 큰 지혜의 마음을 마하반야라고 하는데 보살이 마하반야로 자신의 수행과 동시에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적극적인 실천 활동을 바라밀다(波羅密多)라고 하는데 줄여서 바라밀(波羅蜜)이라고 합니다.


4. 바라밀(波羅蜜)

바라밀을 번역하여 도피안(到彼岸)이라고 합니다. 도피안이라는 말은 “저 언덕에 이른다.”는 말입니다. 괴롭고 불합리한 현실세계를 평화롭고 조화로운 세계로 만들어가는 적극적인 실천을 바라밀이라고 합니다. 이 언덕(此岸)은 중생의 세계이므로 어둡고 괴롭고 부자유한 세계지만 저 언덕(彼岸)은 부처님의 세계이므로 밝고 깨끗하고 자유롭고 행복한 세계입니다. 즉 바라밀이란 중생의 괴로운 세계에서 행복한 부처님의 세계로 도달하려는 보살의 적극적인 행위와 의지의 발로(發露)이며 물러섬이 없는 정진(精進)입니다. 육조스님은 금강경 서문(序文)에서 “마음이 어두우면(迷) 차안(此岸)이고 마음을 깨달으면 피안(彼岸)이며, 마음이 삿되면 차안(此岸)이고 마음이 바르면 피안(彼岸)이니 입으로 말하고 마음으로 행하면 곧 자기 스스로 바라밀이 있는 것이요, 입으로 말하고 마음으로 행하지 않으면 바라밀이 없는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몸, 입, 마음(三業)을 통하여 바르게 실천하는 것이 바라밀이라는 것입니다. 바라밀은 바른 마음을 갖게 하고 바른 실천을 하게하며 바른 성취로 인도하는 보살의 발원과 노력입니다.


5. 바라밀 수행자

보살의 원력을 세워 지혜로 실천하는 불자를 바라밀수행자라고 합니다. 바라밀수행자는 이 세상의 공간과 시간을 씨줄과 날줄로 삼아 자신과 이웃, 나아가 온 세상을 구제하겠다는 믿음과 발원으로 실천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바라밀수행자는 괴롭고 힘든 오늘을 평화롭고 희망이 가득한 내일로 전환시키기 위하여 끊임없이 발원하고 실천합니다. 따라서 바라밀 수행자에게는 게으른 마음, 싫어하는 마음, 미루는 마음, 탓하는 마음, 귀찮은 마음, 버리는 마음이 없어야 하며 항상 즐거운 마음과 물러서지 않는 정진으로 이 세상을 부처님의 지혜와 원력으로 장엄합니다.


6. 바라밀법회의 강령(綱領)

바라밀법회는 바라밀을 실천하는 불자들의 모임입니다. 불자는 항상 굳건한 신심과 원력으로 정진해야 하며 일상의 모든 일들이 부처님의 가피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깊이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라밀법회의 강령이며 불자가 반드시 법회에 참석해야하는 이유이며 책무입니다.

법회 강령(綱領)

하나, 법회는 불자의 신심입니다.
하나, 법회는 불자의 원력입니다.
하나, 법회는 불자의 정진입니다.
하나, 법회는 부처님의 가피입니다.



7. 바라밀법회의 십대발원(十大發願)

믿음과 서원을 일으킨 불자가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발원을 하게 되는데 이것을 법회의 십대 발원이라고 합니다. 법회강령이 법회의 총원(總願)이라고 한다면 십대발원은 구체적인 실천을 의미하는 별원(別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자로서 그저 입으로만 외치는 구두선(口頭禪)이 아니라 괴롭고 힘든 현실세계를 극복하고 행복하고 조화로운 세계로 만들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 활동을 말합니다.

십대발원(十大發願)

一, 모든 일이 부처님의 가피 속에서 이루어지기를 발원합니다.

- 신심(信心) -

一, 몸과 입과 마음이 불자로서 부끄럽지 않기를 발원합니다.

- 지계(持戒) -

一, 게으르거나 미루지 않고 정진하고 실천하기를 발원합니다.

- 정진(精進) -

一, 탐내거나 인색하지 않고 지족함을 알아 나눌 수 있기를 발원합니다.

- 보시(布施) -

一, 교만하거나 성내지 않고 겸손하고 화합하기를 발원합니다.

- 화합(和合) -

一, 불평하거나 험담하지 않고 감사하고 찬탄하기를 발원합니다.

- 찬탄(讚歎) -

一, 이 세상을 온갖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정토로 장엄하기를 발원합니다.

- 정토(淨土) -

一, 닦아왔던 모든 공덕을 차별 없이 회향하기를 발원합니다.

- 회향(廻向) -

一, 세세생생 부처님의 정법을 지키고 전하는 금강역사가 되기를 발원합니다.

- 전법(傳法) -

一, 모든 번뇌와 집착을 끊고 성불하여 남김없이 제도하기를 발원합니다.

- 도생(度生) -



이렇게 발원한 불자는 부정적이고 나약한 일상에서 벗어나 이 세상을 능동적이고 역동적이며 긍정적이고 창의적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8. 바라밀법회

믿음과 서원을 일으켜서 발원한 불자들이 기도하고 정진하는 법회가 바라밀법회입니다. 그러므로 불자는 법회에 참석하는 것을 생명으로 삼아야 하고 다른 사람들도 법회에 참석하여 기도하고 정진하게 해야 합니다. 불자로서 법회에 참석하지 않는 것은 불자이기를 포기한 사람입니다. 열 번이고 백 번이고 천 번이라도 청하고 권하여 법회에 나오도록 해야 합니다. 불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지 못한다면 설사 도마죽위(稻麻竹葦)와 같이 불자가 많이 있을지라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부처님은 계시지만 불자가 없게 됩니다. 불자라는 정체성(正體性)이 없으면 부처님도, 부처님의 가르침도, 부처님의 제자도 없는 무불시대(無佛時代)가 올 것이 분명합니다. 박물관 속에 박제된 부처님, 책이나 도서관에나 있는 부처님의 말씀. 아무도 나서지 않는 부처님의 제자들, 이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불자로서 법회에 나오지 않는 사람은 이미 죽은 사람과 같습니다. 바라밀법회는 기도하는 모임, 수행하는 모임, 화합하는 모임, 실천하는 모임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법회에 참석하는 일은 나와 세상을 변화시키는 작은 첫걸음입니다.

백련사에서는 한 달에 한 번, 매월 마지막 일요일에 바라밀법회를 봉행합니다. 기존 기도중심의 법회에서 법회중심의 법회로 누구라도 편하게 법회에 참석할 수 있는 가족적이고 친근한 법회가 될 것이며 불자들이 주인이 되는 자주적이고 자율적인 법회가 될 것입니다.


9. 마치는 말

“몸이 부정(不淨)하면 신장이 떠나고 마음이 탁하면 불보살이 떠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불자에게 있어 자정(自淨)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또한 그 자정은 스스로 정화(淨化)해야 하며 다른 사람의 힘에 의해서 정화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정이 없는 국가나 단체는 반드시 쇠퇴하기 마련입니다. 승가(僧伽) 또한 끊임없이 정화되어야 합니다. 물이 흘러야 정화가 되듯이 사람 또한 정화되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변하고 더러워지며 썩고 맙니다. 원활한 순환은 역동적인 노력에서 이루어집니다. 모든 불자들이 한 달에 한 번은 큰 바다가 되었으면 합니다. 바다는 모든 강물을 차별 없이 받아들여 정화시킵니다. 우리 모두 큰 바다(大海)가 되어 나와 세상을 정화합시다. 그것은 바로 바라밀법회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정성이 깃들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하물며 불보살이나 옹호성중의 감응(感應)을 받는 일은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만일 바라밀법회에 동참한 불자들의 진실한 모습과 간절한 정성을 본다면 저절로 감동하여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날 수 있도록 우리들의 생활이 신심과 정성 그리고 실천으로 이어지는 바라밀 수행자의 삶으로 승화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발원합니다.

바라밀법회 회주 승원 분향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