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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품반야바라밀경(小品般若波羅蜜經) 제 1~10권
글쓴이 : 백련사 날짜 : 2013-01-10 (목) 10:33 조회 : 2058
소품반야바라밀경.hwp (496.0K), Down : 92, 2013-01-10 10:3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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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품반야바라밀경(小品般若波羅蜜經)

소품반야바라밀경 제1권

 

후진(後秦) 구자국(龜玆國)삼장 구마라집(鳩摩羅什) 한역

1. 초품(初品)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王舍城)의 기사굴산(耆闍崛山)에 계실 때 큰 비구 1,250인과 함께 계셨다. 이들은 모두 아라한(阿羅漢)이었으며, 마치 조상왕(調象王)처럼 온갖 번뇌를 여의었다. 뛰어난 수행으로 무거운 짐을 벗고 자신에게 이익된 것을 얻어 모든 구속을 떨쳤으며, 바른 지혜로 해탈하여 마음에 걸림이 없었는데, 오직 아난(阿難)만이 그렇지 못하였다.

그 때 부처님께서 수보리(須菩提)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설법에 능하므로 여러 보살들에게 반드시 반야바라밀을 성취해야 함을 말하도록 하라.”

사리불(舍利佛)은 곧 생각하였다.

‘수보리가 설법하는 것은 자신의 힘으로 하는 것일까, 아니면 부처님의 위신력을 빌려서 하는 것일까?’

사리불의 생각을 알고 수보리가 말했다.

“부처님의 제자들이 설법하는 것은 모두 부처님의 위신력에 의한 것입니다. 왜냐 하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는 이들은 법상(法相:제법의 실상)을 증득(證得)하고, 부처님의 말씀을 증득하여 법상과 어긋나지 않으니, 이것은 법상의 위신력 때문입니다.”

그 때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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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저로 하여금 ‘보살들에게 반드시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을 성취해야 한다고 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만, 세존이시여, 보살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저는 무엇을 가리켜 보살이라고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보살을 본 적도 없고 보살을 만져 본 적도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반야바라밀을 본 적도 없고 만져 본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살들에게 반야바라밀을 가르치겠습니까? 만약에 보살들이 저의 설법을 듣고도 놀라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낙담하지 않고 물러나지 않고 배운 대로 행한다면, 이야말로 보살들에게 반야바라밀을 가르쳤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세존이시여,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닦을 때에는 결코 이러한 것을 보살의 마음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 하면 마음에는 마음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고 원래 청정하기 때문입니다.”

그 때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말했다.

“마음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는 것에는 마음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수보리가 사리불에게 말했다.

“마음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는 것에서 마음을 붙잡을 수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사리불이 말했다.

“붙잡을 수 없습니다.”

수보리가 사리불에게 말했다.

“만약 마음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는 것에서 마음을 붙잡을 수 없다면 마음이 있다,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사리불이 말했다.

“무엇을 마음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는 것이라고 합니까?”

수보리가 말했다.

“무너짐도 없고 분별도 없는 것입니다. 보살은 이와 같이 들어도 놀라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낙담하지 않고 물러서지 않으니, 이러한 보살은 반야바라밀의 실천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만약 선남자와 선여인이 성문(聲聞)의 지위를 얻고자 한다면 반드시 반야바라밀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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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고 독송하여 이와 같이 말하고 닦을 줄 알아야 합니다. 벽지불(辟支佛)의 지위를 얻고자 할 때도 반드시 반야바라밀을 지니고 독송하여 이와 같이 말하고 닦을 줄 알아야 합니다. 보살의 지위를 얻고자 할 때도 역시 반드시 반야바라밀을 지니고 독송하여 이와 같이 말하고 닦을 줄 알아야 합니다. 왜냐 하면 반야바라밀 가운데에는 보살이 배워야 할 모든 것이 상세히 말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보살을 볼 수도 잡을 수도 없는데, 어떻게 보살들에게 반야바라밀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세존이시여, 저는 보살이라는 존재가 오는 것도 가는 것도 보지 못했는데, 보살이라는 글자만을 놓고 이것을 보살이라고 한다면, 저는 곧 의심하고 후회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또한 보살이라는 글자에는 실체도 없고 정해진 자리도 없습니다. 왜냐 하면 이 글자에는 있는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있는 바가 없는 까닭에 실체도 없고 자리도 없습니다. 만약 보살이 이와 같이 듣고도 놀라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낙담하지 않고 물러서지 않는다면, 이러한 보살은 머무름이 없이 불퇴전(不退轉)의 자리에 영원히 머무르게 된다는 점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세존이시여,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닦을 때는 색(色)에 안주해서도 안 되고, 수(受)∙상(想)∙행(行)∙식(識)에 안주해서도 안 됩니다. 왜냐 하면 색에 안주하면 색인 것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고, 수∙상∙행∙식에 안주하면 고정 관념[識行]에 의해 세상을 바라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세상을 파악하게 되면 반야바라밀을 접할 수도 없고, 반야바라밀을 배울 수도 없고, 반야바라밀을 완성할 수도 없고, 살바야(薩婆若:一切智)를 성취할 수도 없습니다. 왜냐 하면 색에는 수∙상도 없으며, 수∙상∙행∙식에도 수∙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색에 수가 없다면 이것은 색이 아니고, 수∙상∙행∙식에 수가 없다면 이것은 정신 작용이 아니며, 반야바라밀 역시 수가 없습니다. 보살은 반드시 반야바라밀을 이와 같이 배우고 실천해야 합니다. 이것을 일컬어 모든 대상을 느끼지 않는 보살의 삼매가 드넓고 아득하여 매여 있지 않다고 합니다. 성문이나 벽지불은 결코 이것을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왜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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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 이 삼매는 겉모양으로 파악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것을 겉모양으로 파악할 수 있다면 일찍이 선니(先尼)라는 범지(梵志:바라문) 수행자가 살바야지(薩婆若智)에 이르고자 하는 염원을 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선니 범지는 유량지(有量智)1)를 가지고 이 법에 들어와서 마침내 색에도 얽매이지 않고, 수∙상∙행∙식에도 얽매이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그 바라문은 듣고 보는 것으로 이것을 얻지 않았습니다. 이 지혜는 안에서 대상을 찾아내어 얻은 것이 아닙니다. 이 지혜는 밖에서 대상을 찾아내어 얻은 것이 아닙니다. 이 지혜는 안팎에서 대상을 찾아내어 얻은 것이 아닙니다. 이 지혜는 역시 안팎을 여읜 곳에서 대상을 찾아내어 얻은 것도 아닙니다. 이 지혜는 안에서 수∙상∙행∙식을 통하여 얻은 것이 아닙니다. 이 지혜는 밖에서 수∙상∙행∙식을 통하여 얻은 것이 아닙니다. 이 지혜는 안팎에서 수∙상∙행∙식을 통하여 얻은 것이 아닙니다. 이 지혜는 또한 안팎을 여읜 곳에서 수∙상∙행∙식을 통하여 얻은 것이 아닙니다. 이 지혜는 선니 바라문이 믿어 터득한 살바야지로 모든 존재의 참 모양을 깨달아 해탈을 얻은 것입니다. 이미 해탈을 얻었기에 어떤 대상을 버리지도 취하지도 않습니다. 열반조차도 취하거나 버리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색에도 얽매이지 않고, 수∙상∙행∙식에도 얽매이지 않는 이것을 보살의 반야바라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색에 얽매이지 않고, 수∙상∙행∙식에 얽매이지 않을 뿐, 부처님의 지혜에 깃든 10력(力)∙4무소외(無所畏)∙18불공법(不共法)을 갖추지는 못해서 끝내 중도(中道)를 따라 완전한 열반에 이르지는 못합니다.

그리고 세존이시여,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는 반드시 이와 같이 생각해야 합니다. 무엇이 반야바라밀인가, 누구의 반야바라밀인가, 색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 반야바라밀인가? 만약 보살이 이와 같이 생각하고 이와 같이 관찰할 때 놀라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떨지 않고 낙담하지 않고 물러서지 않는다면, 이 보살은 반야바라밀의 실천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는 점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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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정(限定)되어 있는 지혜(智慧)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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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말했다.

“만일 색이 색으로서의 성품을 여의고, 수∙상∙행∙식이 정신 작용으로서의 성품을 여의고, 반야바라밀이 반야바라밀로서의 성품을 여의었다면, 보살에게 굳이 반야바라밀의 실천을 소홀히 말라고 설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수보리가 말했다.

“사리불이여, 이와 같이 색은 색으로서의 성품을 여의고, 수∙상∙행∙식은 정신 작용으로서의 성품을 여의고, 반야바라밀은 반야바라밀로서의 성품을 여읜 것과 같이 이 법은 모든 성품을 여의고 성품의 흔적까지도 여의었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 말했다.

“만약 보살이 이 가운데에서 배운다면 살바야를 성취할 수 있겠습니까?”

수보리가 말했다.

“사리불이여, 보살이 이와 같이 배운다면 살바야를 성취할 수 있습니다. 왜냐 하면 어떤 것도 새로 생겨나거나 성취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보살이 이와 같이 실천한다면 살바야에 바로 다가서게 될 것입니다.”

그 때 수보리가 사리불에게 말했다.

“만약 보살이 색으로 세상을 파악한다면 이는 모양에 얽매이는 것입니다. 색을 새로 지어내도 모양에 얽매이는 것입니다. 색을 멸하는 것도 모양에 얽매이는 것입니다. 색을 여의어도 모양에 얽매이는 것입니다. 색을 공(空)이라고 해도 모양에 얽매이는 것입니다. 내가 이것을 행한다고 해도 역시 모양에 얽매이는 것입니다. 수∙상∙행∙식의 정신 작용으로 세상을 파악해도 모양에 얽매이는 것입니다. 정신 작용을 새로 일으키는 것도 모양에 얽매이는 것입니다. 정신 작용을 멸하는 것도 모양에 얽매이는 것입니다. 정신 작용을 여의는 것도 모양에 얽매이는 것입니다. 정신 작용을 공이라고 해도 모양에 얽매이는 것입니다. 내가 이것을 행한다고 해도 역시 모양에 얽매이는 것입니다. 만일 이와 같이 행하는 것을 반야바라밀을 실천하는 것으로 생각해도 역시 모양에 얽매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보살은 방편을 잘 알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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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보살은 어떻게 행해야 반야바라밀을 행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수보리가 말했다.

“만약 보살이 색으로 세상을 파악하지 않고 색을 새로 일으키지 않고, 색을 멸하지 않고 색을 여의지 않고, 색을 공(空)이라고 하지 않고, 수∙상∙행∙식으로 세상을 파악하지 않고, 정신 작용을 새로 일으키지 않고 정신 작용을 여의지 않고 정신 작용을 공하다고 하지 않으면, 반야바라밀을 행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반야바라밀을 행한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행하지 않는다고도 생각하지 않으며, 행하지도 행하지 않는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또한 행함도 아니고 행하지 않음도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반야바라밀을 행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 하면 모든 대상에는 느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일컬어 모든 대상을 느끼지 않는 보살의 삼매가 드넓고 아득하여 매여 있지 않다고 합니다. 모든 성문이나 벽지불은 결코 이것을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보살이 이러한 삼매를 행하면 바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습니다.”

수보리가 부처님의 위신력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약 보살이 이러한 삼매를 행하되, 이 삼매에 내가 마땅히 들어간다든가 내가 지금 들어간다든가 이미 들어갔다고 분별하지도 않고 생각하지도 않는다면, 이 보살은 이미 여러 부처님으로부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라는 수기(授記)를 받은 줄 알아야 합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말했다.

“보살이 이러한 삼매를 행하게 되면 여러 부처님으로부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라는 수기를 받는다는데, 그렇다면 이 삼매는 모양을 볼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수보리가 말했다.

“사리불이여, 볼 수 없습니다. 왜냐 하면 선남자들은 이러한 삼매를 알아보지 못하니, 삼매에는 소유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를 칭찬하여 말씀하셨다.

“참으로 훌륭하구나. 내가 말한 바와 같이 그대는 무쟁삼매(無諍三昧)2)에서 뭇 사람들 가운데 제일이로구나. 보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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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다투는 일이 없는 선정(禪定). 『금강경(金剛經)』에 “부처님께서 말하기를 나는 다툼이 없는 삼매를 얻었으니, 인간 중에 제일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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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워야 한다. 만약 이와 같이 배우는 자는 그야말로 반야바라밀을 배운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리불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보살은 이와 같이 배우되 정작 어떤 것을 배워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이라면 이와 같이 배우되 정작 배울 것이 없는 것을 배워야 한다. 왜냐 하면 사리불이여, 이 모든 것은 범부들이 집착하여 좇는 것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사리불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그것은 지금 어떻게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소유할 수 없는 모습으로 있다. 이와 같이 모든 법(法)이 소유할 수 없는 모습인 줄을 모르기 때문에 무명(無明)이라고 한다. 범부들은 무명을 분별하고 무명을 탐착(貪着)하는 양극단에 빠져서, 있지도 않은 것을 분별하고 색에 집착한다. 집착하기 때문에 소유할 수 없는 모습인 법을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고 벗어나지 못하고 믿지 못하고 머물지 못하고 이 때문에 범부의 숫자 놀음에 떨어지고 만다.”

사리불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보살이 이와 같이 배우더라도 살바야를 터득하지는 못합니까?”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이 이와 같이 배우더라도 살바야를 터득하지는 못하며, 이와 같이 배우더라도 살바야를 배워 그 지혜를 성취했다고 할 수는 없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만약 허깨비가 살바야를 배운다면 이것을 성취할 수 있겠는가, 없겠는가?’ 하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세존이시여, 저는 어떻게 답변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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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니까?”

“수보리여, 내가 반대로 그대에게 묻겠으니, 생각대로 말해 보아라. 어떻게 생각하는가? 허깨비는 색과 다르고 색은 허깨비와 다르며, 허깨비는 수∙상∙행∙식과 다른가?”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허깨비는 색과 다르지 않고 색은 허깨비와 다르지 않으니, 허깨비가 곧 색이고 색이 곧 허깨비이며, 허깨비는 수∙상∙행∙식과 다르지 않고, 이 정신 작용이 허깨비와 다르지 않으니, 허깨비가 곧 이 정신 작용이고, 이 정신 작용이 곧 허깨비입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5음(陰)을 가리켜 보살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할 수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배우는 것을 마땅히 허깨비가 이것을 배우는 것과 같다고 알아야 한다. 왜냐 하면 5음이 곧 허깨비인 줄 알아야 하니, 나는 색이 허깨비와 같고, 수∙상∙행∙식도 허깨비와 같다고 말한다. 정신 작용은 곧 6정(情:6根)이고 5음이다.”

“세존이시여, 처음으로 배우는 보살이 이러한 가르침을 들으면 혹시 놀라거나 두려워하거나 물러서거나 낙담하지 않겠습니까?”

“만약에 처음으로 배우는 보살이 악지식(惡知識)을 섬기고 있다면 틀림없이 놀라거나 두려워하거나 물러서거나 낙담할 것이다. 만약 보살이 선지식(善知識)을 섬기고 있다면 이러한 가르침을 들어도 결코 놀라거나 무서워하거나 물러서거나 낙담하지 않을 것이다.”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무엇을 가리켜 보살의 악지식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반야바라밀을 멀리하고 깨달음을 즐거워하지 않도록 하며, 헛된 겉모습을 따르고 분별하도록 가르치며, 글귀를 번잡스럽게 꾸미도록 가르치며, 성문과 벽지불의 잡스러운 경전을 가르치며, 마군과 관련된 일을 꾀하는 것을 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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켜 보살의 악지식이라고 한다.”

“세존이시여, 무엇을 가리켜 보살의 선지식이라고 합니까?”

“반야바라밀을 배우도록 가르치고 마군에 대해 그 과오를 설하여 깨닫게 하며 이를 멀리하도록 가르치면, 수보리여, 이것을 일컬어 대승(大乘)의 마음을 품고 크게 장엄(莊嚴)하는 보살마하살의 선지식이라고 한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보살이라는 말은 어떤 뜻입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대상을 걸림 없이 다 배우고 모든 대상이 그대로 진실 됨을 아는 이를 보살이라고 한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모든 대상을 꿰뚫어 아는 이가 보살이라면 마하살은 또 어떤 뜻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중을 위해 항상 앞장서기 때문에 마하살이라고 한다.”

사리불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도 마하살이라고 하는 이유를 기꺼이 말씀드리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좋을 대로 하여라.”

사리불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보살은 5온(蘊)에 나라는 실체가 있다는 생각을 끊고, 다섯 가지의 모임에 의해 자신이 생겨났다는 생각을 끊고, 자신에게 일정한 수명이 있다는 생각을 끊고, 인간만이 우월하다는 생각을 끊고, 있다는 생각을 끊고, 없다는 생각을 끊고, 덧없다는 생각을 끊고, 변함이 없다는 생각 등을 끊으라고 가르치기에 마하살이라고 합니다. 또한 이 가운데 어느 것에도 마음이 집착하지 않기에 마하살이라고 합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이 가운데 어느 것에도 마음이 집착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수보리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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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없는 까닭에 이 가운데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습니다.”

부루나미다라니자(富樓那彌多羅尼子)가 말했다.

“세존이시여, 보살은 거룩한 서원으로 장엄된 가르침과 대승의 가르침을 따르기 때문에 마하살이라고 합니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보살이 거룩한 서원으로 장엄된 가르침을 따른다는 말은 어떤 뜻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반드시 더 이상 제도할 중생이 없을 때까지 아승기 수의 중생을 제도하리라고 다짐한다. 왜냐 하면 모든 법의 모양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마술사가 네거리에 판을 벌여 놓고 요술로 많은 허깨비들을 만들어낸 다음 그 목을 자르는 것과 같으니, 그대 생각에 허깨비들이 다치거나 죽는 일이 있겠느냐, 없겠느냐?”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 역시 이와 같이 더 이상 제도할 중생이 없을 때까지 아승기 수의 중생을 제도하는 자이니라. 만약 보살이 이와 같이 일을 전해 듣고도 놀라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이 보살은 반드시 거룩한 서원으로 단장된 가르침을 따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부처님의 가르침대로라면, 이 보살은 거룩한 서원으로 장엄된 가르침을 따름으로써 자신을 장엄한다는 점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왜냐 하면 살바야는 대상을 일으키지도 않고 지어내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살이 중생을 위해 거룩한 서원으로 장엄된 가르침을 따른다면 중생들도 역시 이와 같이 대상을 일으키지도 않고 지어내지도 않을 것입니다. 왜냐 하면 색에는 속박도 해탈도 없고, 수∙상∙행∙식에도 속박과 해탈이 없기 때문입니다.”

부루나가 수보리에게 말했다.

“색에도 속박과 해탈이 없고, 수∙상∙행∙식에도 속박과 해탈이 없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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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

수보리가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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