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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유식론(成唯識論, Vijñaptimātratāsiddhi-śāstra)』 제 1~10권
글쓴이 : 백련사 날짜 : 2012-12-31 (월) 19:08 조회 : 2950
성유식론(成唯識論) 제 1~10권.hwp (732.8K), Down : 164, 2012-12-31 19: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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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유식론(成唯識論)

성유식론 제1권

호법(護法) 등 지음

현장(玄奘) 한역

김묘주 번역

유식의 성품1)에

원만히 또는 부분적으로 청정하신 분들2)께 큰절을 올립니다.

제가 이제 그분의 저술3)을 해설하여

많은 유정4)을 이롭고 안락하게 하겠습니다.5)

주)-----------------------------------------------------------------

1) 원성실성(圓成實性)의 일미진여(一味眞如)로서, 네 가지 지혜의 참다운 성품[四智實性]이며, 법보(法寶)의 총칭이다.

2) 원만하게 청정하신 분은 부처님[佛寶]을, 부분적으로 청정한 분은 보살[僧寶]을 지칭한다.

3) 세친(世親, Vasubandhu)의 『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을 가리킨다.

4) 유정(有情)은 산스끄리뜨인 사뜨와(sattva)의 번역어로서 ‘정식(情識)을 갖고 있는 자’라는 뜻이다. 구역(舊譯)에서는 중생이라고 한다.

5) 삼보(三寶)에 귀의하여 경례 드리는 게송[歸敬頌]으로서 종전경서분(宗前敬敍分)이라고 한다. 안혜(安慧)와 호법(護法) 등 논사들이 세친(世親)의 『삼십송』을 해설할 때에 각각 『삼십송』의 앞부분에 귀경송(歸敬頌)을, 뒷부분에 회향송을 첨가하였다. 『성유식론술기(成唯識論述記)』에 의하면 위 게송은 안혜가 지은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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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논서를 짓는 이유6)는 두 가지 공[二空]7)에 대해서 미혹하고 오류가 있는 자로 하여금8) 바르게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바르게 이해하도록 하는 것은, 두 가지 무거운 장애(번뇌장․소지장)를 끊게 하기 위해서이다. 자아9)와 법10)으로 집착하기 때문에 두 가지 장애가 함께 일어난다.11) 두 가지 공을 증득하면, 그 장애도 따라서 끊어진다. 장애를 끊는 것은 두 가지 뛰어난 증과(열반․보리)를 얻기 위해서이다.12) 윤회의 삶[生]을 계속하게 하는 번뇌장

주)-----------------------------------------------------------------

6) 이하 본 논서 저술의 취지[緣起]를 서술한다. 이것은 『성유식론』을 저술하는 동기 내지 목적이면서, 동시에 유식사상의 궁극적인 목적을 나타낸다.

7) 두 가지 공[二空]은 아공(我空)과 법공(法空)이다. 아공(我空)은 인무아(人無我)라고도 하며, 유정의 심신(心身)에 상일주재(常一主宰)하는 인격적 실체[我]가 존재하지 않는 이치, 또는 그것을 깨쳐서 아집(我執)이 소멸된 경지를 말한다. 법공(法空)은 법무아(法無我)라고도 하며, 외계 사물은 자기의 마음을 떠나서 독립적으로 실재하지 않는 이치, 또는 그것을 깨쳐서 법집(法執)이 소멸된 경지를 말한다.

8) 아공과 법공의 도리에 미혹한 자는 구체적으로 성문(聲聞)․독각(獨覺)․외도를 가리킨다. 오류에 빠진 자는 중관학파 중에서 허무주의에 빠진 일부 악취공자(惡取空者)를 말한다.

9) 자아[我, ātman]는 상[常主]․일[獨一]․주[主王]․재[司宰]의 특성을 갖고, 자재(自在)를 자성으로 한다. 유정의 심신(心身) 어디에도 이런 뜻을 가진 주체가 없다는 것이 무아(無我)의 이치이다.

10) 법(法, dharma)은 궤지(軌持), 즉 갖추어 말하면 임지자성(任持自性) 궤생물해(軌生物解)의 뜻으로서, 자성을 보존[保持]하고 본보기[軌範]로 하여 그 사물에 대한 요해심(了解心)을 내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 법도 역시 인연가화합(因緣假和合)하여 상주의 실체가 없다.

11) 두 가지 무거운 장애는 번뇌장과 소지장이다. 이것은 각각 두 가지 집착, 즉 아집과 법집에서 비롯된다. 아집(我執)은 상일주재(常一主宰)하는 자아[我, ātman 또는 人, pudgala]가 실재한다고 집착하는 것이다. 법집(法執)은 외계 사물 또는 존재의 구성요소[法, dharma]가 실재한다고 집착하는 것이다. 아집에 의해 번뇌장(煩惱障)이 생기고, 법집에 의해 소지장(所知障)이 생긴다. 이 두 장애로 인해 유정은 생사윤회를 되풀이한다.

12) 아공의 도리를 깨쳐서 번뇌장을 끊으면 해탈, 즉 열반을 증득한다. 법공의 도리를 깨쳐서 소지장을 끊으면 곧 큰 깨달음[大菩提]을 성취해서 붓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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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煩惱障)을 끊음으로써 참다운 해탈[眞解脫]13)을 증득한다. 이해[解]를 장애하는 소지장(所知障)을 끊음으로써 큰 깨달음[大菩提]을 증득할 수 있다.14)

또한 그릇되게 자아와 법으로 집착하여 유식(唯識)15)에 미혹한 자에게 열어 보여서, 두 가지 공을 통달함으로써 유식의 궁극적인 진리[理]16)에 대해서 사실 그대로 알게 하기 위해서이다.17)

또한 유식의 궁극적인 진리에 미혹하거나 잘못 아는 자가 있다. 혹은 외부대상이 식(識)처럼 없는 것이 아니라고 집착한다.18) 혹은 내부의 식이 외부대상처럼, 존재하지 않는다고 집착한다.19) 혹

주)-----------------------------------------------------------------

13) 대승의 열반(涅槃, nirvāṇa)을 가리킨다.

14) 『성유식론술기』에 의하면, 이상의 내용은 안혜(安慧, Sthiramati) 등이 논서를 저술하는 취지라고 한다.

15) ‘유식(唯識)’에는 궁극적인 진리[理]에 도달하기 이전의 유식관(唯識觀)에서 식(識)의 관념으로서의 ‘유식’과, 궁극적인 진리(진여, 무분별지혜)로서의 ‘유식’ 두 가지가 있다. 지금은 전자를 가리킨다. 여기서 유식(唯識, vijñapti- mātra)의 갖춘 이름은 유식무경(唯識無境)이다. 오직 식의 존재만을 인정하고, 식의 외부에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변계소집(遍計所執)되는 대상[境]의 존재는 부정된다. 그것은 다만 식이 전변하여 사현(似現)된 것이기 때문에 실체성이 없다. 인식상황 속에서 식이 전변(轉變)하여 견분(見分)과 상분(相分)으로 분화될 때, 우리는 그릇되게 전자를 실아(實我)로, 후자를 실법(實法)으로 집착하는데, 사실 그것은 사아(似我)와 사법(似法)으로서 실체성이 없다. 따라서 인식되는 객관[所取]이 비존재성이므로, 인식하는 주관[能取]도 비존재성이 된다. 이것을 경식구민(境識俱泯)이라고 한다.

16) 유식의 궁극적인 진리[唯識理]는 일반적으로 유식성(唯識性, vijñaptimātra- tā)으로 말해진다. 곧 진여(眞如, tathatā)와 무분별지(無分別智)이다. 이것은 아공(我空)과 법공(法空)의 이치를 깨쳐서 번뇌장(煩惱障)과 소지장(所知障)을 소멸하고, 열반(涅槃)과 보리(菩提)를 증득한 상태이다. 다시 말하면 전의(轉依)로써 전식득지(轉識得智)를 이루어, 여덟 가지 식(識)이 네 가지 지혜로 전환된 상태이다.

17) 화변(火辨, Citrabhāna) 등이 논서를 짓는 취지를 나타낸다.

18)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Sarvāsti-vāda) 등에서 주장한 삼세실유 법체항유설(三世實有法體恒有說)을 가리킨다.

19) 『성유식론술기』에 의하면 중관학파의 청변(淸辨, Bāviveka) 등의 악취공(惡取空)의 견해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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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모든 식이 작용은 다르나 자체[體]는 같다고 집착한다.20) 혹은 심왕(心王)21)에서 떠나서 별도의 심소(心所)22)는 없다고 집착한다.23) 이런 갖가지 집착들을 없애고, 유식의 심오하고 미묘한 도리 속에서 참된 지혜를 얻게 하기 위해서 이 논서를 짓는다.24)

만약 오직 식만이 존재한다고 말하면, 어째서 세간25)과 여러 성스러운 가르침[聖敎]26)에서 자아와 법이 존재한다고 말하는가?27)

게송(『유식삼십송」의 제1송․제2송 반)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아와 법을 가설함으로 인하여

(자아와 법의) 갖가지 모습들이 생겨난다.

그것28)은 식이 전변된 것29)에 의지한다.30)

주)-----------------------------------------------------------------

20) 대승 중에서 일부 보살들이 주장한 8식체일설(識體一說)을 말한다.

21) 심왕(心王, citta)은 식별작용을 비롯한 정신현상의 주체로서, 구체적으로 8식(識)을 가리킨다.

22) 심소(心所, caitta)는 심왕에 수반되는 심리작용이다. 유식학에서는 모두 51가지 심소가 있으며, 심왕과 심소는 체(體)를 달리하며 상응하여 함께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23) 경량부(經量部, Sautrāntika), 설일체유부의 각천(覺天) 등의 주장으로서, 다만 수(受)․상(想)․사(思)의 세 가지 심소를 인정한다.

24) 호법(護法, Dharmapāla) 등이 논서를 저술하는 취지를 나타낸 것이다.

25) 세간의 범부와 외도를 가리킨다.

26) 불교경전을 가리킨다.

27) 다음에 본 논서의 정종분(正宗分)인 의교광성분(依敎廣成分)이다. 유식상(唯識相)을 밝히는 가운데 먼저 총체적인 대전제(大前提)를 나타낸다[總表].

28) 가설(假說)된 아(我)․법(法)을 가리킨다.

29) 견분(見分), 상분(相分)을 의미한다.

30) 자아(ātman)와 법(dharma)을 나타내는 표현이 참으로 다양하고 가설적(假說的, upacāra)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그것은 식이 전변한 것[識所變]에 의거한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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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능변식은 오직 세 종류이다.

이숙식과 사량식

및 요별경식을 말한다.

논하여 말한다. 세간과 성스러운 가르침에서 자아와 법이 있다고 말한 것은 다만 임시적인 것[假]31)에 의거해서 건립된 것이지, 실제로 체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32)

‘자아’는 주재(主宰)하는 것을 말한다. ‘법’은 자성을 지키고 알게 하는 것[軌持]33)을 의미한다. 그 둘은 모두 갖가지 모습들로 생겨남[轉起]이 있다.

자아의 갖가지 모습은 유정․명자(命者)34) 등과 예류(預流)35)․일래(一來)36) 등을 말한다. 법의 갖가지 양상은 실체[實]․속성

주)-----------------------------------------------------------------

31) 임시적인 것[假]이란 비실유성(非實有性), 즉 자성(自性)을 갖고 실유로써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나타낸다.

32) 자아(ātman)는 상일주재성(常一主宰性)을 지니는 인격적 실체를 의미하며, 유정(有情)․명자(命者)․예류(預流)․일래(一來) 등 다양하게 표현된다. 이것들은 사실 찰나마다 생멸을 반복하면서 이어지는 식(識)의 흐름[識相續]으로서, 존속적인 실체가 없다. 법dharma은 객체적 존재로서 온(蘊)․처(處)․계(界)․실(實)․덕(德)․업(業) 등으로 표현된다. 법은 사실 식의 표상(表象)에 지나지 않으므로 실체가 없다. 자아[我]와 법(法)으로 상정된 것들은 실체가 없는데도, 세상과 성전(聖典)에서 가설적으로 방편상 그렇게 개념 지은 것이다.

33) 주10 참조.

34) 명자(命者)는 살아 있는 자, 즉 유정(有情)이라는 뜻이다. 색심(色心)이 상속하는 것에 이름 붙인 것이다.

35) 성문(聲聞)의 위계를 예류(預流)․일래(一來)․불환(不還)․아라한(阿羅漢)의 4과(果)로 나눈다. 이 가운데에서 예류(預流, srota-āpanna:須陀洹)는 세 가지 결박의 번뇌(有身見․戒禁取見․疑)를 끊고 성스러운 흐름에 들어간 사람을 말한다. 견도(見道)의 15심(心:이 기간은 預流向이라고 함) 이후의 제16심, 즉 수도위(修道位)에 들어가게 된 지위를 예류과라고 한다.

36) 일래(一來, sakṛd-āgamin:斯陀含)는 예류과 다음으로서, 세 가지 번뇌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탐욕․성냄․어리석음의 3독심(毒心)도 약화시켜서, 이 세상에 한 번만 돌아와서 괴로움을 다하는 단계이다. 욕계(欲界)의 수혹(修惑) 9품(品) 중 앞의 6품을 끊은 성자이다. 이 과(果)를 얻으면 우선 인간 세상에 한 번 왔다가 다시 천상으로 돌아가 장차 열반에 들어간다. 반드시 인간 세상과 천상을 한 번 왕래하기 때문에 일래(一來)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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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德]․행위[業]37) 등과 온(蘊)․처(處)․계(界)38) 등을 말한다. 게송에서 ‘생겨난다[轉]’라는 것은 연(緣)에 따라 시설해서 차이가 있다.

이와 같은 여러 모습을 만약 가설(假說)한다면, 무엇에 의지해서 성립될 수 있는가? 그 모습들은 모두 식이 전변된 것[識所變]에 의지해서 가정적으로 시설된다.

‘식(識)’39)이란 요별하는 것을 말한다.40) 이 게송 중에서 식이라는 말은 또한 심소(心所)도 포함한다. 반드시 상응하기 때문이다.

‘변(變)’이라고 말하는 것은, 식의 자체분[識體]이 전변하여 두 가

주)-----------------------------------------------------------------

37) 실(實)․덕(德)․업(業)은 인도의 중세 정통 육파철학(六派哲學) 중 하나인 승론勝論)학파에서 주장한 6구의(句義:여섯 가지 범주) 중 셋이다. 실(實, dravya)은 질료적(質料的) 원인, 즉 속성[德]이나 행위[業]의 근저에 놓여 있는 어떤 것을 말한다. 덕은 속성․성질의 의미로서, 실체의 수동적이고 정적(靜的)인 성질을 가리킨다. 여기서 업(業, karma)은 실체에 속한 행위․운동을 말한다.

38) 5온(蘊)․12처(處)․18계(界)의 3과(科), 즉 일체법을 세 부류로 총합한 것이다. 다만 5온은 유위법에 한정되고 12처와 18계는 유위법과 무위법에 통한다. 각각을 구체적으로 말하면, 온(蘊, skandha)은 흔히 ‘쌓임’으로 번역되며, 근간적인 부분․요소라는 뜻이다. 색(色:물질적인 형체)․수(受:감수작용)․상(想:표상작용)․행(行:유지 결합작용)․식(識:식별작용)의 5온으로 구성된다. 처(處, āyatana)는 들어감[入․入處]이라는 뜻이며, 일체를 12처(處), 즉 여섯 가지 인식기관[六內入處, 즉 6根]과 여섯 가지 인식대상[六外入處, 즉 六境]으로 분류한다. 계(界, dhātu)는 부류[類]․층(層)․종족(種族)이라는 뜻이며, 일체를 6근계(根界)․6경계(境界)․6식계(識界)의 18계로 분류한다.

39) 여기서 식(識)은 산스끄리뜨 위냐나(vijñāna)의 번역어이다. vijñāna는 ‘식별작용’ ‘식별작용을 지닌 주체’라는 의미이다.

40) 다음에 별도로 식(識)과 전변(轉變)의 개념을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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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심분(心分:상분과 견분)으로 사현(似現)41)하는 것을 가리킨다. 상분(相分)과 견분(見分)은 모두 자증분(自證分)에 의지해서 일어나기 때문에,42) 이 2분(分)에 의거해서 자아와 법을 시설한다.43) 그 두 가지(我․法)는 이것(견분․상분)을 떠나서는 의지처[所依]가 없기 때문이다.

혹은 다시 내부의 식[見分]이 전변하여 외부의 대상으로 사현한다[相分].44)

자아와 법으로 분별하면서 훈습하는 세력 때문에, 모든 식이 일

주)-----------------------------------------------------------------

41) 사현(似現, pratibhāsa)의 현현(顯現․변사(變似)라고도 하며, 식이 인식대상을 닮은 형상을 띠는 작용을 말한다. pratibhāsa는 원래 물에 비친 달 등의 영상을 의미하는 용어였는데, 유식교학에서는 마음속에 나타난 사물의 영상 또는 주체 쪽의 인식작용을 의미하게 되었다.

42) 유식학에서는 우리가 외계사물을 직접 지각하는 것이 아니라 식상(識上)의 형상을 인식한다고 본다. 이것은 곧 하나의 인식이 성립될 때, 식이 주관과 객관으로 이분화되는 것을 말한다. 상분(相分)은 객관으로서의 식, 즉 식상(識上)의 영상(影像)으로서 소취분(所取分)․소량(所量)․사경상(似境相)․유상식(有相識)이라고도 한다. 견분(見分)은 주관으로서의 식, 즉 상분을 인식하는 주관적인 작용으로서 능취분(能取分)․능량(能量)․능취상(能取相)․유견식(有見識)이라고도 한다. 자증분(自證分)은 이분화 되기 이전의 식 자체로서 견분과 상분에 의한 인식작용의 결과를 확인하는 인식체의 역할을 한다.

43) 식체(識體), 즉 자체분(自體分)이 변현하여 견분(見分)과 상분(相分)으로 되며, 이 2분(分)을 식소변(識所變)이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견분과 상분의 자체[體]의 유무(有無)에 관하여 안혜와 호법의 견해 차이가 있다. 『성유식론술기』에 의하면 안혜(安慧)는 일분가(一分家)로서, 오직 자체분만이 의타기성의 유체법(有體法)이고, 견분․상분은 변계소집성의 무체법(無體法)으로 간주하고 이를 총무(總無)라고 하며, 이 총무(總無)인 견분과 상분에 의해 별무(別無)인 자아․법을 가립한다고 한다[無相唯識]. 호법(護法)은 3분(分)이 모두 의타기성의 유체법(有體法)으로서, 이 유체인 견분․상분에 의해 자아․법을 가립한다고 한다[有相唯識].

44) 십대논사 중에 난타(難陀, Nanda) 등의 견해라고 한다. 그는 2분(分)을 건립하지 않고 견분을 능변의 식체(識體)로 하고, 이 식 자체, 즉 견분이 전변하여 마음 밖에 대상으로 사현(似現)하는데, 이 변화된 것을 상분이라고 한다. 이것에 의지해서 자아와 법을 시설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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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날 때에 변하여 자아와 법으로 현현한다.45) 이 자아와 법의 모습은 비록 내부의 식에 있지만, 분별에 의해서 외부대상으로 현현한다. 모든 유정의 무리는 아득한 옛적부터 이것(似我似法의 相)을 반연하여 집착해서 실아(實我)와 실법(實法)으로 삼는다. 환자나 꿈을 꾸는 사람이 병이나 꿈의 세력에 의해서 마음이 갖가지 외부대상의 모습으로 현현하고, 이것을 반연하여 집착해서 참으로 외부대상이 있다고 한다.

어리석은 범부가 계탁한 실아와 실법은 모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허망한 생각을 따라서 시설된 것이므로, (『삼십송」의 제1게송에서) 그것을 임시적인 것[假]이라고 말한다. 내부의 식이 전변한 사현된 자아[似我]와 사현된 법[似法]은 존재하긴 하지만, 참다운 자아와 법의 성품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사현되기 때문에 ‘임시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외부대상은 허망한 생각[情]을 따라 시설된 것이므로, 식처럼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내부의 식은 반드시 인연에 의해서 일어나기 때문에, 대상처럼 존재하지 않는 것[無]이 아니다. 이 때문에 문득 증익(增益)과 감소[損滅]의 두 가지 집착을 막는다.46) 외부대상은 내부의 식에 의지해서 가립(假立)하므로 오직 세속제에서만 존재하는 것[有]이다.47) 식은 허망

주)-----------------------------------------------------------------

45) 다음에 식이 전변된 것[識所變]이라는 용어의 뜻을 자세하게 해설한다. 흔히 실체로서의 자아나 법을 주장하는데, 그것은 실아실법(實我實法)이 아니라 사아사법(似我似法)이다. 세간과 성교(聖敎)에서 이것을 자아와 법이라고 가설한 것이다.

46) 외경(外境)은 변계소집성으로서 유(有)가 아니라고 말함으로써 외경실유(外境實有)라는 증익(增益)의 집착을 막는다. 내식(內識)은 의타기성으로서 무(無)가 아니라고 말함으로써, 일체개공(一切皆空)이라는 감소[損滅]의 집착을 막는다.

47) 세속제(世俗諦)는 범부 소견의 경지이고, 승의제(勝義諦)는 부처님께서 증득하신 경지이다. 『성유식론술기』에서는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의 사속일진설(四俗一眞說)에 바탕을 두고 4중(重)의 세속․승의 2제(諦)를 건립하여, 세간세속제(世間世俗諦)ㆍ세간승의제(世間勝義諦)ㆍ도리승의제(道理勝義諦)ㆍ증득승의제(證得勝義諦)ㆍ승의승의제(勝義勝義諦)로 구분한다. 본문에서 세속제는 세간세속제를 말한다. 마음 밖의 대상이란 세간세속제의 허망한 경계[妄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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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것인 대상이 의지하는 자체[事]이므로 역시 승의제48)에서도 존재한다.

참으로 외부대상은 없고 오직 내부의 식만이 있어서 외부대상으로 현현한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49)

실아(實我)와 실법(實法)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문] 어째서 실아(實我)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인가?

[답] 모든 집착된 자아에 대략 세 종류가 있다. 첫째, 자아는 본체가 상주하고 널리 두루하며, 크기가 허공과 같다고 집착한다. 거처하는 곳에 따라서 업을 짓고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기 때문이라고 한다.50) 둘째, 자아는 그 본체가 상주하지만 크기는 일정하지 않다고 집착한다. 신체의 크고 작음에 따라 감고 펴는 것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51) 셋째, 자아는 본체가 상주하고 지극히 미세해서

주)-----------------------------------------------------------------

48) 여기서는 세간승의제(世間勝義諦)를 가리킨다. 식이 전변된 견분과 상분은 세간승의제인 의타기법일 뿐이다.

49) 다음에 실아(實我)와 실법(實法)에 대한 집착을 논파해서, 『유식삼십송』의 취지를 나타낸다. 먼저 실아(實我)에 대한 집착을 논파하는데, 세 부류의 외도의 국집된 견해를 열거하고 그것들을 논파한다. 무아(無我)의 이치에 미혹하여 실아(實我)로 집착하며, 근본적으로 이러한 아치(我痴)에 의한 아집(我執)을 없애지 않고는 참다운 해탈을 증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50) 인도철학사상 중에서 상캬(Sāṁkhya, 數論)학파나 와이세시까(Vaiśeṣika, 勝論)학파 등에서의 견해이다.

51) 육사외도(六師外道) 중에서 무참외도(無慙外道)인 빠꾸다 깟짜야나와 니간타 나따뿟따의 견해이다. 빠꾸다 깟짜야나에 의하면, 사람이 죄를 지었을지라도 마음에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면 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부끄럽게 여기면 지옥에 떨어진다고 하므로 무참외도라고 부른다. 나간타 나따뿟따의 자이나교에서는 나체(裸體)로 걸식하면서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므로 무참외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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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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