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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문 한자 공부 - 5 潙山大圓禪師警策 (치문 경훈)
글쓴이 : 백련사 날짜 : 2012-07-24 (화) 16:58 조회 : 2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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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문 한자 공부 - 5 潙山大圓禪師警策 (치문 경훈)

아래 본문의 한자 음훈, 한자 연습장 파일 첨부 되어 있습니다.

(한자 음훈 파일은 열면 본문이 길어 2 곳으로 나누어 놓았으니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_()_

精選懸吐 緇門이라

吳城比丘幻住永中 編輯이오 小白頭陀震湖錫淵 懸吐하고

海東沙門佰庵性聰이 註解하고 雪醐山人草牛榮世가 校閱하다

潙山大圓禪師警策이라

夫業繫受身은 未免形累라 禀父母之遺軆하야 假衆緣而共成이로다.

雖乃四大扶持나 常相違背하야 無常老病이 不與人期하야 朝存夕亡이라

刹那異世로다 譬如春霜曉露라 焂忽卽無며 岸樹井藤이라 豈能長久리오.

念念迅速하야 一刹那間에 轉息卽是來生이어니, 何乃晏然空過리오

父母不供甘旨하고 六親 固以棄離하며 不能安國治邦하고

家業頓捐繼嗣하며 緬離鄕黨하고 剃髮禀師인댄

內勤剋念之功하고 外弘不諍之德하야 逈脫塵世하고 冀期出離어늘

何乃纔登戒品하야는 便言我是比丘로라하야

檀越所須喫用常住호대 不解忖思來處하고 謂言法爾合供이라하야

喫了聚頭喧喧하야 但說人間雜話하나니 然卽一期趁樂이여 不知樂是苦因이로다

曩劫徇塵하야 未嘗返省일새

時光이 淹沒하고 歲月이 蹉跎어늘 受用이 殷繁하고 施利濃厚하야

動經年載호대 不擬棄離하고 積聚滋多하야 保持幻質이로다

導師有勅하사 戒勗比丘하사대 進道嚴身三常不足히하라하야시늘

人多於此貪味不休하야 日往月來颯然白首로다

後學이 未聞旨趣어든 應須博問先知어늘 將謂出家는 貴求衣食이라하나니

佛先制律하사 啓創發蒙하신 軌則威儀가 淨如氷雪하사

止持作犯으로 束斂 初心하며 微細條章으로 革諸猥弊하신

毘尼 法席 曾未叨陪어니 了義上乘豈能甄別

可惜一生空過하면 後悔難追니라

敎理未嘗措懷玄道無因契悟로다

及至年高臘長하야는 空腹高心하야 不肯親附良朋하고

惟知倨傲하나니 未諳法律이라 戢斂全無하며 或大語高聲으로

出言無度하며 不敬上中下座하나니 婆羅門 聚會無殊로다

椀鉢作聲하며 食畢先起하야 去就 乖角하니 僧軆全無로다

起坐忪諸하야 動他心念하나니 不存些些軌則小小威儀어니

將何束斂이리요 後昆新學이 無因倣傚로다

纔相覺察하야는 便言我是山僧이라하나 未聞佛敎行持하고

一向에 情存麤糙하나니 如斯之見은 盖爲初心이 慵惰하야 饕餮 因循하야

荏苒 人間하야 遂成疎野로다 不覺躘踵老朽하야 觸事面墻이로다

後學咨詢無言接引하고 縱有談說이라도 不涉典章이로다

或被輕言하야는 便責後生無禮라하야 嗔心忿起하야 言語該人이라가

一朝에 臥疾在牀하야 衆苦縈纏逼迫코사 曉夕思忖에 心裡恛惶이라

前路茫茫하야 未知何往이로다 從玆로 始知悔過나 臨渴掘井이라 奚爲리요

自恨早不預修하고 年晩에 多諸過咎하나니 臨行 揮霍하야 怕怖慞惶이로다

縠穿雀飛識心隨業如人負債强者先牽인달하야 心緖多端이나 重處偏墜로다

無常殺鬼가 念念不停하니 命不可延이며 時不可待라 人天三有에 應未免之로다

如是受身非論劫數 感傷嘆訝하야 哀哉切心이어니

豈可緘言하야 遞相警策이리요

所恨同生像季하야 去聖時遙佛法生疎하고 人多懈怠할세

略伸管見하야 以曉後來하노니 若不蠲이면 誠難輪逭이니라

夫出家者는 發足超方하야 心形異俗하고 紹隆聖種하야

震懾魔軍하며 用報四恩하고 拔濟三有니라 若不如此인댄 濫厠僧倫이라

言行이 荒疎하고 虛霑信施하며 昔年行處를 寸步不移하고

恍惚一生이어니 將何憑恃리요

况乃堂堂僧相이 容貌可觀이라 皆是宿植善根하야 感斯異報어늘

便擬端然拱手하야 不貴寸陰하나니 事業을 不勤하면

功果에 無因克就니라 豈可一生空過리요 抑亦來業無裨로다

辭親決志被緇는 意欲等超何所오 曉夕思忖컨댄 豈可遷延過時리요

心期佛法棟樑하야 用作後來龜鏡이어다 常以如此라도 未能少分相應이니라

出言에 須涉於典章하고 談說에 乃傍於稽古하며 形儀挺特하고 意氣高閒이니라

遠行要假良朋하야 數數淸於耳目하고 住持必須擇伴하야 時時聞於未聞이니라

故로 云生我者는 父母요 成我者는 朋友라하니

親附善者는 如霧露中行하야 雖不濕衣나 時時有潤이어니와

狎習惡者는 長惡知見하야 曉夕에 造惡하나니 卽目交報요 沒後沈淪이니라

一失人身하면 萬劫에 不復하나니 忠言이 逆耳거니 豈不銘心者哉아

便能澡心育德하야 晦迹鞱名하며 蘊素精神하야 喧囂止絶이니라

若欲參禪學道하야 頓超方便之門인댄 心契玄津하야 硏幾 精妙하며

決擇深奧하야 啓悟眞源하며 博問先知하고 親近善友니

此宗은 難得其妙라 切須仔細用心이니라

可中에 頓悟正因이면 便是出塵階漸이나 此則破三界二十五有니라

內外諸法이 盡知不實하야 從心變起라 悉是假名인달하야 不用將心湊泊이어다

但情不附物하면 物豈礙人이리요 任他法性이 周流하야 莫斷莫續이어다

聞聲見色에 盖是尋常이나 遮邊那邊에 應用不闕이니 如斯行止하면

實不枉被法服이라 亦乃酬報四恩하고 拔濟三有며 生生에 若能不退하면 佛階를

決定可期리라 往來에 三界之賓이며 出沒에 爲他作則이니라

此之一學이 最妙最玄하니 但辦肯心하라 必不相賺이니라

若有中流之士이 未能頓超인댄 且於敎法에 留心하야 溫尋貝葉하고

精搜義理하야 傳唱敷揚하며 接引後來하야 報佛恩德하고 時光을

亦不虛棄니 必須以此로 扶持하면 住止威儀이 便是僧中法器니라

豈不見가 倚松之葛은 上聳千尋하나니 附託勝因하면 方能廣益하리라

懇修齋戒하야 莫謾虧踰어다 世世生生에 殊妙因果라

不可等閒過日하며 兀兀度時니라 可惜光陰이어늘 不求升進하고

徒消十方信施하며 亦乃孤負四恩이라 積累轉深하야 心塵이 易壅하며

觸途成滯라 人所輕欺로다 古云彼旣丈夫라 我亦爾니 不應自輕而退屈이라하시니

若不如此면 徒在緇門하야 荏苒一生이라 殊無所益이니라

伏望하노니 興決烈之志하며 開特達之懷하야 擧措에 看他上流언정

莫擅隨於庸鄙니라 今生에 便須決斷이니 想料컨댄 不由別人이니라

息意忘緣하야 不與諸塵作對어다

心空境寂이언만은 只爲久滯不通일새니라 熟覽斯文하고 時時警策하야

强作主宰하고 莫徇人情하라 業果所牽誠難逃避니라

聲和響順하고 形直影端이라 因果歷然커니 豈無憂懼리요

故로 經에 云 假使百千劫이라도 所作業은 不亡하야 因緣會遇時에 果報를

還自受라하니 故知三界刑罰이 縈絆殺人이로니 努力勤修하야 莫空過日이어다

深知過患코사 方乃相勸行持하노니 願이 百劫千生에 處處同爲法侶하노라

乃爲銘曰

幻身夢宅이여 空中物色이로다 前際無窮커니 後際인달 寧剋이리요

出此沒彼하야 昇沈疲極이로다 未免三輪이어니 何時休息이리요

貪戀世間하야 陰緣이 成質이로다 從生至老히 一無所得이라

根本無明이 因玆被惑이로다 光陰을 可惜이라

刹那不測이어늘 今生을 空過하면 來世에 窒塞이니라

從迷至迷히 皆因六賊하야 六道往還하고 三界匍匐이로다

早訪明師하고 親近高德하야 決擇身心하고 去其荊棘이니라

世自浮虛어니 衆緣이 豈逼이리요

硏窮法理는 以悟爲則이니 心境을 俱捐하야 莫記莫憶이어다

六根이 怡然하면 行住寂黙하고 一心이 不生하면 萬法이 俱息하리라

위산대원선사경책

위산대원선사경책이라

대저 업에 매여 받은 이 몸은 형상에 얽매임(끄달림)을 면하지 못하나니,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몸을 이어받아 여러 가지 인연을 빌어서(의지하여) 함께 이루어진 것이다. 비록 이에 사대가 서로 의지하여 이 몸을 유지하지만 항상 서로 어기고 등져서 까닭에 무상한 늙음과 병듦이 사람과 더불어 기약하지 못하고 아침에 있다가도 저녁이면 없어지니 찰나에 세상을 달리하게 됨이로다. 비유하면 마치 봄날의 서리나 새벽의 이슬과도 같아서 잠깐 사이에 곧 없어지며 언덕 위의 나무와 우물 속의 등나무와 같은지라 어찌 능히 오래갈 수 있겠는가. 생각 생각이 빠르고 신속하여 한 순간에 숨을 돌리면 곧 다음 생인데 어찌하여 편안히 살면서 헛되게 시간을 보내겠는가. 부모를 맛있는 음식으로 공양하지도 않고, 육친을 굳게 버리고, 나라를 편안히 다스리지도 못하고, 가업의 상속마저 몰록 버리고, 멀리 향당을 떠나와서 머리를 깎고 스승으로부터 계를 받았으면 안으로는 생각을 이기는 공부를 부지런히 하고 밖으로는 다투지 않는 덕행을 넓혀서 티끌세상을 멀리 벗어나고 출리할 것을 바라고 기약해야 하거늘 어찌하여 이에 겨우 계품에 올라서 문득 말하기를 「나는 비구이다」라고 하여 단월들의 수구하는 바에 상주물을 먹고 쓰면서 그 온 곳을 헤아려 생각할 줄 모르고 「법이 그러하니 공양을 받음이 합당하다」라고 하면서 먹고 나서는 머리를 맞대고 시끄럽게 떠듦에 단지 세간의 잡된 말들만 하고 있으니 그러한 즉 한 때의 쾌락을 쫓는 것이여, 즐거움이 이 고통의 원인이 되는 줄을 알지 못함이로다.

다겁생을 살아오면서 티끌세계만을 쫓아서 일찍이 돌이켜 자신의 삶을 반성하지(살펴보지) 못하였는데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지날수록 받아 쓴 것은 점차 많아지고 시주의 은혜는 두터워만 지는데, 움직였다 하면 해를 지내는데도(한 해 한 해가 헛되게 지나가건만) 버리고 여윌 생각은 하지 않고 쌓이고 모인 것은 점점 많아지는데도 헛된 몸뚱이만 보호하고(가꾸고) 지키는구나. 인도하는 스승(부처님)께서 칙명하여 계로써 비구들을 힘쓰게 하셨는데 도를 배우는 사람들이 몸가짐을 엄히 하되 삼상을 부족하게 하라 하셨거늘, 사람들이 많이 여기에 대해서 그 맛을 탐내어 쉬지 않다가 날이 가고 달이 뜨는 사이에(수행은 하지 않고 세월만 흘러서) 바람결에(잠깐 동안에) 머리가 하얗게 세어졌구나. 후학들이 지취(나아가야 할 뜻)를 듣지 못했으면 응당 모름지기 널리 선지식에게 물어야 할 것이거늘, 장차 이르되 출가는 옷과 음식을 구하는 것을 귀히 여기는 것이라 하나니 부처님께서 먼저 계율을 제정하사 처음으로 계도하고 몽매한 사람들을 쳐서 깨우쳐 주신 궤칙과 위의가 깨끗하기가 마치 얼음이나 눈과 같아서 악을 그치고 계를 지키며 선을 짓고 불선을 범하는 것으로 초심을 묶고 단속하여 미세한 조장으로 모든 외람된 폐단을 개혁하신 계율의 법석에 일찍이 외람되게 참석하지 못하였으니 궁극적인 진리가 되는 최상의 법을 어찌 능히 밝게 분별할 수 있겠는가? 애석하다! 일생을 헛되이 보내면 후회하여도 쫓기 어렵나니라.

교리(敎理)에 일찍이 마음을 두지 못하였는지라. 현묘한 도에 계합하여 깨달을 인연이 없음이로다. 나이가 들고 승랍(僧臘)이 많아지기에 이르러서는 빈 뱃속에 마음만 높아져서 어진 벗과 친하고 가까이하기를 즐겨하지 않고 오직 거만할 줄 만 아나니, 불법과 계율을 알지 못하므로 거두고 가다듬을 마음이 전혀 없으며 혹은 큰 소리와 높은 목소리로 말을 함에 법도가 없으며 어른이나 동료나 아랫사람들을 공경하지도 않으니 바라문들의 모임과 다름이 없음이로다. 밥을 먹을 때는 유난스럽게 발우를 부딪치는 소리나 음식을 씹는 소리를 내며, 공양을 마치면 어른보다 먼저 일어나고 오고 감에 있어서도 행동거지가 괴각스러우니 스님으로서의 모습(체통)이 전혀 없음이로다. 일어나고 앉을 때도 허둥대며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 혼란스럽게 하나니 사소한 규칙이나 소소한 위의도 가지고 있지 않으니 무엇을 가져(장차 어떻게) 마음을 잡아 단속하겠는가? 뒤에 새로이 배우는 사람들이 본받을 만한 품행이 없음이로다. 겨우 깨달아 살피게 되더라도 문득(걸핏하면) 하는 말이 「나는 산에 사는 승려다」라고 하지만 아직 불교의 행지를 듣지 못하고 한결 같이 뜻을 거친 곳에 둘 뿐이니 이와 같은 소견은 대개 처음 먹은 마음이 게을러서 도철과 같이 하는 일없이 그럭저럭 사람들 사이에서 세월만 보내다가 드디어(마침내) 성글고 거칠게 되었음이로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늙고 병듦이 쫓아 와서 무슨 일에 부딪히면 마치 얼굴이 담벼락을 마주하고 있는 것과 같이 되어버렸음이로다.

후학들이 물어오면 제접 하여 이끌어 줄 말이 없으며, 비록 말이 있더라도 전장과 관련된 것이 아님이로다. 간혹 업신여기는 말이라도 들으면 곧장 후생의 무례함을 질책하며 성내는 마음을 일으켜 그 사람을 꾸짖다가 하루아침에 병들어 침상에 누워서 온갖 고통이 얽히어 핍박함에 아침저녁으로 헤아려 생각해 보면 마음속이 혼란하고 두려워 앞길이 망망하여 어디로 가야할지를 알지 못함이로다. 이로부터 비로소 허물을 뉘우칠 줄 알지만 목이 마름에 이르러 샘을 파는 격이라. 어떻게 하겠는가. 스스로 일찍이 미리 수행하지 않다가 나이가 들어서야 여러 가지 과오와 허물이 많음을 한탄하나니 죽음에 임해서는 몸부림치며 두려워 어찌할 줄을 모른다. 비단이 뚫어지면 참새는 날아가는지라. 식심이 업을 따라가는 것은 마치 사람이 빚을 지게 되면 강한 자에게 먼저 끌려가는 것과 같아서 마음의 실마리는 여러 갈래지만 무거운 쪽으로 치우쳐 떨어지기 마련이다. 무상한 살귀는 생각 생각에 머물지 아니하나니 생명은 가히 연장하지 못하고 시간은 가히 기다려주지 않음이라. 인간세상이나 천상세계나 삼계에 있어서 응당 이를 면할 수 없음이로다. 이와 같이 몸을 받은 것이 몇 겁이나 되었는지 논을 할 수가 없는지라. 그 고통을 느낌에 탄식하고 놀라며 슬픔으로 마음이 찢어질 것 같으니 어찌 입을 다물고 경책의 말을 하지 않을 것인가.

한스러운 것은 상법과 계법의 시기에 함께 태어나 성인과 떨어진 때가 먼지라(멀다). 불법은 생소하고 사람들은 많이 게으르고 나태할세, 간략하게 좁은 소견을 펴서 뒤에 오는 이들을 깨우치고자 하나니 만약 자만심을 없애지 않는다면 진실로 윤회의 삶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니라.(윤회의 삶에서 도망하기 어렵다는 말이니 계속 윤회의 고통을 받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무릇 출가자가 세간을 초월하기 위하여 첫 발을 내딛었으면 마음과 몸을 속인과 달리하고 성현의 종자를 이어 받아 융성하게 함으로써 마군이 두려워 떨게 하고 네 가지 은혜를 보답하고 삼계를 남김없이 구제해야 하나니라. 만약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외람되게 승려의 무리에 섞였을 뿐 말과 행동이 거칠고 서툴며, 헛되이 신도의 시주만 받을 뿐 예전의 행위와 처신을 조금도 바꾸지 않으며 일생을 황홀하게 보내게 될 것이니 장차 어떻게 믿고 의지하겠는가?

하물며 당당한 스님의 모습은 그 용모가 가히 볼만하지만 그 모든 것이 전생에 선업의 뿌리를 심었기에 이와 같은 특이한 과보를 감응한 것이거늘 문득 단정히 앉아 손이나 마주잡고서 촌음을 귀중하게 여기지 아니하나니, 사업을 부지런히 하지 않으면 공을 쌓고 결과를 얻고자 하여도 능히 이룰 인연이 없을 것이다. 어찌 일생을 헛되이 보낼 수 있겠는가! 그럴 뿐만 아니라 또한 내세의 업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음이로다.

어버이를 하직하고 결연한 뜻을 세워 먹물 옷을 입은 것은 그 뜻이 어느 곳을 모두 뛰어넘고자 함인가? 아침저녁으로 생각하고 헤아려 보건대 어찌 가히 느릿느릿하게 시간만 보낼 것인가? 마음속으로 불법의 동량이 되어 훗날의 귀감이 될 것을 기약해야 할지어다. 항상 이와 같이 하더라도 약간의 상응마저 쉽지 않을 것이니라. 말을 하면 모름지기 고전의 문장(典章)을 섭렵하는 것이 되어야 하고 이야기를 함에는 곧 옛 것을 상고한 것을 가까이해야 하며, 형상과 거동은 뛰어나게 하고 의기는 고상하고 여유가 있어야 한다. 멀리 길을 나서면 반드시 어진 벗에 의지하여 자주자주 귀와 눈을 맑게 해야 하고, 머물러 수행할 때에는 반드시 모름지기 도반을 가려서 수시로 듣지 못했던 것을 들어야 하나니라. 그러한 까닭에 “나를 낳아 준 이는 부모요 나를 완성시켜 주는 이는 벗이다”라고 하였으니, 착한 사람을 가까이 따르면 마치 안개와 이슬 속을 걷는 것과 같이 비록 옷이 젖지 않더라도 때로는 축축함이 있을 것이며, 악한 자와 익숙하여 가까이하면 나쁜 지식과 견문만 늘어나 아침저녁으로 못된 짓만 할 것이니 곧 눈앞에서 과보를 받을 것이고 죽은 후에는 고통의 바다에 잠기게 될 것이다. 한 번 사람의 몸을 잃으면 만겁이 지나도록 회복하기 어렵나니 충고하는 말이 귀에 거슬린다 하여 어찌 마음에 새겨 두지 않겠는가. 문득 능히 마음을 씻고 덕을 길러서 자취를 감추고 이름을 숨기며, 정신을 올바르게 쌓고 깨끗하게 맑혀서 속세의 시끄러운 경계들을 그치고 끊을지니라.

만약 선을 참구하고 도를 배워 바로 방편의 문을 뛰어넘고자 한다면 마음을 현묘한 나루터에 계합하여 정미롭고 묘함을 연구해 다하며 심오한 진리를 가리고 선택하여 진여의 근원을 열어서 깨우쳐야 할 것이며, 널리 선지식에게 묻고 착한 벗과 늘 친하고 가까이 할지니 이 종은 그 오묘함을 얻기 어렵나니 간절히 모름지기 세심하게 마음을 써야 할 것이니라. 그렇게 하는 중에 문득 올바른 인을 깨달으면 곧 이것이 티끌세계를 벗어나는 층계이자 순서이니, 이는 곧 삼계의 이십오유를 깨뜨리는 것이니라. 안과 밖의 여러 법들이 모두 실다움이 없어서 마음을 쫓아 변화하여 일어난 것이라, 모두 이 거짓된 이름인 줄 알아서 마음으로써(마음을 가져) 머무르지 말지어다. 다만 정이 사물에 붙지만(집착하지) 않는다면 사물이 어찌 사람을 장애하겠는가. 저 법성이 두루 흐르는 대로 맡겨서 끊지도 말고 잇지도 말지어다. 소리(聲)를 듣고 색色을 볼 때에 대체로 심상하게 하고 이쪽과 저쪽에 응용하여 씀에 모자람이 없게 할지니, 이와 같이 모든 일을 행하고 그친다면 진실로 법복을 그릇 되이 입은 것이 아님이라. 또한 이에 네 가지 은혜에 보답하고 삼계를 남김없이 구제하는 것이 되며 세세생생에 만약 능히 퇴보하지 않는다면 깨달음의 지위(佛階)를 결정코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오고 감에 삼계의 나그네가 될 것이며, 나고 죽음에 다른 이의 본보기가 될지니라. 이 한 가지 학문이 가장 오묘하고 가장 그윽하니 다만 옳게 여기는 마음(긍정하는 마음)만 갖추어라. 반드시 그대(너)를 속이지 않을 것이니라.

만일 중류의 학인(선비)이 있어서 능히 단박에 초탈하지 못한다면 우선 교법에 마음을 두어 경전(패엽)을 되풀이하여 익히고 그 뜻과 이치를 정밀하게 찾아서 널리 전하고 펴서 뒤에 오는 사람들을 제접하고 인도하여 부처님의 은덕에 보답하고 시간을 또한 헛되게 낭비하지 말지니 반드시 모름지기 이러한 것으로써 자신을 붙들어 지탱해나간다면 머무르고 그치는 위의가 곧 승려 가운데 법기가 될 것이니라.

어찌 보지 못했는가! 소나무를 의지한 칡은 위로 천 길을 솟아오르나니 수승한 인연에 의탁하면 바야흐로 능히 널리 유익할 것이다. 정성스럽게 재와 계를 정성스럽게 닦아서 공연히(부질없이) 이지러뜨리거나 지나치지 말지어다. 세세생생에 수승하고 현묘한 인과라. 가히 등한히 하여 날을 보내거나 우두커니 시간을 허비하지 말지니라. 가히 한 순간도 아껴야 하거늘 오르고 정진하기를 추구하지 아니하고 한갓 시방의 신심어린 시주물만 소비한다면 이는 또한 네 가지 은혜를 저버리고 등지는 것이라. 번거로운 짐만(累) 쌓음이 점점 깊어져서 마음의 티끌들(번뇌)이 쉽게 수행을 가로막으며 나아가는 길마다 막히게 되어 이로서 사람들이 업신여기고 속이는 바가 됨이로다.

옛 사람이 이르기를 “저가 이미 장부라면, 나도 또한 그러하니 응당히 스스로 가벼이 여겨 물러서지 말라” 하셨으니 만약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한갓 불문에 있으면서 한 생을 그럭저럭 보내는 것이니 자못 이익될 것이 없을 것이다. 엎드려 바라건대, 결단성 있고 매서운 뜻을 일으키고 특별나고도 뛰어난 생각을 펼쳐서 행동거지에는 저 상류를 볼지언정 외람되이 용렬하고 비속한 하근기를 따르지 말지니라. 금생에 문득 반드시 결단할지니 생각하건대 다른 사람을 연유하지 말아야 하나니라. 뜻을 쉬고 망연을 잊어서 모든 번뇌(티끌)와 더불어 상대를 짓지 말지어다. 마음은 비고 경계는 고요한 것이건만 단지 오래도록 막혀서 통하지 않았을 뿐이니라. 이 글을 자세히 살펴보고 때때로 경책하여 굳게 주관을 세워서 인정을 따르지 말라. 업과가 끌어당기는 바는 진실로 도피하기 어렵나니라. 소리가 부드러우면 메아리도 순하고 형체가 곧으면 그림자도 단정하듯이 인과가 뚜렷한데 어찌 근심과 두려움이 없겠는가. 그러므로 경전에 이르기를 “비록 백 천겁이 지나더라도 지은 업은 없어지지 않아서 인연이 만날 때는 과보를 도리어 스스로 받게 된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알지어다! 삼계의 형벌이 사람들을 얽어맬 것이니 노력하고 부지런히 수행하여 헛되게 나날을 보내지 말지어다. 허물되고 근심되는 줄을 깊이 알기에 장차 이에 그대들에게 수행하고 지계하기를 권하나니, 백겁과 천생동안 곳곳에서 함께 법의 도반이 되기를 바라노라.

이에 명을 지어 말한다.

허깨비와 같은 몸과 꿈 속의 집이여, 허공에서 잠깐 피었다 사라지는 허공의 꽃(空花)이로다. 앞길도 다함이 없거는 뒷길인들 어찌 다함이 있으리오. 이곳에서 벗어나면 저곳으로 빠지나니 올라갔다, 내려갔다(윤회하는 것) 피로하기 그지없음이로다. 끊임없는 삼계윤회 면하지 못했거니 그 어느 때 어디에서 휴식할 수 있겠는가? 세간을 탐연하여 오음과 십이인연으로 바탕을 이루었음이로다. 태어나면서부터 늙을 때까지 어느 것 한 가지도 얻은 바가 없음이라. 근본무명이 이것으로 인하여 미혹함을 입었음이로다. 짧은 시간도 가히 아낄지니라. 찰나도 헤아리기 어렵나니 금생을 헛되이 보낸다면 오는 세상에는 더욱 막히게 됨이니라. 혼미함으로부터 혼미함에 이르기까지 모두 육적으로 인하여 육도에 윤회하게 되고 삼계에 포복하게 되었음이로다. 일찍이 눈 밝은 스승을 참방하고 덕이 높은 사람을 친하고 가까이 하여 몸과 마음을 결택하고 형극을 제거할지니라. 이 세상은 본래 덧없고 허망한 것이거니 여러 가지 인연들이 어찌 핍박할 수 있으리오. 법의 이치를 연구하고 궁구하는 것은 깨달음으로써 법칙을 삼을지니 마음과 경계를 함께 버려서 기억하지(마음에 남겨두거나 새겨두는 것) 말지어다. 육근의 작용이 편안하면 가고 오고 머무는 것이 고요할 것이며 한 마음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만법이 모두 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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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성 2016-01-19 (화) 06:13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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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