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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주림(法苑珠林) 100권 중 제 91~100권
글쓴이 : 백련사 날짜 : 2011-08-13 (토) 12:22 조회 :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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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주림(法苑珠林) 100권 중 제 91~100권

법원주림 제 91 권

서명사 사문 석도세 지음

송성수 번역

89. 수재편(受齋篇)[여기에는 2부가 있다.]

술의부(述意部) 인증부(引證部)

(1) 술의부(述意部)

대개 바른 법[正法]이 유포된 까닭은 경전을 귀중히 여기는 데에 있고 복밭[福田]이 더욱 자란 까닭은 그 공(功)이 재계(齋戒)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 끼의 저녁밥을 거르면 그 복은 양식이 남아 돌게 하고 1전(錢)의 밑천을 베풀면 그 과보는 하늘보다 월등하다. 그런 까닭에 복밭을 중히 여겨야 하고 재물은 가벼이 여겨야 하리니, 함께 무차회(無遮會)를 세움으로써 다 함께 한량없는 복을 부를 것이다.

(2) 인증부(引證部)

『구잡비유경(舊雜譬喩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4성(姓)이 부처님을 청하여 밥을 드시게 하였다. 당시에 어느 한 사람이 우유를 팔러 갔다가 큰 성바지[大姓]가 밥을 먹지 못하게 하면서 재(齋)를 지니고 계(戒) 받는 것을 가르쳐 주었으므로 경을 들은 뒤에야 돌아왔다. 그의 부인이 말하였다.

'나는 아침까지 당신을 기다리면서 아직 밥을 먹지 않았소.'

그러나 부인은 억지로 남편으로 하여금 밥을 먹게 하면서 그의 재에 대한 뜻을 깨뜨려 버렸다.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일곱 번 천상에 가 났고 일곱 번 인간에 와서 났다.

법사는 말하였다.

'하루만이라도 재를 지니면 60만 년 동안 양식이 남아돈다. 또 다섯 가지의 복이 있다. 첫째는 병이 적고, 둘째는 몸이 안온하며, 셋째는 음욕의 뜻이 적어지고, 넷째는 잠이 적어지며, 다섯째는 천상에 나게 되어서 항상 전생에 했던 일들을 안다.'

또 파사닉왕(波斯匿王)이 말리(末利) 부인에게 향영(香瓔)을 주고자 하여 궁전으로 불러내어서 보았더니, 부인은 재일(齋日)이라 소복(素服)을 입고 나왔다. 6만의 부인 가운데서도 밝기가 해와 달 같았으며 평소보다 갑절 더 아름다웠다. 왕은 마음이 송연(悚然)해지므로 더욱 공경하면서 물었다.

'무슨 도덕이 있으시기에 그렇게 환히 빛나십니까?'

그러자 부인이 왕에게 아뢰었다.

'제 자신이 생각해 보아도 복이 적은지라 이렇게 여인의 몸을 받아서 정태(情態)가 더럽고 밤낮으로 명을 재촉해 3악도에 떨어질까 두려워하나이다. 이 때문에 달마다 불법의 재를 받들면서 애욕을 끊고 도(道)를 따르고 있사오며 세상마다 복을 받고자 하옵니다. 그 향영은 세존께 바치옵소서.' "

또 『중아함경(中阿含經)』에서 말하였다.

"그 때 녹자모(鹿子母) 비사가(毘舍?)가 새벽에 목욕하고 희고 깨끗한 옷을 입고는 아들과 며느리들의 권속을 데리고 부처님께로 와서 머리 조아려 예배하고 세존께 아뢰었다.

'제가 이제 재를 지녔으면 좋겠나이다.'

그러자 세존께서 그에게 물으셨다.

'거사(居士)의 부인은 지금 어떠한 재를 지니고 싶은가? 재에는 세 가지가 있느니라.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첫째는 소를 놓아기르는 아이의 재[放牛兒齋]요, 둘째는 니건의 재[尼?齋]이며, 셋째는 거룩한 8지재[聖八支齋]니라.

무엇을 소를 놓아 기르는 아이의 재라 하는가? 소를 놓아 풀을 뜯기는 아이가 아침에는 진펄 가운데 놓아 두었다가 해가 저물면 거두어서 마을로 돌아오느니라. 그는 마을로 돌아올 때 생각하기를 (나는 오늘 이곳에서 소를 놓아 먹였으니, 내일은 저곳에서 소를 놓아 먹여야겠다. 나는 오늘 이곳에서 소에게 물을 마시게 했으니, 내일은 저곳에서 소에게 물을 마시게 해야겠다. 나와 소가 오늘은 이곳에서 묵었으니, 내일은 저곳에서 묵어야겠다)고 하느니라. 그와 같아서 어떤 사람이 재를 지닐 때에 생각하기를 (난 오늘 이와 같은 밥을 먹었으니, 내일은 저와 같은 밥을 먹어야겠다. 나는 이와 같은 음료수를 마셨으니 내일은 저와 같은 음료수를 마셔야겠다. 나는 오늘 이와 같은 음식을 먹고 소화시켰으니, 내일은 저와 같은 음식을 먹고 소화시켜야겠다)고 하나니, 그 사람이 이렇게 밤낮으로 탐욕의 허물에 집착하고 있는 것을 소를 놓아 기르는 아이의 재라 하느니라. 만일 이렇게 재를 지니면 큰 이익도 얻지 못하고 큰 과위도 증득하지 못하며 큰 공덕도 없고 널리 유포되지도 않는다.

무엇을 니건의 재라 하는가? 만일 출가한 니건이면 그는 남들에게 권하기를 (그대들은 동쪽의 1백 유순(由旬) 밖에 있는 중생이 있으면서 그대들을 옹호하고 있으니, 칼과 몽둥이를 버리라. 이와 같이 남쪽·서쪽·북쪽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다)고 하면서, 혹은 옷을 벗고 벌거숭이가 되어 (우리는 부모와 처자가 없다)고 하며 허망한 말을 권하며 참된 이치라 하기도 하며, 혹은 고행을 하면서 스스로 굶주리는 등 온갖 삿된 법에 집착하기도 하나니, 이것을 니건의 재라 하느니라. 만일 이렇게 재를 지니면 역시 큰 이익을 얻지 못하고 큰 과위도 증득하지 못하며, 큰 공덕도 없고 널리 유포되지도 않느니라.

무엇을 거룩한 8지재라 하는가? 견문이 많은 성인들의 제자가 재를 지닐 때 생각하기를 (아라하(阿羅訶) 진인(眞人)께서는 몸과 수명이 다하시도록 살생을 여의고 살생을 끊으며 칼과 몽둥이를 버리신다. 자기 자신에게나 남에게 부끄러워함이 있고, 자비심이 있으면서 온갖 것을 이익 되게 하시며 곤충에 이르기까지 살생에 대한 마음이 청정하시다. 나아가 몸과 수명이 다하시도록 때 아닐 적의 음식을 여의고 때 아닐 적의 음식을 끊으며 한 끼만 잡수시고 저녁밥은 잡수시지 않으며 때맞추어 잡수시기를 좋아하신다. 나는 이 부문에서는 아라하 등과 같아서 다름이 없다. 그러므로 재를 설명한다)고 한다. 그들은 이 거룩한 8지재에 머무른 뒤에는 위의 것에 대하여 다시 여래· 무소착(無所着) 등 10호(號)와 세간 밖의 청정한 법을 기억하면서 더러운 악과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나니, 이것을 거룩한 8지재라 하느니라. 만일 족성녀(族姓女)가 거룩한 8지재를 지니면 죽은 뒤에는 6욕천(欲天)에 가 나고 멀리는 네 가지 사문의 과위[四沙門果]를 얻으리라.' "

또 『승기율(僧祇律)』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사위성(舍衛城)에 계실 때였다. 남방에 대림(大林)이라는 읍(邑)이 있었는데 당시 어느 상인(商人)이 소 여덟 마리를 몰고 북방의 구다국(俱多國)에 가서 한 상인과 함께 진펄 안에서 소를 놓아 먹이고 있었다. 그 때 어느 이차(離車)가 용을 붙잡아서 먹으려 하였다. 그 붙잡힌 용은 용녀(龍女)였는데 그 용녀는 포살(布薩)의 법을 받은지라 해치려고 하는 마음이 없었다. 그러나 이차는 코를 뚫어서 끌고 갔다. 상인은 그것을 보고 곧 인자한 마음을 일으켜서 이차에게 물었다.

'당신은 이 용을 끌고 가서 무엇을 하려고 하십니까?'

'나는 죽여서 먹으려고 합니다.'

상인이 또 말하였다.

'죽이지 마십시오. 내가 당신에게 소 한 마리를 드릴 터이니, 바꾸십시다.'

그러나 그는 듣지 않았으므로 차츰 여덟 마리까지 다 준다고 하자 그제야 말하였다.

'이 고기는 아주 맛이 있는 것인데, 이제 당신을 위하여 놓아주겠습니다.'

그리고는 소들과 바꾸었다.

상인은 용녀를 놓아 보낸 뒤에 생각하였다.

'이 사람은 나쁜 사람이다. 다시 쫓아가서 붙잡아 갈까 두렵구나.'

그리고는 다른 못 안에다 놓아주면서 뒤를 따라가 보고 있었다. 그러자 용은 사람으로 변화하여 상인에게 말하였다.

'하늘[天]께서 저의 목숨을 베푸셨습니다. 이제 은혜를 갚고자 하니 함께 용궁으로 들어가십시오. 하늘의 은혜를 갚아야겠습니다.'

상인이 대답하였다.

'용의 성질은 갑작스러워서 언제 변하여 성을 낼지 모릅니다. 혹은 나를 죽일지도 모릅니다.'

용이 말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아까 그 사람이 나를 묶었지만 나의 힘은 그 사람을 죽일 수도 있었습니다. 다만 포살의 법을 받고 있었는지라, 도무지 죽이려는 마음이 없었을 뿐입니다. 하물며 하늘께서는 이제 저의 수명을 살려 주셨는데 어찌 해치겠습니까? 만일 가시지 않겠다면 조금만 여기에 계십시오. 제가 먼저 가서 정돈을 좀 하겠습니다.'

그리고는 곧 들어갔다. 뒤를 따라서 상인도 용궁으로 들어가다가 용궁 문 곁에 두 마리의 용이 한 곳에 묶여 있는 것을 보고 물었다.

'그대들은 무슨 일로 묶여 있는가?'

대답하였다.

'이 용녀는 반달 동안에 3일씩 재법(齋法)을 받는데, 우리 형제가 이 용녀를 수호하고 있다가 잘못하여 저 이차에게 붙잡히게 했습니다. 이 때문에 묶여 있는 것인데, 하늘께서는 인자한 말씀을 하셔서 우리를 놓아주게 해 주십시오.'

용녀는 그 동안 정돈을 다 하고 나서 즉시 곧 궁중으로 불러 들여서 보배 평상 위에 앉게 하고는 아뢰었다.

'용궁 안에는 수명이 다하기까지 소화되는 음식이 있고, 20년 동안 소화되는 음식이 있고, 7년 동안 소화되는 음식이 있으며, 염부제(閻浮提) 사람이 먹는 음식도 있습니다. 하늘께서는 이제 어느 음식을 드시겠습니까?'

'염부제의 음식을 먹겠습니다.'

그러자 곧 갖가지 음식을 차려다 주었다. 그 때 상인이 용녀에게 물었다.

'이 용들은 무엇 때문에 묶여 있습니까?'

용녀가 대답하였다.

'이들에게는 잘못이 있습니다. 나는 그들을 죽일 것입니다.'

'당신은 죽이지 마십시오.'

'그럴 수 없습니다. 반드시 그들을 죽여야 합니다.'

'당신이 그들을 놓아 주어야 나는 이 음식을 먹겠습니다.'

그러자 용녀가 즉시 말했다.

'곧장 그렇게 놓아줄 수는 없고, 6개월 동안 벌로서 인간에 내쫓아 버리겠습니다.'

그리하여 음식을 먹은 뒤에 상인은 용궁 안을 보았더니 갖가지 보물로써 궁전이 장엄되어 있었으므로 용녀에게 물었다.

'당신은 이러한 장엄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포살의 법을 받은 것은 무엇 때문이오?'

'우리 용의 법에는 고통 받는 다섯 가지 일이 있습니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낳을 때와 잠잘 때와 음행할 때와 성낼 때와 죽을 때입니다. 하루 동안에도 세 번이나 가죽과 살이 땅에 떨어지면서 이글거리는 뜨거운 모래가 몸을 지집니다.'

다시 물었다.

'당신은 어떤 것을 구하고자 하십니까?'

'인간 안에 태어나겠습니다. 축생 안에서는 괴롭고 법을 모르기 때문에 여래께 나아가서 출가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용녀는 곧 금덩이 여덟 개를 주면서 말하였다.

'이 금이면 당신의 부모와 권속들이 종신토록 쓰셔도 다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리고는 또 말하였다.

'당신은 눈을 감으십시오.'

용녀는 곧 신통 변화로 본국에다 데려다 놓았다. 그리하여 그 상인은 여덟 개의 금덩이를 부모에게 드리면서 말했다.

'이것이 바로 용이 준 금입니다.'

그리고 잘라서 쓰고 나면 다시 또 생겼으므로 수명이 다하도록 썼으나 다하는 때가 없었다.[생각건대 인자한 일은 행하지 않을 수 없다. 잠시 동안 용녀를 구제한 은혜의 과보도 오히려 이렇게 뛰어나거늘, 하물며 큰 재를 지녀 복을 받는 일이 어찌 적겠는가?]"

또 『보살수재경(菩薩受齋經)』에서 말하였다.

"'아무개는 스스로 부처님께 귀의하옵고, 스스로 교법에 귀의하오며, 스스로 승가에 귀의하나이다.

아무개는 몸으로 행한 악과 입으로 말한 악과 뜻으로 생각한 악을 이제 이미 없애버렸나이다.

아무개는 며칠 동안 낮과 밤으로 보살의 재를 받아 스스로 보살님께 귀의하옵나이다.'

부처님께서 수보리(須菩提)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의 재일에는 10계가 있느니라. 첫째, 보살은 재일에 연지와 분과 향을 바르거나 꽃을 달지 말 것이다. 둘째, 보살은 재일에 노래하고 춤추고 북을 치면서 풍악을 울리거나 장식하지 말 것이다. 셋째, 보살은 재일에 높은 평상 위에 눕지 말 것이다. 넷째, 보살은 재일에 한낮이 지난 뒤에는 밥을 먹지 말 것이다. 다섯째, 보살은 재일에 칼이나 금·은 등의 값진 보물을 갖지 말 것이다. 여섯째, 보살은 재일에 수레나 소와 말을 타지 말 것이다. 일곱째, 보살은 재일에 아이나 노비나 짐승을 때리지 말 것이다. 여덟째, 보살은 재일에 모두 이 재를 지니면서 분수에 따라 보시로 복을 지을 것이다. 보살은 재일에 누울 때를 제외하고는 부처님 앞에 합장하고서 이렇게 말한다. (오늘 일체의 시방에서 재계를 지닌 이와 6도(度)를 행한 이가 있으면, 저 아무개는 모두 도와 편안하게 하고 한량없이 권하고 돕고 기뻐하면서 복을 베푸오니, 시방의 온갖 사람과 사람 아닌 이들이 고통과 액난을 받는 곳에 있으면 모두가 복을 얻어서 근심과 고통에서 해탈하게 하옵시며, 사람으로 태어나게 되어 안온함과 풍요의 즐거움이 끝이 없어지이다)고 할 것이다. 아홉째, 보살은 재일에 그릇 안의 음식을 다 먹지 말 것이다. 열째, 보살은 재일에 여인과 함께 웃지도 말고 같이 앉아 있지도 말 것이며 여인도 역시 그러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10계이니, 범하지 말 것이요 남을 시켜서 범하게 하지도 말 것이며, 또한 남들이 범하도록 권하지도 말 것이니라.' "

보살의 해재법(解齋法)은 이렇게 말한다.

"나무 불 나무 법 나무 비구승. 저 아무개는 얼마 되지 않는 낮과 얼마 되지 않는 밤에 보살의 재를 지녔사오며, 분수에 따라 보시하였사오니 장차 6바라밀(波羅密)을 얻어야 하오리이다."

모든 보살은 6만의 보살이 행하는 법과 같이 재일의 밤에는 일부분은 참선하고 일부분은 독경하고 일부분은 눕는 것과 같이 한다. 이것이 보살이 재일에 하는 법이다.

정월 14일부터 받아서 17일에 해재한다.

4월 8일부터 받아서 15일에 해재한다.

7월 1일부터 받아서 16일에 해재한다.

9월 14일부터 받아서 16일에 해재한다.

이미 재를 받고 나서 만일 해재하고 싶다면 반드시 환히 밝아져야 비로소 죽을 먹게 되며, 그렇지 않으면 파재(破齋)이다. 무엇을 환히 밝을 때라 하는가? 『살바다론(薩婆多論)』에서 말한 바와 같이 밝은 모양에는 세 가지 빛이 있다. 만일 해가 염부제(閻浮提)의 나무에 비치면 검은 빛이 있게 되고, 만일 나무의 잎에 비치면 푸른빛이 있으며, 만일 나무의 잎을 지나가게 되면 흰빛이 있게 된다. 이 세 가지 빛 가운데서 흰 빛이 바로 환히 밝을 때이니, 비로소 해재할 수 있고 죽을 먹을 수 있다.

게송을 읊는다.

달마다 맑은 재(齋) 세우게 되면

좋은 날마다 끝없는 복을 부르나니

4부중(部衆)은 이 때에 모이게 되고

7중(衆)은 모여서 법당에 오른다.

조용히 청아한 범패(梵唄)가 일어나면

슬퍼하듯 애원하듯 궁상(宮商)이 울리며

향기는 허공 위로 올라가

바람 타고 먼 데로 흩어져 간다.

덕(德)을 찬탄하며 깊은 이치 연구하여

말로써 오묘한 향내를 펴며

번뇌 씻고 묘한 구절을 바치면

때가 되면 아름다운 글이 터진다.

승속[緇素]이 서로 의탁하면서

재물[財]·법(法)의 보시로 신령한 빛 일으키매

복 밭이 이 저녁에 가득히 차고

그 은혜 존(存)과 망(亡)을 세우누나.

감응연(感應緣)[대충 네 가지 증험을 인용한다.]

동진(東晋) 사문(沙門) 법현(法顯)

송(宋)나라 사문 승가달다(僧伽達多)

송(宋)나라 거사(居士) 곽전(郭銓)

고제(高劑)의 사문 보공(寶公)

동진(東晋) 사문(沙門) 법현(法顯)

동진(東晋)의 서주(徐州) 오사(吳寺)에 모셔 있는 태자 사유상(太子 思惟像).

옛날 진(晋)나라 사문 법현(法顯)이 굳은 지조를 힘쓰면서 서천(西天)의 성인이 계시던 자취를 돌아다닐 때였다. 한 절에 들렀더니 온 대중이 영접하였다. 법현이 그 때에 마침 병을 앓게 되자 주인 상좌(上座)가 몸소 간병해 주면서 사미에게 객스님을 위하여 본국으로 가서 음식을 가져오게 하였다. 그러자 잠깐 동안에 갔다 돌아오는데 다리에 피가 줄줄 흘렀다. 그러면서 말하였다.

"팽성(彭城)의 오창응(吳蒼鷹)의 집으로 가서 밥을 구걸하다가 개에게 물렸다."

법현은 그가 수만 리 밖을 얼마 되지 않는 동안에 갔다 오는 것을 괴이히 여기다가, 그제야 절에 계신 스님들이 다 보통 사람들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 뒤에 배를 타고 본국으로 돌아와서 일부러 팽성으로 가서 오창응을 방문하여 그에게 그런 일을 자세히 물어 보았더니, 그런 일이 있었다고 대답하면서 아직도 문에 피가 칠해진 것을 가리켜 보였다. 그 때에 법현은 말하였다.

"이것은 아라한이신 성인의 피 입니다. 그 때에 음식만 구걸했을 터인데 어째서 다치게 하셨습니까?"

창응은 이 말을 듣고 부끄럽고 또 한편 죄송해서 곧 그 집을 절로 만들었다. 그리고는 자기 자신이 양도(楊都)로 가서 모든 경전과 불상을 구하기 위해 떠났다. 마침 강 한중간을 건너가고 있는데 배가 한쪽으로 기울더니 갑자기 길이가 한 길[一丈]씩이나 되는 두 개의 뼈가 물결을 따라 올라와 배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물결은 잔잔해져서 저 언덕까지 건너왔다. 이 일을 임금에게 아뢴 뒤에야 용의 이[龍齒]임을 알았다.

창응은 아직도 불상을 구하지 못했으므로 강을 거슬러 서쪽으로 올라가서 잠시 동안 숲 사이에서 쉬고 있었다. 그런데 우연히 한 바라문승(婆羅門僧)이 불상을 모시고 가는 것을 만났는데, 그가 이렇게 말하였다.

"서주로 가서 오창응에게 공양할 것입니다."

창응이 말하였다.

"틀림없이 말씀대로라면 제자가 바로 오창응입니다."

창응은 그 승려가 불상을 곧 건네 주었으므로 모시고 돌아와 서울에 도착했다. 그때에 임금은 영을 내려서 똑같은 불상 10구(軀)를 조성한 뒤에 발 밑에다 '남들은 새 불상과 옛 불상에 대하여 말을 하지 말라'고 새겨 놓고는 창응 한 사람으로 하여금 혼자 그 본래의 불상을 찾아내게 하였다. 창응은 본래의 불상이 꿈에 그 본래의 모습을 지시해 주셨으므로 바로 맞추어서 도로 찾아냈다. 그 본래의 불상이 동쪽 서주로 돌아갈 때에는 매양 신령한 광명을 놓으셨다. 원위(元魏) 효문제(孝文帝)가 청하여 북대(北臺)에다 모셨고, 고제(高劑) 후주(後主) 때에 사신 상표지(常彪之)를 파견하여 업(?) 아래로 모시게 했다. 제(齋)나라가 멸망하고 주(周)가 폐멸하자 스님들이 몰래 감추었고, 수나라가 교법을 열 때에 도로 광영이 거듭 드러나게 되었다. 지금 상주(相州)의 대자사(大慈寺)에 모셔져 있다.[이 한 가지 증험은 『진사잡록(晋史雜錄)』에 나온다.]

송(宋)나라 사문 승가달다(僧伽達多)

송(宋)나라 경사(京師) 도림사(道林寺)에는 사문 승가달다(僧伽達多) 등이 있었다. 다 같이 경론(經論)에 널리 통달했으나 너무 참선을 업으로 삼는 것에 치우쳐 있었다. 원가(元嘉)의 초에 송나라 지경을 유행할 적에 승가달다는 항상 산중에서 좌선하고 있었다. 시일이 다가왔으므로 생각에 재(齋)를 받으려고 하는데 새 떼들이 과일을 물고 날아와서 그에게 주었다. 그래서 승가달다는 생각하기를, '옛날 원숭이가 꿀을 바치자 부처님께서도 받아 잡수셨다. 이제 나는 새들이 음식을 주는데 무엇 때문에 안 받아 먹겠느냐' 하고, 그것을 받아먹었다.[이 한 가지 증험은 『양고승전(梁高僧傳)』에 나온다.]

송(宋)나라 거사(居士) 곽전(郭銓)

송(宋)나라 순양(順陽)의 곽전(郭銓)은 자(字)가 중형(仲衡)이며 진(晋)나라의 익주 자사(益州刺使)였다. 죽은 지 30여 년 후에 갑자기 몸을 나타내어 남양(南陽)에 사는 사위 유응지(劉凝之)의 집에 왔다. 수레의 호위가 대단했는데 그는 응지에게 말하였다.

"내가 귀양갈 일이 생겼네. 나를 위하여 서른 분의 스님을 모셔다 재회(齋會)를 베풀어 주게. 그래야 면할 수 있네."

그런 말을 하고는 그만 보이지 않았다. 유응지는 도깨비의 장난이라 여기면서 뜻에 두지 않았다. 그 후에 곽전은 또 딸의 꿈에 나타나서 말하였다.

"내가 귀향을 가서 벌을 받게 되어 있어서 이미 사위에게 재회를 베풀어 달라고 부탁했었다. 좀 도와줄 수 없느냐?"

이런 꿈을 꾸고 딸은 새벽에 일어났더니, 곽전이 나타나 문 밖을 지나가면서 성을 내면서 말하였다.

"끝내 구제받지 못해서 이제는 죄를 받으러 가는 길이다."

딸이 뛰어가서 아버지를 불러 멈추게 하고는 물었다.

"어디서 재회를 베풀어야 합니까?"

그가 대답하였다.

"우리 집으로 가서 하면 된다."

그리고는 홀연히 또 사라져버렸다. 그리하여 유응지는 곧 허겁지겁 공양을 마련하여 재를 베풀었다. 재회가 끝나자 어떤 사람이 곽전의 전갈이라 하면서 응지에게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자네의 두터운 은혜로 비로소 용서를 받았네."

이런 말을 한 그 뒤부터는 아무 일도 없어졌다.[이 한 가지 증험은 『명상기(冥祥記)』에 나온다.]

고제(高劑)의 사문 보공(寶公)

고제(高齊) 초의 사문 보공(寶公)은 숭산(嵩山)에서 속세를 떠나 조용히 사신 분이었다. 아침에 임려(林廬)로부터 백록산(白鹿山)을 향해 가다가 길을 잃어버렸는데 해가 사시(巳時)쯤 되었을 적에 갑자기 종소리가 들렸으므로 그 소리를 따라 나아갔다. 바위와 바위굴에 거듭 막혔으나 계속 타고 올라갔는데 그러다가 하나의 절이 나타나서 깊은 숲에 홀로 자리잡고 있었다. 세 개의 문은 정남(正南)이었고 빛이 번쩍거렸다. 더 앞으로 문 있는 데까지 가서 현판을 보았더니 영은지사(靈隱之寺)라고 쓰여 있었다. 문 밖에는 대여섯 마리의 개가 있었고 그 크기는 마치 소와 같았다. 흰털에 검은 부리였으며 혹은 뛰놀기도 하고, 혹은 누워 있으면서 보공을 곁눈질하여 보기도 했다. 보공은 두려운 생각이 나서 돌아가려는 참이었는데 그 순간 호승(胡僧)이 밖에서 들어 왔다. 그래서 보공이 그를 불러 보았으나 아무 대답 없이 돌아보지도 않고 곧장 문 안으로 들어가 버렸으며 개들도 그를 따라 들어갔다.

한참 있다가 보공은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다가가서 다음 문으로 들어갔다. 집의 사방 주위에는 방문들이 모두 닫혀져 있었으며 곧장 그대로 가니 강당에 이르렀다. 거기에는 높고 장엄하게 생긴 걸상만이 놓여 있을 뿐이었다.

보공은 서남쪽의 모퉁이로 들어가 걸상 위에 앉았다. 그런 지 한참 되었는데 갑자기 기둥 사이에서 소리가 들려왔으므로 쳐다보았더니, 거기에는 샘 크기만큼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 때 비구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구멍을 통하여 날아 내려왔다. 마침내 5,60인쯤 되었으며, 자리를 찾아 앉은 뒤에 서로에게 물었다.

"오늘 끼니때에는 어디서들 잡수시고 오셨습니까?"

그러자 어떤 이는 예장(豫章)이라 하기도 하고, 혹은 성도(成都)라 하기도 하고, 혹은 장안(長安)이라 하기도 하고, 혹은 농서(?西)라 하기도 하고, 혹은 우계(右?)라 하기도 하고, 혹은 북령(北嶺)이라 하기도 하고, 혹은 남방의 5천축(天竺)이라 하기도 하였다. 모두가 가지 않은 데가 없었으며 갔다 온 곳도 곧 천리만리가 되었다.

제일 마지막에 한 스님이 공중에서 내려왔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이 다투어 물었다.

"어째서 그리 늦으셨소?"

그 스님이 대답하였다.

"오늘 상주성(相州城) 동쪽 피안사(彼岸寺)에서 감 선사(鑒禪師)가 강(講)하는 법회가 있었는데 저마다 이치를 들고 나와 논의하였습니다. 후생(後生)들이 아주 총명하고 걸출하여서 힐문하고 있었는데 말이나 뜻이 날카로웠습니다. 자못 가관(可觀)이었으므로 모르는 결에 그만 늦어버렸습니다."

보공은 본래 감 선사를 화상(和尙)으로 섬겼던 터라 이런 말을 듣고 말참견도 할 겸, 그가 감 선사의 큰 제자임을 알리기 위하여 옷을 바로 잡고 일어나서 여러 스님들에게 말하였다.

"감 선사가 바로 저의 화상이십니다."

그러자 모든 스님들이 똑바로 한참 쏘아보더니 갑자기 그 자리에서 없어져 버렸다. 그리고 오직 보공 혼자만이 떡갈나무 아래 있는 넓고 평평한 큰 돌 위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아까까지 있던 절집도 하나도 보이지 않았으며 바위와 골짜기만이 있었다. 날짐승들이 날아와 시끄럽게 지저귀었으므로 마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리하여 거기서 나온 뒤에 그것을 상통(尙統) 법사에게 물었더니, 상통은 이렇게 말하였다.

"이 절은 조(趙)나라 때에 불도징(佛圖澄) 법사께서 지은 곳으로서 오랜 세월 동안 성현들이 살고 계시며 범부들이 사는 곳이 아니랍니다. 그리고 나타나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면서 이리저리 옮기며 일정한 곳에 없다고 합니다."

지금도 그 산으로 가면 아직도 종소리를 듣는다 한다.[이 한 가지 증험은 『후군소정이기록(侯君素旌異記錄)』에 나온다.]

90. 파재편(破齋篇)[여기에는 2부가 있다.]

술의부(述意部) 인증부(引證部)

(1) 술의부(述意部)

생각건대 덧없고 괴롭고 공(空)하므로 생기는 슬픔은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우환을 생각하게 한다. 오랜 세월 동안 거꾸로 매달린 고통을 슬퍼하고 보잘것없이 함정에 빠졌음을 서러워하나니, 그를 생각만 해도 아프고 쓰라리며 또한 몹시 두렵다. 진실로 복전(福田)이 가볍고 얇으면 신시(信施)를 녹이기 어렵고 재계가 견고하지 못하면 그 일은 굽지 않은 흙 병[?甁]과 같으니, 깨지기는 쉽고 지니기도 어려우며 또 서리와 이슬과도 같은데, 아상(我相)과 인상(人相)은 더욱 왕성하여 그 집착은 아교와 칠보다 더욱더 굳다. 오랜 겁의 재앙은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다만 한 몸의 목숨만을 근심하고 있는데, 그런 까닭에 배불리 먹고 오래도록 잠자고 있으니, 개·돼지와 무엇이 다르랴. 재를 깨뜨리고 밤에 먹는 것은 아귀의 갈래와 다름이 없나니, 이 때문에 시주(施主)는 때에 알맞은 복을 잃게 되고 중승(衆僧)은 좋은 밭의 종자를 손상하게 된다.

(2) 인증부(引證部)

『사리불문경(舍利弗問經)』에서 말하였다.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모든 단월들이 상가의 가람(伽藍)을 짓고 후히 살림을 대면서 오가는 스님들께 공양을 하거니와 형상만으로 출가한 어떤 스님은 때 아닐 적[非時]에 남이 걸식해서 맡겨 놓은 밥을 먹는데, 주어서 먹게 하는 이와 먹는 이는 어떠한 죄를 얻게 되나이까? 그리고 그 본시의 단월은 어떠한 복을 받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때 아닐 적에 먹는 이는 바로 파계한 사람이요, 이는 도계(盜戒)를 범하는 사람이다. 때 아닐 적에 주는 이도 역시 파계한 사람이요, 역시 도계를 범하는 사람이다. 단월의 재물을 훔친 것이요, 이는 주지 않은 것을 가진 것이니, 시주의 뜻이 아니다. 시주에게도 복이 없음은 재물을 잃었기 때문이니, 오히려 발심(發心)이 있어도 그대로 놓아두고 세워두는 선(善)일 뿐이니라.'

사리불이 말하였다.

'때에 받고 때에 먹다가 다 먹지 못한 이가 때 아닐 적에 다시 먹거나, 혹은 어떤 이가 때에 받아서 때 아닐 적에 먹게 되면 모두 복을 얻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때와 먹는 것이 청정하면 이것이 곧 복전이요, 이것이 곧 출가요, 이것이 곧 상가요, 이것이 곧 하늘과 인간의 좋은 벗이요, 이것이 곧 하늘과 인간의 길잡이이거니와, 그것이 청정하지 않으면 오히려 파계가 되어서 이것은 대겁(大劫)의 도둑이요, 이것은 곧 아귀요, 죄의 굴 집[窟宅]이니라.'

때 아닐 적에 밥을 찾는 이나, 때와 때 아닐 적에 주어서 이를 먹게 한 이도 도에서 물러난 이라 하니 이것을 악마라 하고, 이것을 3악도라 하고, 이것을 깨진 그릇이라 하고, 이것을 나병(癩病)에 걸린 사람이라 하나니, 좋은 결과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이는 걸식한 것을 훔쳐서 스스로 생활하는 것이니, 이 때문에 모든 바라문조차도 때 아닐 적에는 먹지 않고, 외도 범지조차도 삿된 생활로써 먹지 않거든 하물며 나의 제자로서 법을 알고 법을 행하는 이가 그러할 수 있겠느냐? 무릇 이와 같은 이는 나의 제자가 아니다. 이는 나의 법과 이익을 훔치고 도리에 어긋난 일에 집착하는 사람이니, 이를 밥을 훔쳐 먹는 법답지 못한 사람이라 하느니라.

훔쳐서 주고 훔쳐서 받는 한 덩이, 한 움큼의 음식이나 한 조각의 소금과 한방울의 초[酢]라 해도 모두 죽으면 장을 태우는[?腸] 지옥에 떨어져서 이글거리를 철환(鐵丸)을 삼킬 것이요, 그 지옥에서 벗어나면 돼지와 개로 나서 모든 부정한 것을 먹게 된다. 또 나쁜 새로 나서 사람들은 그의 소리를 괴상히 여기며, 그 뒤에는 아귀로 나서 가람(伽藍) 안으로 돌아와 뒷간에 있으면서 백천만 년 동안 더러운 찌꺼기를 먹고 있다가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지만 가난하고 하천하여 사람들이 버림과 미움을 받으며, 사람들이 신용하지 않는 것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느니라. 차라리 한 사람의 물건을 훔친 죄가 오히려 가볍다. 그것은 많은 사람의 것을 빼앗았기 때문이요, 어진 복전이었기 때문이며, 출세간의 도[出世道]를 끊었기 때문이니라.' " ....

첨부 파일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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