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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 60권 중 제 21~30권
글쓴이 : 백련사 날짜 : 2011-08-08 (월) 18:09 조회 : 2043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 제 21~30권.hwp (229.5K), Down : 57, 2011-08-08 18:09:22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 60권 중 제 21~30권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

1. 개요

60권. K-802(20-586). T-190(3-655). 수(隋) 시대(A.D. 587∼591) 번역. [역] 사나굴다( 那堀多). [범] Abhini krama a-s tra. [약] 본행집경(本行集經).

부처님의 생애를 다룬 것으로 부처님의 전생부터 부처님이 출가 성도한 과정, 그리고 전법(傳法)의 과정에서 만난 제자들의 인연까지 설하고 있다.

60품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내용상으로는 크게 전생기(前生期), 금생기(今生期), 전도기(傳道期) 등의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전생기는 불통보(佛統譜), 속통보(俗統譜), 탁태전(託胎傳) 등으로 다시 나뉘어지는데 부처님이 보리심을 일으켜 보살행을 하고 수기를 받음으로써 마야 부인에게 수태되기까지의 전생담을 그리고 있다.

금생기는 다시 재속기(在俗期)와 출가기(出家期), 성도기(成道期)로 나누어 탄생에서부터 성장과 결혼, 출가, 고행, 성도, 그리고 범천(梵天)의 권유로 전법(傳法)을 시작하는 기간의 일들을 담고 있다. 전도기는 부처님의 교화 활동에 따른 제자들의 출가 인연이 설해지는데, 여기에는 그들의 전생담도 부가되어 설명되고 있다.

전생기는 제1품에서 제5품까지 금생기는 제37품까지 해당하며 전도기는 마지막 제60품 아난인연품(阿難因緣品)까지 해당한다.

이 경전은 한역으로만 존재한다. 대사(大事)의 이역이라는 설도 있고, 불전(佛傳)을 기본으로 하는 점에서 여러 공통점이 있지만, 이역은 아니다.

2. 경전 본문

불본행집경 제21권

수 천축삼장 사나굴다 한역

25. 왕사왕환품 ②

“그 때 정반왕께서는 또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내 지혜로운 아들아, 너는 이제 모든 친족에게 사랑하는 마음이 없겠으나 다만 내 뜻을 따라 집으로 돌아와서 내가 이제 너 때문에 근심 걱정하고 고민하여 목숨을 마치게 하지 말라. 착한 아들아, 법행(法行)을 행하는 자는 다 모든 중생에게 자비심을 낸다. 이를 법행이라 하는 것이니 어찌 자기만 깊은 산에 들어가야 비로소 법행이라 하겠느냐. 왜냐 하면 내 지난날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옛적부터 이떤 사람들은 자기 집에 있으면서, 영락과 몸에 단 장신구를 벗지 않고 머리와 수염을 길게 길렀어도 공덕이 구족해서 해탈을 구한 까닭에 해탈의 법을 얻었다. 해탈의 법을 닦아 익히는 데는 오직 지혜와 정진만 필요로 하니 이런 것이 곧 해탈의 바른 원인이다. 네가 이제 나를 어기고 입산한 것은 이렇듯 놀랍고 두려운 5욕의 법을 피한 것일 뿐이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집에 있으면서 모든 영락으로 자기 몸을 장엄하고도 해탈을 얻었으니 이제 너를 위해 간략히 말하리라. 옛날에 수상(隨常)이라는 인자(仁者)가 있었으며 인자 역금강(力金剛)ㆍ인자 다유(多有)ㆍ인자 유행(流行)ㆍ인자 대부(大富)ㆍ인자 변천(邊天)이 있었다. 또 비제하국왕인 능생야야지왕(能生耶耶厎)[수나라 말로는 행행(行行)이라 함]과 인자 정선(淨仙)과 나마왕(羅摩王)[수나라 말로는 작희(昨喜)라 함]등 이러한 한량없는 재가의 모든 왕들도 다 해탈을 얻었으니, 너는 지금 집에 있으면서도 해탈법을 구할 수 있고, 얻을 수 있으므로 반드시 출가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너는 반드시 속히 집으로 돌아와 두 가지의 원을 이루라. 하나는 네가 5욕락을 받는 것이요, 둘째는 내 마음을 항상 기쁘게 하는 것이다. 세간에서 왕위를 받는 자가 마음에 원하는 대로 공능(功能)을 얻으면 이런 이를 참왕이라 할 것이다. 나는 이제 네가 이 원을 이루게 할 것이다. 왕위는 버리기 어려우나 나는 너를 위하기 때문에 버리기 어려운 것을 버려 너에게 왕위를 전하리라. 네가 만약 이런 인연을 이룬다면 나는 매우 기뻐할 것이며 곧 사퇴하여 세간을 버리고 출가하여 산에 들어가 도를 구하리라’는 게송을 읊으셨습니다.”

왕위는 친밀하여 버리기 어려우나

이제 다 끊어 버리고 너에게 전하리니

네가 세간을 잘 다스릴 것을 알기에

나는 기쁜 마음으로 입산하리라.

그 때 대신과 국사 바라문은 정반왕의 이런 칙명과 게송을 자세히 전하면서 보살에게 간곡히 아뢰고 따로 세 가지 일을 보살에게 간하였다. “크게 지혜로운 성자여, 이것은 성자의 부왕이신 정반왕께서 눈물을 흘리고 흐느끼며 저희들에게 내리신 쓰라리고 간절한 칙명의 말씀입니다. 이런 까닭에 성자여, 이제 부왕의 이런 괴로운 칙명을 들으시고 공경하소서. 부왕의 칙명은 어기고 거역하지 못하나이다. 성자의 부왕께서는 지금 크고 깊은 괴로운 강물에 빠져 아무도 지혜의 언덕으로 건져낼 수 없습니다. 오직 성자만이 구호하여 그 괴로움을 없애줄 수 있습니다. 마치 가장 크고 깊은 물에 빠진 이는 오직 큰 뱃사공이라야 건져낼 수 있듯이 이렇듯 성자의 부왕께서도 이제 깊은 고뇌의 바다에 빠져 아무도 건져줄 사람이 없고 오직 성자뿐이옵니다. 또 성자님께서 어릴 때 길러주신 이는 오직 교담미(憍曇彌)이신 성자의 이모이니 외롭고 쓸쓸하게 목숨을 마치지 않게 하소서. 지금 성자님 생각에 매우 괴로워하십니다. 마치 암소가 송아지를 잃고 슬피 울듯, 교담미도 눈으로 성자님을 보지 못하는 슬픔에 오열하며 항상 울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자님은 그들을 버리고 떠나서는 안 됩니다. 게다가 지난날 길러주신 은혜는 마치, 저 소가 새끼를 사랑하고 생각하듯 합니다. 또 궁내의 부녀 권속들도 역시 괴로워합니다. 또 가비라성 안의 일체 석가족 남녀노소의 인민들도 성자님을 사랑하여 마음이 타고 조이는 까닭에 고뇌의 불에 타고 있습니다. 그러하오니 성자께서 지금 돌아가서 그들을 보신다면 마치 대지가 불타고 있을 때 모든 하늘에서 크고 단비를 내려 처참하게 타는 불을 끄듯 할 것입니다.”

그 때 보살은 부왕 사신의 이런 말을 듣고 잠깐 생각에 잠겨 몸과 마음을 조복하고 숨을 돌려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나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된 자는 누구나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느니라. 나의 부왕인 정반대왕께서 나를 매우 어여삐 여기고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이 깊어 헤어져도 잊을 수 없는 줄을 알지만, 나는 이제 세간의 생ㆍ노ㆍ병ㆍ사가 두려울 뿐이다. 자신이 빠졌는데, 어찌 빠진 이를 구하겠는가? 도탈(度脫)에서 구하고자 하므로 그 모든 권속들을 버리고 떠났을 뿐이다. 누가 친애하는 이를 기꺼이 항상 보고싶어 하지 않을 것인가. 만약 세간에 사랑하는 이와 이별하는 일이 없다면 누가 세상을 즐겨하지 않을 것인가. 비록 모든 친족들과 오래도록 함께 있더라도 마지막에는 이별해야 하니 그러므로 나는 이제 사랑하는 친족과 부모님을 모두 버리고 뜻을 세워 보리를 구하는 것이다. 만약 그대들의 말대로 나를 사랑하는 까닭에 부왕께서 크게 고통스럽다 하면, 나는 이 말을 듣고 참으로 이런 은혜에 연연하거나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잠을 자다가 꿈에 친족들과 모인 것을 보았으나 깨고 나면 이별하는 것과 같다. 만약 범인(凡人)이라면 방편을 모르고 마음에 고뇌를 낼 것이니, 그는 무식하고 어리석은 중생이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친애하는 사람끼리 만나는 일은 동행이 되어 함께 길을 가다가 목적지에 이르면 각각 흩어져 제 갈 데로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까닭에 친애하는 권속도 모이면 이별이 있으니 어찌 근심하고 괴로워 하랴. 또 전세(前世)에 권속이 되었다가 버리고 이생에 왔으며, 이생의 권속들도 버리고 후세에 갈 것이며 후세에서 버리고는 다시 후세에 이른다. 이렇게 점점 번갈아서 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 모든 권속에 미련을 두고 애착하는 마음은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가? 무릇 세간 사람이란 처음에 태에 들 때부터 어디를 가나 이런 생각생각의 찰라 시간마다 모두 죽음의 귀신에게 쫓기는 존재다. 이런 것을 어찌하여 때가 되었느니 때가 아니니 하면서 ‘내 아들은 지금 입산하여 도를 구할 때가 아니라’ 하는가. 어찌 하물며 집에서 5욕을 받을 때이겠느냐? 만일 나에게 때인가 아닌가를 묻는다면 나는 대답하지 않겠다. 무엇 때문인가? 그 죽음의 귀신은 언제든 모든 중생을 잡아가지 않는 때가 없으니 이런 까닭에 내 이제 그 생ㆍ노ㆍ병ㆍ사를 여의고자 하므로 때와 때 아님이 없다 하노라”

보살은 또 말하였다. “만약 나의 부왕께서 나를 불러 ‘네가 오기만 한다면 내가 반드시 너에게 관정위(灌頂位)를 주겠다’하니 나의 부왕은 반드시 큰 서원의 마음이 있어 이렇게 어려운 일을 쉽사리 나에게 주겠지만, 애석하게도 내가 도를 닦지 못하게 하는 것이므로 나는 이 왕위를 받을 수 없다. 친애로 얽매임은 해탈하는 길이 아니다. 마치 병자가 맛난 음식을 생각하지 않듯이 어찌 지혜로운 사람이 이 세상 낙을 탐낼 것인가. 그러나 지혜가 없고 어리석은 몸은 큰 고뇌가 있는 까닭에 왕위를 받는 것이다. 이미 왕위에 있으면 마음대로 방일하고 주색에 빠져서 버리지 못한다. 마치 황금 집에 사나운 불이 타는 듯, 맛있는 국에 독약이 섞인 듯, 꽃 연못에 교룡(蛟龍)이 있는 듯하다. 이렇듯 왕위는 쾌락으로 뜻대로 즐길 수 있으나 모든 환란이 따라 다녀도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한다. 이런 인연으로 나는 지금 즐겁지 않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옳은 법도 아니다.”

그리고 게송을 읊었다.

마치 황금 집에 불길이 타는 것 같고

맛있는 음식에 독약이 섞인 듯하고

꽃이 가득 핀 못에 교룡이 있는 듯

왕위에 올라 낙을 받음은 뒤에 크게 괴로우리.

보살은 이 게송을 읊고 나서 또 이렇게 말하였다. “이런 까닭에 지난 옛날 모든 왕은 왕위를 받아 젊었을 때는 다스리고 낙을 누리다가, 노년에 이르면 5욕을 떠나 궁전을 버리고 산 숲에 들어갔다. 사람이라면 차라리 산 숲에 있으면서 풀을 먹고살지언정 궁전에 있으면서 5욕락을 받지 않을 것이다. 검은 뱀을 기르다가 뒤에 재앙을 받듯이 처음에 낙을 받을 때는 근심거리가 되고 해가 되는 줄 모르지만, 뒤에 성을 내면 드디어 사람을 무는 것이니, 차라리 집을 버리고 산 숲에 들어갈지언정 산 숲을 버리고 도로 집에 가 살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 하면 선성(先聖)들이 나무라고 싫어했기 때문이다. 내가 이제 이미 착한 집에 났으니 응당 선한 법을 닦을 것이요, 어리석은 사람과 같이 불선법을 행하거나 마음대로 방일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머리와 수염을 깎고 산 숲에 머물러 학문하고 수도하다가 뒤에 가사(袈娑)를 벗고 부끄러움을 품지 않는다면, 그는 부끄러움이 없는 어리석은 사람일 것이다. 아니면 탐심이나 진심이나 치심 때문에 혹은 남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도로 물러가는 것이다. 나는 지금 제석천궁도 부러워하지 않는데 하물며 또 내 집에 되돌아가겠는가. 비유하건대 어떤 사람이 맛난 음식을 먹고 난 뒤에 그 음식을 땅에 토해놓고 도로 먹으려 한다면 말이 되겠는가. 마찬가지로 누군가 5욕을 버리고 출가하였다가, 혹 모든 인연을 위해 도로 집에 들어가고자 하는 일도 그러하다. 마치 어떤 사람이 이미 불타는 집에서 나왔다가 도로 들어가는 것과 같이 이미 세속이 우환덩어리인 것을 보고 속인의 모양을 버리고 산에 들어가 도를 닦다가 되돌아감도 그러하다.”

그리고 게송을 읊었다.

사람이 화택(火宅)을 버리고 나갔다가

뒤에 다시 돌아오는 것같이

속세의 환란을 보고 출가하였다가

숲에서 되돌아감도 그러하네.

그 때 보살은 이 게송을 읊고 나서 두 사신에게 일렀다. “그대들은 먼저 부왕의 말씀이라 하면서 옛날 모든 왕들이 재가인으로 법을 닦으며 해탈을 얻었다 했으나 이 일은 그렇지 않다. 무슨 까닭이냐 하면, 이 두 가지 일은 인연이 서로 어긋나 매우 큰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왜냐 하면 해탈을 구하는 사람은 마음이 적정하여 미묘한 곳이라야 머무르는데, 만약 궁중에 있으면 5욕의 정이 방탕할 것이며 밖으로 인민을 다스리려면 반드시 채찍으로 때리고 죄를 꾸짖고 벌주어야 할 것이니 이런 마음으로는 해탈을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무위(無爲)의 적정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세간의 왕위를 탐내지 않을 것이요, 왕위에 있다 하더라도 버리고 떠날 것이다. 만약 왕위를 즐긴다면 그의 마음은 적정하지 못할 것이니 적정을 즐기면서도 세상일을 탐낸다면, 이 두 가지는 천지차이로 어긋나 마치 물과 불이 함께 있을 수 없는 것 같을 것이다. 이와 같이 해탈법을 구하면서 또 5욕에 애착하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까닭에 나는 이제 확실히 안다. 그들 옛날 모든 왕은 왕위를 버린 뒤에 적정한 법을 얻은 것이지 있으면서 교화할 때는 지혜가 아직 완성되지 못해 그저 배우면서 마음을 쓰고 인민을 다스렸을 뿐이요 반드시 해탈법만 구한 것은 아니다. 그들 모든 왕은 각각 자기 뜻대로 해탈을 구하거나 5욕을 누렸지만 나는 이제 그렇지 않아서 그들을 배우지도 않으며 다시 이런 마음을 내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이미 집에 머물려는 욕심의 쇠사슬을 끊고 해탈을 얻으려고 다시 세간의 5욕락을 탐착하지 않는데 어찌 집으로 돌아갈 것인가”

그 때 두 사신은 이렇게 염착이 없는 말과 오롯하고 바르고 확고한, 지극히 참된 말을 보살에게 듣고 자세히 보살에게 아뢰었다. “대성왕자여, 지금에 서원을 해서 위없는 법을 구하는 이것이 참다운 이치이긴 하나 다만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어째서 그러냐 하면 성자의 부왕께서 이렇게 근심과 고뇌를 받기 때문입니다. 이런 까닭에 성자께서 이 마음을 어기고 등지심은 바른 법이 아니옵니다.”

하고는 게송을 읊었다.

이제 법장(法藏)을 구하는 것은 이로운 일이며

비록 바른 이치가 있으나 때가 맞지 않소.

부왕은 수심의 독으로 심장을 에이니

효도를 어기면 이 무슨 도리입니까?

그 두 사신은 이 게송을 읊고 나서 거듭 성자에게 아뢰었다. “대성 왕자시여, 저희들 소견 같아서는 이 뜻은 자세하게 법행을 관찰함이 아니며, 세간의 재리(財利)와 5욕에 대해서도 교묘한 방편이 아닙니다. 왜냐 하면 성자께서는 아직 인(因)도 보지 못하셨는데 어찌 과를 구하시며, 현재 얻은 과보를 버리시고 바야흐로 미래를 구하시나이까? 대성 왕자여, 이 세간 일체 서전(書典)에는 각각 주장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뜻에 ‘미래가 있다’ 하고, 어떤 사람은 ‘미래가 없다’ 하니, 이런 뜻에 사람들은 의심이 많습니다. 이런 까닭에 성자께서는 과보를 현재에 받을 것이며 만약 내세가 없다면 어찌 정근하여 해탈을 구하려 하시나이까? 또 어떤 사람은 ‘세간에는 선도 결정되어 있고 악도 결정되어 있어서 미래세에 받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부지런히 수행하여 해탈의 도를 구하는 것은 어리석다 할 것입니다. 만약 모든 근이 결국 파괴되면 친한 이와 헤어지고 원수와 만나지며 경계가 합해졌다 자연히 떨어지면서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데, 어느 겨를에 애써 수행하고 방편을 쓰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이치에는 진실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또 태중에 있을 때 손ㆍ발ㆍ가슴ㆍ등ㆍ배ㆍ머리털ㆍ손톱이며 모든 골절과 힘줄들이 자연히 이루어집니다. 어떤 사람은 ‘몸을 이루었다가 다시 파괴된다’하고, 어떤 사람은 ‘이미 파괴되었으나 도로 자연히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선전(先典)가운데도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가시의 침이 뾰족한 것은 누가 갈아서 만들었으며 새 짐승의 여러 가지 빛깔은 누가 그렸느냐. 이것은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지 사람의 짓이 아니다. 또한 이루고자 해도 되지 않는 것이며 세간의 모든 물건은 마음을 따라 움직일 수 없는 것이다’고 하나이다.”

그래서 게송이 있었다.

뾰족한 가시의 침은 누가 간 것이며

새ㆍ짐승의 온갖 빛은 누가 그린 것인가.

각각 그 업을 따라 돌고 변하는 것

세간에 아무도 만든 사람 없다.

“또 어떤 사람은 말했습니다. ‘세간에 이루어지는 것은 다 자재천이 짓는 것이다. 만약 자연히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사람이 무엇 하러 부지런히 수고롭게 업을 짓겠는가. 이것은 유전(流轉)에 따라 스스로 오거나 또 그것이 갈 때에도 역시 유전에 따라 스스로 가는 것이 아닌가’

또 어떤 사람은 ‘분별하는 까닭에 아상(我相)이 생겨 유(有)를 받고 유가 다함도 그러하니라. 유를 받을 때도 부지런히 구할 필요 없이 저절로 받으며 유가 다할 때도 저절로 다할 것이요, 멸하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하며, 어떤 사람은 ‘세간에서 사람의 몸을 받으려 할 때 그 아버지가 남에게 빚을 지지 않았으면 곧 태어날 수 있다. 천상이나 신선에 태어나는 것도 다 그러하다. 만약 이 세 곳에서 빚을 지지 않은 사람은 부지런히 수고하여 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그곳에서 해탈한다’라고 했습니다. 이런 차례로 모든 경전에는 저마다의 주장대로 해탈을 얻는다고 하니 지혜로운 사람이 정근하여 수승한 곳을 구할 때는 반드시 자기 마음만 손상할 뿐입니다. 이런 까닭에 저희들이 생각하기에는 성자께서 해탈을 구한다면 이치에 따르고 법에 따라 이렇게 옛 경전 말씀대로 하소서. 이렇게 하시면 반드시 얻을 것을 의심치 않나이다.

성자의 자부(慈父)이신 정반대왕이 태자를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받는 괴로움을 낫게 해야 합니다. 성자시여, 지금이 바로 환궁하실 때입니다. 속으로 궁전에 대해 우환과 염증을 보더라도 생각하지 마소서. 왜냐 하면 옛날 모든 왕선(王仙)께서도 집을 버리고 산 숲에 나갔다가 뒤에 환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왕들은 각각 이름이 있습니다. 암바리사(庵婆梨沙)[수나라 말로는 허공전(處空箭)]왕은 출가하여 산 숲에 있었으나 모든 신하와 백관들이 간하고 달래므로 전후 좌우에 에워싸여 돌아갔고, 라마(羅摩)[수나라 말로는 능희(能喜)]왕은 온 천하를, 나쁜 사람들이 무너뜨리고 깨뜨리고 서로 뺏고 서로 죽이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 산에서 나와 법답게 막고 보호하였으며, 또 옛날 비야리성에 도로마(徒盧摩)[수나라 말로는 수(樹)]라 하는 대왕이 있었는데 역시 산에서 내려와 본국에 돌아온 뒤 세간을 보호했습니다.

지난 옛날에 또 이름이 사지리저(娑枳梨低)[수나라 말로는 이언(離言)]라는 범선왕이 있었고 또 라지제바(羅枳提婆)[수나라 말로는 희천(喜天)]왕, 달마야사(達摩耶舍)[수나라 말로는 법칭(法稱)]왕 등 이렇게 한량없는 모든 범선왕들이 각각 산 숲을 버리고 본궁에 돌아와 천하를 평안히 다스렸습니다. 성자께서는 지난 옛날 모든 왕들의 본사(本事)를 이와 같이 들으셨으니 지금 환궁하셔도 근심과 괴로움이 없겠습니다.”

그리고 게송을 읊었다.

이런 이름의 모든 왕들도

각각 채녀를 버리고 입산하였다가

뒤에 산을 버리고 환궁하였는데

성자도 이제 돌아가신들 무슨 허물 있으랴.

그 때 보살은 두 사신의 이런 말을 듣고 그들에게 일렀다. “있고 없는 뜻이며 의심되고 의심되지 않음을 나는 다 안다. 다만 이 두 가지 뜻이 가진 진리의 숨은 뜻과 나타난 뜻을 나는 확실히 알고자 할 뿐이다. 그것을 전해 듣는 사람이 이미 인연이 없는데 무슨 수로 믿겠는가. 지혜로운 사람은 남의 헛된 말에 따라 행하지 않을 것이니, 눈먼 사람이 길을 가려 해도 인도자가 없으면, 참다운 것을 보지 못하는데 어떻게 가겠는가. 또 마음에 스스로 좋고 나쁜 것을 결정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눈멀고 어리석은 그 사람은 청정한 법이라 해도 마음으로 부정하다고 보나니 무지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차라리 정진하는 마음을 내었다가 비록 과보를 달게 얻지 못하고 길이 고뇌를 받을지언정 5욕의 진흙 구덩이에 빠져서 모든 성인들에게 꾸짖음을 들으며 잠시 쾌락을 받는 짓은 차마 할 수 없노라.

또 그대들은 옛날 허공전왕과 능작희왕 등이 산 숲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갔다 하나 그러한 왕들은 내가 해탈법 가운데 증명을 삼지 않겠다. 왜냐 하면 그 왕들은 신통을 통달하기 위해 배운 것이라 더 이상 고행의 법이 없어서 환궁했기 때문이다. 그대들은 이런 마음을 내지 말라. 나는 서원을 세웠다. 가령 해와 달이 땅에 떨어지거나 이 설산이 제자리를 옮긴다 하더라도, 내가 만약 정법(正法)의 보배를 얻지 못하고 세상일을 탐하여 범부의 몸으로 도로 본궁에 들어가는 일은 있을 수 없으며, 이제 차라리 사납게 타는 불 구덩이에 들어갈지언정 자신의 이익을 얻지 못한 채 환궁한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노라.”

그 때 보살은 이런 서원을 하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나 이 숲을 떠나 두 사신을 뒤에 두고 홀로 걸어갔다.

그 때 두 사신은 보살의 이런 말을 듣고 또 결정코 모든 친족을 버리고 이런 서원을 말하는 것을 보고 결코 환궁하지 않을 것을 알자 몸을 들다가 스스로 넘어지고 땅에서 일어나 눈물을 비 오듯 흘리며 큰 소리로 통곡하고 보살을 따라 가까이 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 때 보살의 위덕이 매우 커서 그들은 더 가까이 할 수 없었고 마치 햇빛이 그들 눈에 쏘이듯 보살의 몸을 바로 볼 수 없었다.

그들은 다시 보살에게 아뢰었다. “성자여, 부디 이렇듯 굳센 뜻을 짓지 마소서. 원하옵건대 저희들의 연모하는 마음을 진정시켜 주소서. 저희들의 사랑하는 마음은 아직 끊어지지 않아서 차마 성자님을 버리고 가지 못하겠나이다.”

그들 두 사람은 보살을 사랑하고 정반왕을 애중히 섬겼으므로 보살의 뒤를 따라 동ㆍ서로 가면서 멈춰 서다가 보다가 걷다가 달려가기도 했다.

그 때 그들은 다시 따로 네 사람에게 일렀다. “몸을 숨겨 보살의 뒤를 따라 좌우로 가되 너희들은 성자에게서 떠나지 말고 어느 곳으로 가시는지 잘 보라.”

이렇게 이르고 나서 그들 두 사람은 매우 슬프고 고통스러워 울부짖으며 서로에게 말했다. “우리들은 이제 어떻게 성에 돌아가 대왕의 얼굴을 보랴. 대왕의 심정은 성자 때문에 크게 고통스러울 것이다. 우리들은 이 말을 어떻게 아뢸 것이며, 대왕의 곁에 이르러 무슨 말로 왕의 마음을 풀어줄 것인가?”

이런 게송이 있었다.

그들 두 사신(使臣)은 성자가 결코

본궁에 돌아가지 않을 것을 알고

따로 네 사람에게 뒤쫓게 한 뒤

돌아가 왕에게 어떻게 아뢸까 하였네.

26. 문아라라품(問阿羅邏品) ①

그 때 보살은 부왕이 보낸 대신과 국사 바라문을 떠날 때 서로 눈물을 흘리고 헤어진 뒤 점점 앞으로 나가 조용히 비사리성으로 향하였다. 그 성에 이르기 전 중도에 한 선인이 도 닦는 곳이 있었으니 이름은 아라라요 성은 가람이었다.

그 선인에게 한 제자가 있었는데 멀리 보살이 자기를 향해 오는 것을 보고 크게 희유한 마음이 생겼다. 나면서부터 일찍 이런 일을 보지 못했는지라 빨리 그 스승이 앉은 곳에 가서 함께 배우는 동자들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부르며 각각 외쳤다. “어진 발가바(跋伽婆)야, 어진 미다라마(彌多羅摩)야. 어진 설마(設摩)야.”

이와 같은 동자들 모두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이제 각각 크게 기뻐하는 마음으로 제사하는 법을 버리라. 이제 여기에 멀리서 어진 대덕(大德)이시니 모두 다 영접하라. 이 어진 이는 이미 맺힌 번뇌를 모두 떠나 지극히 참된 최상의 해탈을 구하는 이로서 석가족 정반왕의 아드님이시다. 모든 상이 금기둥같이 단엄하고 몸에서는 밝은 빛을 뿜고 위풍당당하시다. 긴 팔이 아래로 드리워 손이 무릎을 지나며 발바닥에 천 복 바퀴 무늬가 있고 걸음이 조용하여 우왕(牛王)같이 보인다. 둥근 빛의 위덕이 마치 햇빛과 같고 몸이 황금과 같은데 가사를 입으시고 우리들에게 복과 이익을 가장 많이 주실 높은 분이 점점 우리들 곁으로 가까이 오신다. 우리들은 이제 힘껏 모든 것을 주선하여 모자람 없이 공양해 섬기되 공경하고 존중히 받들어 모시자.”

그 동자는 보살을 찬탄하여 게송을 읊었다.

조용히 교묘롭게 잘 걸으시며

돌아다봄이 마치 소왕[牛王]과 같네.

모든 상이 만족한 장엄한 몸에

모든 털이 위로 쏠리었네.

발바닥에 천복 바퀴 무늬도 갖고

미간에는 흰 털이 묘하게 말려 있네.

긴 팔은 크고 곧아 자재롭게 드리웠으니

이 분은 사람 가운데 큰 사자일세.

그 동자는 입으로 이 게송을 읊어 보살을 찬탄하고 나서 거듭 모든 동자들에게 일렀다. “너희들 모든 동자들은 함께 따라 스승님의 처소에 가서 이 일을 아뢰어라.”

모든 동자들은 함께 그 스승 아라라 곁에 가서 이런 일을 갖춰 아뢰는데, 그 떄 보살이 조용히 걸어 문득 아라라 곁에 이르렀다. 그 아라라 선인은 멀리서 보살이 가까이 오는 것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큰 소리로 외쳤다. “잘 오소서, 성자님이시여.”

보살이 아라라 앞에 이르자 두 사람이 얼굴을 대하여 서로 문안했다. ‘병이 없고 괴로움이 없고 안온하신가?’

서로 안부를 물은 뒤 아라라는 보살에게 풀 자리 위에 앉기를 청했다.

이런 게송이 있었다.

두 사람이 서로 보고 크게 기뻐

각각 병이 없느냐고 문안했네.

서로 인사하고 얼마 안 있어

깨끗한 풀 자리를 곧 깔았네.

그 때 보살이 풀자리 위에 앉으니 아라라는 그의 몸을 위아래로 자세히 관찰하고 크게 기쁜 마음과 희유하다는 생각이 나서 보살에게 아름다운 목소리로 주고받으며 보살을 칭찬하였다. “어진 구담이시여, 나는 오랫동안 익히 들어왔습니다. 어지신 장부께서 왕위를 버리고 성을 넘어 출가하사 친애에 물든 그물을 끊으셨다는 것을. 마치 큰 코끼리가 굳센 쇠사슬이나 억센 가죽 고삐를 끊어버린 뒤에 자유롭게 달아나 마음대로 다니는 것처럼, 이와 같이 어진 당신도 오늘 용맹한 마음으로 궁을 버리고 입산하여 어느 곳에서나 족함을 알고 욕심이 없으며 크게 지혜가 있습니다.

어진 구담이시여, 당신은 이미 이렇게 희유한 일을 얻었습니다. 세간의 부귀와 과보와 공능을 가졌다가 버리고 삭발하고 입산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옵니다. 지난 옛날 모든 왕들은 왕위의 과보가 구족하고 5욕락을 누리다가, 늙어서야 세자에게 왕위를 부촉하여 관정(灌頂)을 시킨 뒤에 겨우 궁을 버리고 나와 산 숲에 와서 도를 닦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고 희유한 일도 아닙니다. 내가 보기에 당신은 젊은데도 5욕락을 받지 않고 부귀 공덕을 버리고 이 마음을 결정하여 여기 와서 도를 구하십니다. 이미 이런 불가사의한 대성 왕위의 수승한 경계를 얻고도 한창나이에 마음을 수습하여 모든 애욕에 집착하지 않고 해탈을 구하여 얽매이지 않고 모든 근(根)과 경계에 물들지 않고 유(有) 가운데의 모든 환란을 알고 어떤 유에도 얽매이지 않나이다. 무슨 까닭입니까?

옛날에 정생(頂生)이란 왕이 있었습니다. 그는 4천하를 통솔했으나 오히려 족한 줄 모르고 33천에 올라가 제석천왕의 반좌(半座)를 얻어 앉았지만 그것도 마음에 족한 줄 알지 못하여 5욕 경계를 다 잃어버리고 땅에 떨어졌습니다. 또 나후사라는 왕이 있어 4천하를 거느리다가 다시 33천에 이르러 모든 천상을 다스렸으나 오히려 부족하게 여기다가 역시 왕위를 잃고 땅에 떨어졌습니다. 또 이런 무리로 라마왕ㆍ타로호미왕ㆍ아사라타가왕 등 많은 전륜성왕이 있었는데 이들 역시 왕위를 얻고도 족한 줄 몰랐기 때문에 모두 경계를 잃어 부귀와 왕위가 없어졌습니다. 세간에 한 사람도 경계를 얻고 마음에 족한 줄 아는 이가 없으니 마치 큰불이 섶을 만나 타는 것과 같습니다.”

아라라 선인의 이런 이야기를 듣고 보살은 대답하였다. “어진 대선이여, 내 세간의 이런 상을 보았으며 또 모든 것이 파초와 같이 속이 굳지 못하여 뒤에 도로 파괴되는 것을 보았소. 경계를 얻어도 족한 줄 모를까 걱정이며 스스로 이익되는 길을 구하지 않고 욕사(欲事)에 염증을 내지 않을까 걱정이오. 나는 이것을 알았으므로 바른 길을 찾아서 여기저기 다닙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빈 들판에 다닐 때, 짝을 잃고 길이 아득하여 마음이 여러 방향에 미혹하나, 길잡이를 만나지 못해 길잡이를 구하느라고 여기저기 다니듯 지금의 나도 그러하나이다.”

보살이 이렇게 말하자 아라라는 보살에게 거듭 말했다. “어진 구담이시여, 내 오래도록 대사(大士)의 심상(心相)을 보았거니와 당신은 충분히 해탈할 만한 큰그릇이 되겠습니다.”

그 때 대중 가운데 한 동자가 있었는데 아라라 선인의 제자였다. 그는 합장하여 스승에게 아뢰고 보살을 찬탄하여 이런 말을 하였다. “희유하옵니다. 이 분은 불가사의하게 이 마음을 결정하였습니다. 옛날 모든 왕들은 젊을 때 궁 안에 앉아 5욕락을 받다가 뒤에 나이 들어 머리가 희어지면 각각 태자를 불러 왕위를 부촉하여, 관정식을 하고 왕을 삼은 뒤에 집을 버리고 산 숲에 들어가 도를 닦아 왕선(王仙)이 되었으나 이 분은 그렇지 않습니다. 한창 젊은 나이라 쾌히 5욕을 받을 때이며 병도 없고 번뇌도 없으며 기력이 충족하고 머리털이 검고 몸이 부드럽고 용맹이 구족하여 모자람이 없으며 부왕께서 나이 많은데도 왕위를 탐내지 않고 세간을 싫어하여 과보를 탐하지 않고 출가하여 산에 들어와 도를 구하십니다.”

그 때 아라라는 보살에게 아뢰었다. “당신은 발심하여 무엇을 구하려 하십니까? 무슨 도(道)를 성취하고자 발심하여 여기 오셨나이까?”

보살은 대답하였다. “존자 대사여, 나는 이 세간 중생이 생ㆍ노ㆍ병ㆍ사에 얽매어서 스스로 나오지 못하는 것을 보고 이렇게 정근하려는 마음을 내었습니다.”

그 때 아라라는 또 이런 말을 했다.

“어진 구담이시여, 이제 이런 혜안을 내었고 이런 생각을 내었으니 이 뜻이 참되나이다. 무슨 까닭입니까?”

그리고 게송을 읊었다.

수승한 모든 법 중에 오직 행이 있으니

청정과 적정만이 마음에 허물될 것 없네.

은애에 물드는 것이 가장 원수요,

모든 공포는 이 늙고 죽음이라네.

아라라가 이 말을 하자 그 아라라 선인의 제자인 한 마나바가 보살에게 아뢰었다. “어지신 이여, 무슨 마음에서 이제 친애하는 권속을 버리고 여기 오셨습니까.”

보살은 대답하였다. “세계에서 모이고 만나는 모든 것은 결정코 이별이 있다. 나는 이런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 뜻을 내어 지극한 진리를 구하고자 하노라.”

아라라 선인은 거듭 보살에게 아뢰었다. “어진 이여, 이제 해탈을 얻으셨습니다. 왜냐 하면 중생들은 헤어나기 어려운 이 진흙에 빠졌으며 세간의 굳센 밧줄에 얽매이지만 당신은 이미 홀로 마음을 결정하셨으니 나는 이 해탈법문을 말하겠나이다. 이른바 사랑하는 마음을 당신은 멀리 버리시오. 사랑하는 마음이란 이 세간에서도 아주 악한 교룡(蛟龍)이 깊은 마음의 물 속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서 모든 이익을 잃게 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 세간 사람들의 행은 바른 행이 아님을 보았습니다. 오직 지혜로운 자라야 바른 행법을 선택하여 애착에 물든 마음을 멀리 떠납니다. 그러므로 발심하여 유상(有相)보는 것을 끊고 무상을 지으소서.”

보살은 대답하였다. “존자 대선이여, 존자께서 말씀하신 대로 내 이 말을 알아듣겠습니다.”

아라라선인은 또 보살에게 물었다. “당신은 무엇을 알아들었다 하시나이까?”

보살은 대답하였다. “세간의 사람이란 서로 얽매이게 됩니다. 그 서로 얽매임이란 이런 것입니다. 부모 된 자는 집을 세우기 위해 자식을 낳아 기르며 길러낸 자식이 장성하면 집안을 성취합니다. 이 인연 때문에 부모가 자식을 기르는 것입니다. 만약 인연이 없다면 자기 권속들도 가까이하지 않을텐데 하물며 다른 사람이겠는가. 사람을 가까이 하는 것은 이익을 탐하기 때문인데, 사람에게 친근하고자 해도 마침내 찾을 데가 없습니다.”

아라라 선인은 다시 찬탄했다. “착하다, 어진 이여. 당신은 지금 이미 세간의 모든 법을 아십니다. 구담 사문(沙門)은 모든 지혜를 밝게 증득하셨습니다.”

그 때 대중에 동자가 하나 있었는데 그도 아라라 선인의 제자였다. 그가 보살에게 아뢰었다. “어지신 구담이시여, 당신은 이제 이미 최상락을 얻었나이다. 왜냐 하면 일체 사랑하는 상(相)을 점점 떠나 세간의 모든 번뇌 없는 법을 얻으셨기 때문입니다. 어찌된 일인가? 제가 세간을 보건대 처자를 불쌍히 생각하지 않고 재물을 구하지 않고 두 손을 들고 세간에서 곡하지 않는 이가 적으며, 욕심을 줄일 줄 모르고 족한 줄 모르고 재물을 아끼고 항상 탐심을 일으키고 세간 이익에 물들고 집착하여 집집마다 손을 들고 크게 통곡하는 이는 많습니다.”

그리고 게송을 읊었다.

세간에 족함을 아는 사람 보기 드무니

욕심 적고 구함 없어야 괴로움 받지 않으리.

은혜와 애욕에 통곡하는 여러 사람들

거의가 탐착하여 재물 모으려 하네.

그 때 아라라선인은 보살에게 아뢰었다. “희유합니다. 어지신 구담이시여, 이렇듯 지혜가 넓고 큽니다. 이런 까닭에 당신은 이제 이 용맹심을 갖추어 모든 근을 조복하여 더 자라지 않게 하고 모든 욕에 끌려가지도 않사옵니다.”

이 때 보살은 존자 아라라에게 물었다. “존자 대선이여, 모든 근(根)은 어째서 이렇게 일정하지 않으며, 항복시키고자 하면 어떤 방편을 써야 합니까? 부디 나를 위해 설명해 주소서.”

아라라 선인은 대답했다. “사문 대사(大士)시여, 세간에 있으면서 생을 싫어하여 떠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내 이제 대사를 위해 방편의 상(相)을 간략히 말씀하리니 대사는 자세히 들으소서.”

게송이 있었다.

존자 대선 아라라는

보살이 신통과 지혜를 낼 수 있도록

자기 논(論) 가운데 있는 이치를

간략히 분별하여 말하네.

“구담 대사여, 모든 근의 체상(體相)과 근의 경계를 없애고자 하면 이렇게 생각하고 분별하소서. 어째서 그렇겠습니까? 이 모든 근과 일체 경계를 이미 분별해 알았다면 다 버려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근과 경계 안에 모든 사랑과 물듦이 있으니 애욕에 물드는 그것이 집착을 내게 합니다. 이 애착이 중생을 세간에 빠뜨려 헤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모든 범부들이 사랑을 탐하고, 얽매이는 괴로움을 받는 까닭은, 일체가 다 경계로 말미암아 얻어지기 때문입니다. 대사는 살피소서, 무슨 인연으로 그러하겠습니까?”

그리고 게송을 읊었다.

산양(山羊)이 죽음을 당함은 소리를 내기 때문이요

나비가 등불에 뛰어듦은 불빛 때문일세.

물고기가 낚시에 걸림은 미끼를 물기 때문이요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은 경계에 끌리기 때문일세.

보살은 이 게송을 듣고 나서 다시 물었다. “존자여, 이제 모든 근을 조복하는 방편상을 말씀하시되 모두 인연으로 생기는 것이라 하였으니, 체성(體性)이 비어서 참이 없는 헛것입니다. 마치 불구덩이 같고 몽환(夢幻)과 같고 풀 위의 이슬과 같습니다. 내 이제 마음으로 생각하여 이런 줄을 알았습니다.”

그 때 아라라 선인은 또 보살에게 물었다. “대사여, 당신은 무엇 때문에 모든 경계 속에 이로운 일이 없다고 말씀하나이까.”

보살은 대답하였다. “사람이 모든 경계를 따라 머물러 과보를 받으려 함은, 어떤 사람이 집을 세워 햇빛을 가리거나 비바람을 피하려는 것과 같습니다. 목이 마르기 때문에 물을 찾는 것 같고, 배고프기 때문에 먹을 것을 찾는 것 같고, 때가 묻었기 때문에 몸을 씻으려는 것 같고, 벌거벗었기 때문에 몸 가릴 옷을 찾는 것 같고, 피곤하기 때문에 타고 갈 말을 찾는 것과 같고, 추위를 덜고자 따뜻함을 찾으며 더움을 덜고자 시원함을 찾으며, 피로를 풀고자 자리에 앉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다 괴로움이 몸을 핍박하기 때문에 애써 찾으려는 것입니다. 병든 사람이 고통이 심해서 좋은 의사를 찾듯이 세간 사람들은 다 이렇게 희망합니다.”

그 때 아라라는 찬탄했다. “구담이시여, 이 마음은 희유하나이다. 대덕이시여, 어찌 세간 가운데서 이렇게 빨리 무상(無常)한 생각을 내셨습니까? 희유하고 희유하옵니다. 참된 것을 보았습니다. 대덕은 근기가 날카롭고 총명하고 민첩하여 깨닫기 쉬웠습니다. 이렇게 밝게 보는 이야말로 참되게 본다 할 것이며, 만약 달리 본다면 속이고 미혹하다 할 것입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주리면 먹을 것을 찾고 비바람을 피하나, 이 차고 더움이 잠시 바뀌는 까닭에 세간 사람의 마음에는 곧 즐겁다는 생각이 일어납니다.”

다시 찬탄하였다. “어지신 구담이시여, 참으로 법의 다리[法橋]요 법을 떠맡을 큰그릇입니다. 내 전해 듣기로는, 먼저 제자가 법을 감당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관찰해서 만약 잘 감당한다면 그 뒤에 갖가지 모든 논을 설하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내 소견 같아서는 당신께서는 이제 더 이상 그럴 것이 없습니다 굽히고 펴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깊이 법을 얻었기에 관찰할 필요까지 없으니 우리 논(論)에 나오는 참다운 뜻을 당신을 위하여 다 말한 것입니다.”

그 때 보살은 아라라 선인의 이런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며 거듭 물었다. “존자 대선이여, 오늘 나의 효심을 알지 못하고, 나를 위해 이런 묘한 말씀을 하셨습니까? 내 이 상(相)을 안다 하나 아직 이익이 되지 못하다가 이제야 이익을 얻었습니다. 무엇 때문인가 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색을 보고자 하는데 광명을 얻은 격이요, 먼 길을 가는데 좋은 인도자를 만난 격이요, 저 언덕에 건너가는데 뱃사공을 만난 격이니 존자가 오늘 내 마음을 보여주신 일도 그렇습니다. 부디 존자에게 원하나니 다시 나를 위해 존자가 아는 대로 말해주소서. 어떻게 하면 생ㆍ노ㆍ병ㆍ사를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첨부 파일에 본문 내용 계속 됩니다.

출전 : 고려대장경 연구소, 동국역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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