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고암가>

태고(太古) 보우(普愚)

오주차암오막식(吾住此庵吾莫識) 내가 기거하는 이 암자 나도 모르나

심심밀밀무옹색(深深密密無壅塞) 깊고 은밀하나 옹색함 없고

함개건곤몰향배(函盖乾坤沒向背) 하늘 땅 뒤덮어 앞뒤 없으니

불주동서여남북(不住東西與南北) 동서남북에 어찌 머물랴.

주루옥전미위대(珠樓玉殿未爲對) 구슬 누각, 백옥 전각도 비할 바 아니고

소실풍규역불식(少室風規亦不式) 소림사의 풍습과 규정도 따르지 않네

삭파팔만사천문(爍破八萬四千門) 팔만 사천 번뇌의 문을 다 부수니

나변운외청산벽(那邊雲外靑山碧) 저편 구름 밖 청산이 푸르구나.

산상백운백우백(山上白雲白又白) 산 위의 흰구름 희고 또 희고

산중류천적우적(山中流泉滴又滴) 산중의 샘물은 흐르고 또 흐르네

수인해간백운용(誰人解看白雲容) 누가 있어 저 흰구름을 이해할 것인가

청우유시여전격(晴雨有時如電擊) 비 오고 개이는 것이 번개와 같은데

수인해청차천성(誰人解聽此泉聲) 누가 이 샘물 소리를 이해할 것인가

천회만전류불식(千回萬轉流不息) 천 구비 만 구비 쉬지 않고 흐르는데

염미생시조시와(念未生時早是訛) 생각을 내기 전에 벌써 틀렸고

갱의개구성랑차(更擬開口成狼藉) 입을 열려 할 때 더욱 부질없다.

경상경우기춘추(經霜經雨幾春秋) 비 오고 서리 온 봄가을이 얼마인데

유심한사지금일(有甚閑事知今日) 어찌 한가롭게 오늘을 알겠는가

추야찬세야찬(麁也飡細也飡) 맛 없는 밥 맛있는 밥

임이제인취차끽(任儞諸人取次喫) 모두가 제각각 먹으니

운문호병조주다(雲門糊餠趙州茶) 운문의 떡이나 조주의 차도

하이암중무미식(何似庵中無味食) 어찌 이 암자의 맛없는 음식만 하랴

본래쳐차구가풍(本來如此舊家風) 본래 이런 옛 가풍을

수감여군논기특(誰敢與君論奇特) 누가 있어 기특하다 논할까

일호단상태고암(一毫端上太古庵) 한 가닥 털끝 위의 태고암

관비관혜착비착(寬非寬兮窄非窄) 넓은 듯 좁은 듯

중중찰토개중장(重重刹土箇中藏) 겹겹의 극락정토 그 중에 있고

과량기로충천직(過量機路衝天直) 넘치는 가르침의 길 하늘에 닿아 있으나

삼세여래도불회(三世如來都不會) 삼세여래도 알 수 없고

역대조사출불득(歷代祖師出不得) 역대 조사도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우우눌눌주인공(愚愚訥訥主人公) 어리석고 어눌한 암자의 주인공

도행역시무궤칙(倒行逆施無軌則) 도리에 순종하지 않는 행에 궤칙이 없으며

착각청주파포삼(着却靑州破布衫) 청주에서 지은 다 헤진 삼베적삼 입고

등라영리의절벽(藤蘿影裡倚絶壁) 등나무 넝쿨 속 바위에 기대어 서니

안전무법역무인(眼前無法亦無人) 눈 앞에는 법과 사람 모두 없고

단모공대청산색(旦暮空對靑山色) 아침 저녁으로 푸른 산만 바라보고 있다

범연무사가차고(几然無事歌此曲) 일없이 앉아서 이 곡을 읊으니

서래운곡유단적(西來韻曲愈端的) 서쪽에서 온 가락이 확연 하도다

편계유수동창화(徧界有誰同昌和) 이 세상 누가 있어 이 노래에 화답할까

영산소실만상박(靈山少室謾相拍) 영산과 소림사가 부질없는 박수를 치는구나

수장태고몰현금(誰將太古沒絃琴) 누가 오래된 줄 없는 가야금으로

응차금기무공적(應此今時無孔笛) 구멍 없는 피리 부는 내 곡에 맞장구 치겠는가

군불견(君不見) 그대 보지 못하는가

태고암중태고사(太古庵中太古事) 태고암의 태고스런 일을

지저여금명역력(只這如今明歷歷) 다만 지금처럼 뚜렷하기만 한데

백천삼매재기중(百千三昧在其中) 백천삼매의 묘리가 그 중에 있고

이물응연상적적(利物應緣常寂寂) 인연따라 온갖 것을 이롭게 하나 늘 고요하도다

차암비단노승거(此菴非但老僧居) 이 암자 노승만 머물지 않고

진사불조동풍격(塵沙佛祖同風格) 수많은 부처와 조사가 풍격을 같이 한다

결정설군막의(決定說君莫疑) 확실하게 말하니 그대 의심 말라

지역난지식막측(智亦難知識莫測) 지혜나 알음알이로 헤아리기 어렵도다

회광반조상망망(回光返照尙茫茫) 뒤돌아보며 수행해도 오히려 어둡고 아득하며

직하승당요체적(直下承當猶滯跡)심신을 참을 실증하는 곳에 두어도 자취에 걸리네

진문여하환대착(進問如何還大錯) 어떻게 하느냐고 물으면 크게 어긋나 돌아오고

여여부동여완석(如如不動如頑石) 여여부동해도 쓸모없는 돌과 같네

방하착막망상(放下着莫妄想) 내려 놓아라, 망상을 하지 마라

즉시여래대원각(卽是如來大圓覺) 이것이 여래의 대원각이니라

역겁하증물문호(歷劫何曾出門戶) 영원토록 잠시 문호를 나왔으나

잠시락박금시로(暫時落泊今時路) 잠시 떨어지면 지금의 길이로다.

차암본비태고명(此庵本非太古名) 이 암자는 본래 태고암이 아닌 것을

내인금일운태고(乃因今日云太古) 오늘에 이르러 태고라 했네

일중일절다중일(一中一切多中一) 하나 가운데 일체가 있고 일체 가운데 하나

일불득둥상료료(一不得中常了了) 하나도 없는 데서 항상 또렷하네.

능기방역기원(能其方亦其圓) 모나기도 하고 둥글기도 하여

수류전처실유현(隨流轉處悉幽玄) 유를 따라 어디든지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깊네

군야문아산경(君若問我山中境) 누가 나에게 산중의 경계를 물으면

송풍소슬월만천(松風蕭瑟月滿天) 솔바람 소슬하고 달빛은 하늘에 가득하오.

도불수선불참(道不修禪不參) 도도 닦지 않고 선도 하지 않아

수침소진로무연(水沉燒盡爐無烟) 향 다 탄 향로에 연기 없고

철골청혜철골빈(徹骨淸兮徹骨貧) 사무치게 맑고 사무치게 가난해도

활계자유위음전(活計自有威音前) 살길은 본래부터 스스로 있네

단이등등임과(但伊騰騰恁過) 그런대로 그렇게 지내는 거지

하용구구구기연(何用區區求其然) 어찌 구구히 태울 향을 구하랴.

철골청혜절골빈(徹骨淸兮徹骨貧) 사무치게 맑고 사무치게 가난해도

활계자유위음전(活計自有威音前) 살길은 본래부터 스스로 있네

한래호창태평가(閑來浩唱太平歌) 한가히 태고가 부르며

도기철우유인천(倒騎鐵牛遊人天) 쇠소를 거꾸로 타고 인간계와 천계서 노니노라

아동촉목진기량(兒童觸目盡伎倆) 아이들은 보는 대로 재주를 내지만

예전불득도로안피천(曳轉不得徒勞眼皮穿) 생각처럼 안되어 피곤만 하네

암중추졸지여허(庵中醜拙只如許) 암중의 지저분과 졸망함이 나와 같은데

가지하필경중선(可知何必更重宣) 아는 일을 어찌 일부러 다시 밝히랴.

무파삼대귀거후(舞罷三臺歸去後) 삼대에서 춤추고 돌아간 후에

청산의구대림천(淸山依舊對林泉) 청산은 변함없이 숲과 샘을 대하고 있네

<해석은 참고로 보시고 각자 해석해 보시기 바랍니다.</SP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