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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설의족경(佛說義足經) 개요
글쓴이 : 백련사 날짜 : 2009-01-13 (화) 11:19 조회 :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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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등록일 : 2003-10-21 오후 9:55:00]
제 목 :
불설의족경(佛說義足經) 개요

불설의족경(佛說義足經)

2권. K-800(19-1012). T-198(4-174). 오(吳) 시대(A.D. 223∼253) 번역. [역] 지겸(支謙). [범] Arthavarga. [파] A akavagga.

총 16개의 경들을 한데 묶어 놓았는데, 부처님이 주로 범지(梵志)를 상대로 하여 불법을 가르쳐 주는 형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각종 인연담과 함께 탐욕 번뇌 해탈 등에 대한 부처의 가르침을 소박하게 설하고 있다. 16개의 소경(少經)들은 주로 범지(梵志, 즉 브라만)에 대한 것이다. 소경 각각은 인연담을 설하는 장행과 소위 '의족경'이라고 하는 게송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인연담과 게송의 사상과 내용은 모두 불전 가운데서도 가장 오래된 유형을 보이고 있으므로, 부처의 근본 사상과 원시 불교 사상의 연구에 가장 적절한 경전 중 하나이다.

제1 걸탐왕경(桀貪王經)에서는 걸탐왕(桀貪王)의 이야기를 통해서 욕망을 억제하지 못하면 결국 화를 면치 못한다고 경계하고 있다.

이와 같이 들었다. 부처님이 기수급고독원에 있었다. 이때 한 범지가 하룻밤 사이에 우박으로 밭의 곡식을 모두 잃음과 동시에 병으로 딸을 잃고는 슬픔에 잠겨 부처님을 찾아왔다. 부처님은 줄어들고, 없어지고, 병들고, 늙고, 죽는 다섯 가지 일은 벗어나기 힘들다고 설하여, 그가 부처에게 귀의하도록 하였다.

이때 부처님은 여러 비구에게 다음과 같이 설했다. 먼 옛날 걸탐왕은 5국을 정복하여 대승왕(大勝王)이라고 불렀지만, 천제석(天帝釋)에 의해 지족(知足)을 시험받고 크게 걱정하였다. 그는 이윽고 경전의 한 구절을 기억하여, 한 소년으로 하여금 그 뜻을 해석하도록 하고 1천 금(金)을 주었다. 그때의 걸탐왕은 지금의 저 범지이며, 그 소년은 바로 자신이다. 부처님은 이어서 게송으로 사람의 욕심은 다 채울 수 없으며, 욕망에 사로잡히면 화를 입게 됨을 설했다.

제2 우전왕경(優塡王經)에서는 우전왕(優塡王)의 어리석음을 예로 들어서 탐욕과 번뇌를 떨쳐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부처님이 기수급고독원에 있었다. 이때 우전왕의 한 기녀가 바위 사이의 석실에 있던 장발(長髮)을 하고 누더기 옷을 입은 한 비구를 보고는 놀라, 왕으로 하여금 그를 잡도록 하였다. 이때 산신이 나타나 그 비구를 구하였다. 그 비구는 부처님의 처소에 이르러 사건의 경위를 고했다. 부처님은 곧 후세의 학자들과 올바른 가르침이 오래 머물도록 하기 위하여 의족경을 설했다. 즉 사람은 탐욕 때문에 어리석은 일을 하게 되며, 그 때문에 불법을 바로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제3 수다리경(須陀利經)에서는 외도들의 음모에도 불구하고 부처님은 전혀 해를 받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부처님이 기수급고독원에 있었다. 국왕과 대신 등은 부처님과 제자들을 공경하였는데, 범지 등이 이를 시샘하였다. 그들은 계략으로 수다리를 꾀어 기원 정사에 드나들게 한 후 그를 죽여 성 밖에 묻고, 부처님과 사문을 모함하였다. 7일 후에 그 음모는 폭로되어 범지 등은 추방되었다. 이때 아수리(阿須利)라고 하는 한 청신사(淸信士)가 있어 부처님과 비구승들이 모함받게 됨을 슬퍼 하였다. 부처님은 세간에서 모함받지 않는 자가 없음을 설하고, 다시 의족경을 설하였다. 즉 악행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으며, 더구나 부처를 해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제4 마갈범지경(摩竭梵志經)에서는 부처님이 외도들의 어리석은 견해를 무너뜨리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부처님이 기수급고독원에 있었다. 이때 마갈이라는 한 범지가 있었는데, 졸지에 강당에서 죽었다. 함께 공부하던 범지들이 마갈을 침상 위에 올려놓고, 거리로 나와 "마갈이 해탈을 얻었다."라고 외쳤고 대중들 역시 이 말을 믿었다. 부처님은 비구들로부터 이를 듣고, 그것을 해명하기 위하여 다시 의족경을 설하였다. 즉 해탈이란 지혜로써 번뇌를 없앤 것을 말하는 것이므로, 외도의 사견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5 경면왕경(鏡面王經)에서는 부처님이 전생에 경면왕(鏡面王)이었을 때 소경들이 코끼리를 만진 다음에 말하게 했던 이야기를 해준다. 그리고 외도들의 주장은 그와 같이 세상의 일면에 대한 그릇된 견해에 불과하다고 논박한다.

부처님이 기수급고독원에 있었다. 이때 여러 비구들이 이른 아침에 성에 들어가 걸식하기에 앞서 범지의 강당에서 범지들과 논한 것을 부처님께 고했다. 부처님은 곧 그것이 과거에 경면왕이 장님들을 모아 코끼리를 보여 주고 그 형체에 대해서 답하게 하자, 서로 다투었던 것과 같다고 설했다. 또 그때의 경면왕은 지금의 자신이고, 장님들은 저 강당에 있는 범지들이라 하고, 다시 의족경으로써 그 뜻을 보충하였다. 즉 외도들은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듯 세상의 일면만을 보고 허망한 논쟁을 일삼으면서 사람들을 사견에 빠뜨린다는 것이다.

제6 노소구사경(老少俱死經)에서는 사람의 생명은 노소를 불문하고 유한한 것이기에 언제 죽음이 닥칠지 모른다고 하면서, 생사의 고통을 없애기 위한 길은 불법을 닦아서 열반을 성취하는 것뿐이라고 하였다.

부처님이 사루국(娑樓國)의 성안에 들어가 120세의 나이 많은 범지와 7세의 어린 장자의 아들이 죽는 것을 보고, 여러 비구들에게 노소가 함께 죽는 일을 설명하기 위해 다시 의족경을 설했다. 그 중에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다. "이 육신의 수명은 매우 짧아서, 백년도 채 안 되어 죽는구나. 비록 백년을 넘겼다고 하더라도, 늙음이 뒤따르니 누가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즉 사람은 나고 죽는 고통을 면할 수 없으며, 인간 세상의 즐거움은 꿈과 같다는 것이다.

제7 미륵난경(彌勒難經)에서는 부처님이 미륵의 질문을 받고서 애욕에 사로잡혀서는 불법을 닦을 수 없으며 계율을 지킬 수 없다고 깨우쳐 준다.

부처님이 왕사성의 다오죽원(多烏竹園)에 있었다. 이때 나이 많은 비구의 무리가 강당에서 서로에게 법을 물었다. 현자 미륵은 현자 사리불에게 난문(難問)을 던지고, 사리불은 이를 대답하지 못하여 부처님의 처소에 이르러 게송으로 부처님께 물었다. 이때 부처님은 정욕의 위험을 경계하였다.

제8 용사범지경(勇辭梵志經)은 용사(勇辭)라는 범지가 부처님의 위의(威儀)에 눌려서 굴복하는 이야기이다.

부처님이 기수급고독원에 있었다. 이때 타사국(墮沙國)에 있는 여러 장자의 아들들이 용사 범지로 하여금 부처님에게 난문을 던지고자 하여, 용사 범지를 부처님이 있는 곳으로 파견한다. 그러나 용사 범지는 부처님을 보고는 그 위신력이 두려워 감히 질문하지 못했다. 부처님은 이들이 함께 공모한 바를 알고, 의족교(義足敎)를 설했다.

제9 마인제녀경(摩因提女經)은 마인제(摩因提)가 부처님을 자기 딸의 사위로 삼고자 하였으나 이미 색욕을 없앤 부처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색욕은 온갖 번뇌의 근본이 되므로 불법을 따르는 이라면 마땅히 색욕을 멀리해야 한다는 가르침이 담겨 있다.

부처님이 구류국에 있었다. 이때 마인제라는 한 범지가 있었는데, 그의 딸은 비할데 없이 아름다워 국왕과 태자 등의 청혼에도 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부처님을 보고는 자신의 딸을 주겠노라고 하였다. 부처님은 이를 물리치고 사음에 집착하면 안 되는 이유를 의족경으로 설하였다.

제10 이학각비경(異學角飛經)은 외도들과 부처님이 서로 신통력을 겨루어 결국 굴복시켰다는 이야기이다.

부처님이 왕사성의 다오죽원에 있었다. 6범지가 함께 모의하여 부처님에게 난문을 하기로 했다가 왕명에 의해 국외로 추방되었다. 6범지는 사위국에 이르러 부처님이 기원(祇園)에 올 것을 기다렸다. 부처님은 곧 신통력을 보여 그들을 침묵시키고, 이어서 게송으로 논쟁과 다툼을 경계하였다.

제11 맹관범지경(猛觀梵志經)에는 부처님이 맹관(猛觀)이라는 범지에게 확고한 믿음으로써 불법을 수행해야 한다고 가르침을 준 이야기가 들어 있다.

부처님이 500명의 비구와 함께 석가족의 나라인 가유라위(迦維羅衛) 즉 카필라 성의 나무 아래 있었다. 이때 여러 천신들이 부처님에게 예배하였다. 그때 좌중에 있던 맹관이라는 범지가 마음에 의심을 일으켰다. 부처님은 이를 알고, 단정한 한 부처를 화작하여 지혜와 어리석음에 대해 게송으로 설하도록 하였다.

제12 법관범지경(法觀梵志經)에서는 법관(法觀)이라는 범지에게 부처님이 무아(無我)의 이치와 열반의 참뜻을 설명해 준다.

부처님이 석가족의 나라인 가유라위의 나무 아래 있었다. 그때 여러 천신이 부처님에게 예배하였다. 이때 좌중에 있던 법관이라는 범지가 마음에 의심을 일으켰다. 부처님은 이를 알고, 한 부처를 화작하여 그 인연에 대해 게송으로 찬탄하도록 한다.

제13 도륵범지경(兜勒梵志經)에서는 도륵(兜勒)이라는 범지에게 부처님이 열반을 얻기 위해서는 탐욕과 성냄 등의 번뇌를 없애고 선업을 쌓아야 한다고 가르침을 주고 있다.

부처님이 왕사국의 여산(黎山)에 있었다. 그때 칠두귀(七頭鬼) 장군과 명마월귀(鳴摩越鬼) 장군이 권속과 함께 부처님이 있는 곳으로 와서 고통에 대해 말했다. 이때 좌중에 있던 도륵 범지가 마음에 의심을 일으켰다. 부처님은 곧 부처와 제자를 화작하여, 화불로 하여금 게송을 설하도록 한다. 즉 열반의 경지에 도달하려면, 잡념을 버리고, 한적한 곳에서 도를 닦고, 탐욕과 질투 등을 버리고, 선행을 닦고, 지혜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14 연화색비구니경(蓮花色比丘尼經)은 부처님이 도리천에 올라가서 설법한 뒤 7일 만에 다시 내려와 연화색 비구니 등을 위해서 설법한 이야기이다.

부처님이 도리천에 있으면서, 어머니와 여러 도리천에게 설법하였다. 이때 목건련이 천상에 도착하여 부처님의 귀환을 청하였다. 부처님은 7일이 지난 후 염부리(閻浮利)에 내려왔다. 이때 연화색이라는 한 비구니가 있어 먼저 부처님을 맞이하였다. 부처님은 대중을 위하여 널리 경법을 설하였고, 사리불을 위하여 게송으로 4성제(聖諦)를 설명했다.

제15 자부공회경(子父共會經)에서는 부처님이 부친인 정반왕을 만나서 불법의 기본 교리를 가르쳐 주었고 그로 인해서 왕을 비롯한 석가족이 모두 불법에 귀의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부처님이 제자들과 함께 가유라위의 니구류원(尼俱類園)에 도착하였다. 부왕인 열두단(悅頭檀, uddhodana) 즉 정반왕(淨飯王)은 여러 석가족과 함께 부처님을 맞이하였다. 왕이 먼저 부처님의 발에 예배하자, 석가족 사람들이 이를 기뻐하지 않았다. 왕은 곧 태자가 출생할 때 하늘이 진동한 일 등의 상서로운 상이 있어 왕과 권속들이 예배했던 일을 설한다. 이어서 부처님은 널리 왕과 석가족을 위하여 4제법(諦法) 등을 설하고, 부왕은 다시 의족게(義足偈)로 찬탄하였다.

제16 유루륵왕경(維樓勒王經)에서는 사위국의 파사닉왕의 아들이었던 유루륵왕이 어릴 적의 원한을 기억하고 석가족을 쳐서 멸망시키게 된 것을 말하며, 부처님이 이에 대해서 선악의 과보가 엄격하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부처님이 기수급고독원에 있었다. 이때 가유라위성의 여러 석가족이 새로 커다란 전각을 짓고, 먼저 부처님과 제자들을 청하고자 하였다. 이때 사위국의 태자 유루륵이 어떤 일로 성에 오게 되어 새로 지은 전각에 먼저 묵게 되었다. 그러자 석가족 사람들은 화를 내어 노비의 아들이 전각을 더럽혔다고 하여 전각 속에 있는 땅을 파내고 깨끗한 흙으로 이를 다시 메웠다. 태자는 이를 듣고 크게 노하여, 왕으로 즉위한 후 군사를 이끌고 석가족을 정벌하였다.

석가족은 5계(戒)를 중시하였으므로, 크게 싸워 보지도 못하고 거의 죽고 말았다. 오직 소수의 사람만이 석마남(釋摩男)의 계략으로 구출되었다. 부처님은 여러 비구에게 자비심 없이 상해심(傷害心)만 가지고 있는 자의 죄가 매우 심대함을 설하고, 다시 후세에 올바른 가르침이 오래 머물도록 하기 위하여 의족경을 설했다. 즉 선과 악은 반드시 그 과보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16개의 경에는 인생의 근본 인연(因緣)을 비롯하여 수행자의 생활 등이 간소하면서도 솔직한 표현을 통해 명쾌하게 드러나 있다. 특히 경에 담긴 내용으로 볼 때 불전(佛典)들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부류에 속하는 경이라 평가되고 있다. 요컨대 근본 불교의 사상을 아는 데 첩경이 되는 경이다.

이 불전의 '의족경'이라는 이름은 각 소경의 끝 부분에 "의족경으로 의미를 보충한다."고 되어 있는 데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한역 불전에 이 불전의 구절의 인용되어 있는 경우를 살펴보면, 대지도론에서는 이 불전을 아타파기경(阿他婆耆經), 혹은 중의경(衆義經)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아비담비바사론에서는 중의경이라고 부르고 있다. 또 대비바사론에서는 중의품(衆義品), 혹은 의품(義品)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잡아함경, 유가론, 순정리론 등은 모두 의품이라고 부르고 있다. 또 각 소경의 끝 부분에 있는 '의족경'의 내용은 숫타니파타(Suttanip ta)의 제4품인 앗타카박가(A hakavagga)와 대체로 일치하는데, 여기서 '앗타카'란 산스크리트 어로 아르타카(Arthaka) 즉 의(義)로부터 온 것으로 보인다.

* 백련사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9-03-12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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