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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약석
글쓴이 : 백련사 날짜 : 2009-01-13 (화) 11:09 조회 : 2168
화엄약석.hwp (883.9K), Down : 95, 2009-01-13 11:09:57

略釈 新華厳経論

李通玄 著ㆍ暁山 訳解

머리말

대방광불화엄경大方広仏華厳経이란 비로자나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에서 정각을 이루시고 위신력으로 상근 대중에게 부사의한 법계法界를 일시에 설하신 원교圓教이다. 대방광大方広이란 증득해야 하는 대상으로 곧 법계이며, 이 법계의 본체本体와 공덕과 작용作用을 체상용体相用 삼대三大라 하며, 이 삼덕三徳을 모든 중생이 본디부터 원만하게 구족하고 있다. 불화엄仏華厳이란 증득할 주체主体로 곧 수행하는 사람이며, 이 근본지 부처를 묘행妙行의 꽃으로 장엄하고 또한 대방광의 본체와 불화엄의 묘행이 서로 장엄하므로 이 경을 각행호엄경覚行互厳経이라 일컫기도 한다.

이 대방광불화엄경에 삼부三部가 있다. 상본上本 화엄은 일사천하一四天下 미진수의 품이 있고, 중본은 1천2백 품이 있으며, 하본은 48품이 있다고 전해 내려오고 있다. 현존하는 대방광불화엄경은 10회 40품(혹은 9회 39품)으로 구성되었으며, 이 경문을 크게 분류하면 양분兩分할 수 있다. 곧 초회 세주묘엄품부터 이세간품까지 39품은 바로 수행자의 오위인과五位因果로 법문法門을 펴서 습기習気를 다스리고 수증修証하는 분分이 되며, 제10회 마지막 입법계품은 말을 버리고 행을 의지하여 두렷이 법계를 드러내는 분이 된다. 상본과 중본 하본 또는 약본의 10회 40품의 경문은 모두 37도품법과 십바라밀을 근본으로 삼고, 이 십바라밀은 지혜와 자비로 근본을 삼으며, 이 지혜와 자비는 모든 부처님의 근본지를 근본으로 삼고, 이 모든 부처님의 근본지는 부동지불不動智仏로 근본을 삼으며, 부동지불은 보광명지普光明智를 근본으로 삼고, 보광명지는 무의주지無依住智로 근본을 삼으며, 또한 무의주지는 일체 중생을 근본으로 삼는다. 10회 40품의 경문으로부터 부동지불과 보광명지와 무의주지에 이르기까지 일체가 중생의 경계를 근본으로 삼기 때문에 초회를 보리도량에서 설하시고, 맨 끝의 제10회에 부사의한 해탈 경계인 입법계품을 인간이 사는 실라벌국室羅伐国의 서다림逝多林 급고독원給孤独園에서 설하신 것이다.

이 약석 신화엄경론을 저술하신 이통현李通玄 장자(635-730)는 어디에서 오셨는지를 알 수 없지만 왕족 출신이라 전하며, 단지 본향本郷을 물으면 창주인滄州人이라고 대답하셨다 한다. 장자의 신장은 7척2촌이고 눈은 샛별처럼 밝으며, 긴 수염이 아름답게 늘어지고 피부는 홍황색紅黄色을 띠었으며, 머리에 관을 쓰고 몸에는 삼베옷을 입었으며, 풍채가 특이하여 수묘한 상호를 갖추지 않음이 없었으며, 고금의 학문에 정통한 가운데 특히 주역에 조예가 깊었다. 당唐 개원開元 7년(719) 3월 보름에 책 상자를 짊어지고 지팡이를 이끌면서 태원太原 대현大賢마을 고산노高山奴의 집에 이르렀으며, 매일 대추 열 개와 잣잎을 갈아 숟가락 만하게 만든 떡 뭉치 하나만을 자시면서 3년 동안 논論을 지으므로 세간의 사람들이 조백대사棗柏大士라 부르게 되었다. 하루는 남쪽으로 오륙십 리를 나아가 마씨馬氏의 고불당古仏堂에 손수 토굴을 짓고 고요히 정좌하면서 또한 10년이 다하도록 화엄의 현리玄理를 참구하셨다. 다시 경문을 들고 길을 따라 가다가 홀연히 호랑이를 만나자 다음과 같이 이르시었다.

“내가 논을 지어 화엄경을 해석하고자 하니 나를 위하여 머무를 만한 곳을 가리도록 하라.”

바로 호랑이의 안내를 받아 천연토굴에 이르러 논을 지으시는데 저녁에는 입에서 밝은 광명을 내어 촛불을 대신하였다. 미모가 절세인 소녀 두 명이 항상 아침에 나타나 향을 사르고 지필묵을 준비하며, 정찬浄饌을 만들어 진사간辰巳間에 공양을 마치면 곧 사라지곤 하면서 일찍이 한 번도 때를 거른 적이 없었는데, 그 논문을 지어 마침에 드디어 자취를 감추고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개원 18년(730) 3월 28일 감실龕室에서 좌화坐化하셨는데 세수가 96세이다. 송宋 휘종徽宗이 현교묘엄존자顕教妙厳尊者라 사호賜号하였다. 보조국사는 장자를 과후대성果後大聖인 보현보살의 후신이라 추앙하고, 오직 뜻을 잊고 마음을 요달한 자라야 이 논문을 우러러 믿을 수 있다고 찬탄하였다.

이통현 장자께서는 신역 화엄경 80권을 최초로 주석하여 불후의 명저인 신화엄경론新華厳経論 40권을 후세에 남겼다. 신화엄경 가운데 입법계품의 선재동자 선지식의 법문을 중점적으로 요약하여 약석신화엄경수행차제결의론略釈新華厳経修行次第決疑論 4권을 저술하고, 또한 십이인연법을 근간으로 삼아 열 가지 문을 세워서 밝힌 해미현지성비십명론解迷顕智成悲十明論 1권과, 화엄경 80권의 대의를 간략하게 서술한 대방광불화엄경중권권대의약서大方広仏華厳経中巻巻大意略敍 1권이 현존하고 있다. 장자께서 저술한 대론大論과 약석의 근본 취지는 두순화상杜順和尚과 지엄대사智儼大師, 현수국사賢首国師, 청량국사로 법통이 내려오는 전통적인 화엄교가華厳教家의 사상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매우 많다. 그 가운데 각수보살覚首菩薩의 세 가지 뜻으로 십신의 초문을 삼고 이로써 신태信胎를 이루며, 또한 삼승보살의 십일지 등각위가 바로 화엄의 초발심주에 상당한다고 하신 말씀은 삼승의 오위 수행이 모두 화엄의 십신의 문 안에 들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론에 이르기를, “범부가 십신심十信心에 들어가기가 어려운 것은 범부들이 모두 스스로가 범부인 줄만 알고 자기 마음이 부동지불인 줄을 기꺼이 인식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십신에 들어가기가 어려운 것이다”라고 하였다. 모든 범부들이 비롯함이 없는 때로부터 오면서 망령된 견해를 따르기 때문에 설령 불법에 대하여 믿음을 낼지라도 자기의 정견情見에 따라 믿음을 내므로 지혜경계만을 미혹시킬 뿐이며, 스스로 실지実智에 계합하고 진실한 믿음을 일으켜 수행함이 없기 때문에 향상일로向上一路에 나아가 고불의 전지田地를 밟지 못하는 것이다. 만일 어떤 범부가 십신의 초에 각수의 세 가지 뜻을 깨달으면 백정무염白浄無染한 금색세계의 이지理智와 부동지불의 근본지체根本智体와 문수사리의 묘혜妙慧를 얻으며, 또한 십신만심十信満心에 발심하면 십주의 초위에 문수의 법신과 보현의 행신行身과 조작이 없는 지과智果의 보신을 함께 얻는 것이다. 신심자가 자기의 몸과 마음이 청정무구하므로 곧 일체 모든 부처님의 법신과 지신智身과 함께 본래 동일하여 금색세계와 다름이 없음을 믿고, 자기 마음의 분별하는 지혜가 일체 모든 부처님의 근본 부동지불과 함께 본래 동일함을 스스로 믿으며, 신심자가 자기의 마음으로 묘하게 간택하는 지혜가 일체 모든 부처님의 묘혜와 함께 동일함을 믿음으로써 비로소 신심을 성취한다. 열 가지 신심이 이루어지면 자연스럽게 초발심주에 들어가고 나아가 구경의 불과에 이르는데, 선문에서 견성한 뒤에 보림保任하여 성태聖胎를 장양長養한다는 말이 곧 이 십신 가운데 신태를 기르는 것이며, 초발심주에 정각을 이루면 보림을 요하지 않는 것이니 오견五見이 다하여 생사에 유전하지 않고 법신에는 삼세가 없기 때문이다.

수행을 올바르게 하려면 여러 가지 좋은 인연이 있어야 한다. 1971년 초봄 스물세 살의 젊은 나이에 출세간出世間에 첫발을 내딛은 뒤로부터 지금까지 지나온 30여 년 동안의 산문생활을 돌이켜 보면 진실로 감회가 깊다. 첫째 지혜와 자비를 구족하여 당대에 제일 선지식으로 존경을 받으신 전강 조실스님의 가르침을 특별한 인연 속에서 자세히 받았으며, 둘째 지덕智徳과 갖가지 중예衆芸를 겸비한 가운데 특히 스승을 공경하는 마음이 돋보이신 송담 큰스님의 각별한 감화 속에서 수행의 기초를 굳건히 다졌으며, 셋째 전국의 여러 선원에서 고고하게 수행에만 전념하는 구참스님과 훌륭한 도반스님 등 모든 인연이 구족한 가운데서 수행에만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 커다란 행운이었다. 그러나 스스로 선근이 옅어서 발심이 광대하지 못하고 의지가 용렬하여 용맹심을 갖추지 못한 탓으로 수행에 커다란 진취를 얻지 못한 점은 지금 생각해 보아도 못내 아쉬움이 남는다. 나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가행정진하거나, 또는 여러 가지 역경을 딛고 용맹정진하면서 수행하는 학자들이 우리 나라에 많이 있다. 그러나 이 모든 분들이 간화선을 통하여 단박에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미망迷妄의 세계에 머물러 있는 원인을 가만히 살펴보면 대체로 세 가지가 있을 것이다.

서산대사께서 선가구감에 이르기를, “참선하는 데는 모름지기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하나니, 첫째는 큰 신심이고, 둘째는 큰 분심이며, 셋째는 큰 의심이다. 만일 그 가운데서 하나라도 빠지면 다리가 부러진 솥과 같아서 마침내 쓸모 없는 물건이 되고 말 것이니라”라고 하셨다. 이와 같아서 첫째는 신심을 원만하게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고, 둘째는 분심을 크게 일으키지 못했기 때문이며, 셋째는 화두에 의심이 간절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가운데 신심은 교문教門이나 선문禅門을 가리지 않고 관문観門을 닦아 나가는 데 있어서 가장 근본이 되며, 이 논문에서는 위의 세 가지 가운데서도 특히 신심의 문에 집중적으로 조명하여 그 근원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선문에서는 신심과 분심과 의심을 삼요三要라 일컬어 중시重視하면서도 분심과 의심 내기만을 강조할 뿐이요, 이 분심과 의심의 근본이 되는 신문信門에 들어가는 길을 등한시等閑視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보조국사께서도 일찍이 동진으로 출가하여 선문에 몸을 담고 20여 년을 수행하고서도 화엄의 십신에 들어가는 초문初門을 알지 못했다고 한 말씀에 의거하면, 예전이나 지금이나 선가禅家의 전반적인 병폐는 마찬가지여서 곧 신문을 가볍게 여기는 데 원인이 있지 않은가 한다.

예로부터 선문에서 간화선을 참구함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화두는 조주선사의 무자無字와 이뭣꼬일 것이다.

어떤 스님이 조주스님께 여쭈었다.

“저 개도 또한 불성仏性이 있습니까?”

“없느니라.”

“일체 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거늘 저 개는 어째서 없다고 하십니까?”

“그에게는 업식業識이 있기 때문이니라.”

이상이 무자 공안의 내용이다. 이 공안을 참구하는 가운데 불성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없다면 ‘어째서 개는 불성이 없다고 했는고?’라고 하면서 의심을 일으켜 보아도 조금도 의심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선문에서도 근본 신해信解를 갖추지 못하면 일체 공안을 바로 참구해 나갈 수 없으며, 신해가 광대하면 할수록 분심과 의심도 더욱 광대하여 시절인연이 이르러 바야흐로 크게 깨달으면 그 법량도 또한 광대하고 무량할 것이다.

이통현 장자의 저술 가운데 신화엄경론 40권은 탄허 큰스님에 의해 20여 년 전에 이미 47책으로 번역되어 신화엄경합론이란 제명으로 출간된 일이 있지만, 그 내용이 경문 80권과 논문 40권에 청량소초 150권이 첨가되어 광대무변하므로 전문 수행자일지라도 그 근본 종취宗趣를 가려가며 화엄의 문에 들어가기는 지극히 어렵다. 하물며 일반 사부대중이나 세간의 지식인들로서는 설령 화엄의 세계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고 할지라도 그 대의를 일목요연하게 가려가면서 닦아 나가는 일은 더욱 어려울 것이다. 나는 선원에서 전통적인 수행법에 의거하여 간화선看話禅을 참구하는 가운데 큰마음을 먹고 1979년 봄 해제 때에 시간을 내어 신화엄경합론 47책을 전부 읽은 적이 있다. 그 뒤에도 간간이 두세 차례 더 보면서 간결한 입문서를 찾다가 우연히 대장경의 목록을 뒤적이는 가운데 약석 신화엄경론을 만나 보고 반가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이 약석과 십명론과 권권대의는 두 본이 있는데 대정장본大正蔵本을 저본으로 삼아 번역하고 만속장본卍続蔵本을 참고하였으며, 또한 우리 나라에서 초역初訳이고 본인도 최초로 번역한 책이어서 실로 어려움이 매우 많았다. 신화엄경론과 함께 이통현 장자의 모든 저술이 일본보다 우리 나라에서 먼저 번역되어 유통되는 것은 보조국사께서 화엄론절요華厳論節要와 원돈성불론圓頓成仏論을 저술하여 화엄론을 기본 수행체제로 삼아 중시한 훈습이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 약석 신화엄경론을 1990년 초부터 뜻을 음미하면서 번역하기 시작하여 그 해에 초고를 완성한 이래 다시 원문과 번역문을 대조하여 가며 20여 차례나 넘게 수정하면서 마지막까지 모든 정성을 다 기울여 완벽을 기하려고 노력했다. 이 논문은 원래 전문 수행자를 위하여 쓰여진 것이어서 전일하게 수행하지 않는 자는 무슨 뜻인지를 이해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많은 도학자가 이 책을 통하여 신심을 완비함으로써 각자 닦아 나가는 수행 방법에 의거하여 해탈 세계에 나아가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내가 이 논문을 번역하고 해설한 진정한 뜻은 출세간에 머무는 전문 수행자에게만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갖가지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세간의 모든 중생에게 올바른 길잡이를 제시하려는 데에 있다. 특히 감수성이 예민한 20세 전후의 청소년들이 새로운 선재동자가 되어 21세기의 세계를 창조적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는 기본 원동력을 이 논문에 의지하여 획득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이 세간이야말로 진실로 모든 성인이 범부와 함께 섞여 자재로 유희하며 교화하는 근본도량이어서 일체 보살은 중생이 없으면 성불할 수 없으며, 또한 모든 범부도 각자 업력에 따라 태어나지만 분에 따라 자기의 이상을 실현하려고 애쓰는 생활의 터전이기도 하다. 이 생활의 터전을 화엄의 근본 보리도량으로 삼고 모든 범부 중생에 대하여 그들의 업력을 보지 말고 그 불성만을 관찰하려고 한다면 처처에서 모든 부처님과 보살을 친견할 수 있을 것이며, 곧 이 세간에서 한 걸음도 옮기지 않고 바로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직하에 불국토를 구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약석 화엄경론 역해본訳解本은 나의 모든 정성과 역량을 쏟아놓은 결정체이다. 먼저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시고 올바르게 길러 주신 부모님께 바치며, 또한 출가한 뒤에 수행의 원천이 되어 주신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 큰스님께 이 역해본을 올리는 바이다. 또한 이 책을 집필하는 도중에 친절하게 가르침을 베풀어 주신 광릉 봉선사의 월운 회주스님과 각별하게 편의를 배려해 주신 의정스님께 심심한 사의를 표하며, 처음 원고를 쓸 때부터 물심양면으로 아낌없이 지원해 주신 평택 심복사 정견스님께 아울러 고마움을 표한다. 또한 이 원문의 한문을 전부 타자한 원각경 이혜경 불자님께 이 지면을 통하여 거듭 감사한 마음을 표하며, 이 논문의 번역문을 교정하여 주신 조광해, 윤종배 두 분의 거사님과 국어교사인 동생 정성강과 동료 교사께도 아울러 사의를 표명하고자 한다. 또한 나라의 경제가 점점 나아진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어려운 형편에 선뜻 이 경론을 출간하여 주신 운주사 사장님을 비롯한 모든 식구들에게 심심한 사의를 표하는 바이다.

특히 해설문을 쓴다는 것은 번역하는 일에 못지 않게 지극히 어려운 일이어서 스스로의 능력을 감안하여 감히 손을 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대학원에서 화엄학을 전공한 지혜월 김수경 불자가 전문학도의 입장에서도 이 논문이 너무 어렵다고 하면서 새로 화엄학을 연구할 후학을 위하여 다시 그 뜻을 부연하여 주기를 간곡히 원하고 권유한 바가 있어서 비로소 해설할 뜻을 내었으며,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지난 1년 반 동안 오로지 집필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헌신적으로 배려해 준 공功이 있었기에 이 약석 역해본을 탈고하여 이 세상에 빛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약석 신화엄경론 역해본을 지혜월 공덕장功徳蔵과 새로운 선재동자와 모든 불자에게 바친다. 아무쪼록 이 논본論本에 의거하여 정지견正知見을 이루고, 더욱 부지런히 정진하여 금생에 지혜와 자비를 원만히 구족하며, 이 유정세간有情世間을 여의지 않고 지정각세간智正覚世間에 유희하기를 염원한다.

불기 2543년(서기 1999년) 8월

문학산文鶴山 아래 연수난야延寿蘭若에서 효산 삼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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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파일에 화엄약석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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