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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이취육바라밀다경(大乘理趣六波羅蜜多經)
글쓴이 : 백련사 날짜 : 2013-02-01 (금) 18:00 조회 : 2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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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이취육바라밀다경(大乘理趣六波羅蜜多經)

대승이취육바라밀다경 제1권

계빈국(罽賓國) 반야(般若) 한역

김진철 번역

1. 귀의삼보품(歸依三寶品)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박가범(薄伽梵:세존)께서 왕사성(王舍城) 가란다가(迦蘭多迦) 죽림정사(竹林精舍)에 계셨다.

이때 많은 보살마하살이 물러나지 않는 위계(位階)인 10지(地)에 머물러 10바라밀다가 이미 원만하였다.

또 많은 큰 필추가 있었으니 다 아라한(阿羅漢)으로서 모든 번뇌[漏]가 이미 다하여 다시는 번뇌가 없고 이미 이로움을 얻어 마음이 잘 해탈하였고 지혜도 잘 해탈하였다.

또한 아승기야(阿僧企耶)의 모든 유정(有情)들도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켰다.

그때 자씨(慈氏)보살마하살이 이 모임 가운데 있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였다.

‘여기에 모인 대중 속의 모든 유정들은 빈궁하고 외로워 믿고 의지할 곳이 없이 생사에 유전하면서 애욕의 강물에 빠져 있다. 피안(彼岸)에 이르고자 하여 법을 듣기 위한 까닭에 세존을 뵙고 일체지(一切智)를 구하기를 원하나 능력이 없다.’

그때 자씨보살은 매우 깊은 뜻을 여쭙고자 하였다.

‘일체 유정이 어떻게 보리심을 일으켜야 부처를 구(求)하며, 결정코 3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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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겁(無數劫) 동안 피로와 싫증을 내지 않을까? 지금 부처님 세존의 뜻은 알기 어렵고 광대하여 매우 깊으나, 문구(文句)가 교묘하여 원만함을 구족하였으니, 유정의 인과(因果)의 차별에 따라 수기를 주어[記別] 속히 위없는 보리를 구하게 하리라.’

이에 미륵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마음을 일으켜 곧 자리에서 일어나 의복을 정리하고 6근(根)을 잘 조복하여 몸과 입과 뜻의 업이 모두 적정하였다. 그 6근은 백 가지 복에서 생기는 미묘한 상(相)인 80종호(種好)로 장엄되어 3무수겁 동안 원만하였고 마하반야바라밀다 등 백천만의 태양 광명의 상이 그 몸을 장엄하니, 일체 유정이 우러러 쳐다봄에 싫어함이 없었으며, 비할 바 없는 부처님의 과(果)인 깨달음에 가까웠다. 이와 같은 몸으로써 부처님 처소에 나아가 오체(五體)를 땅에 엎드려 부처님 발에 예배했다.

또 한량없는 공덕으로 장엄된 손을 새로 피어난 연꽃처럼 합장하여 공경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여래시여, 세존께서는 일념 중에 능히 일체 유정의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마음을 아시니, 어떤 유정은 여쭘으로 인하여 청정한 마음을 얻고, 혹은 어떤 유정은 수기를 받을 때 수다원과(須陀洹果)에서부터 아라한과나 벽지불과(辟支佛果)에 이르기까지를 얻고 혹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수기를 얻습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여래께 우러러 여쭈오니 오직 원하옵건대 세존이시여, 분별하여 해설하여 주옵소서. 세존께서는 지금 3세(世)의 유정이 의지할 주인이오니 유정이 대승행을 행함에 그 마음이 부드럽고 평화로워질 것이옵니다.

오직 원하옵나니 세존이시여, 자비로써 불쌍히 여기시어 얻으신 감로법(甘露法)을 홀로 수용하지 마시고 그 맛을 함께하게 하여 주소서.

어떻게 하면 모든 유정을 대열반의 안온한 바른 길로 나아가게 하며, 이들 유정은 마땅히 어떤 일을 하여야 일체지에서 물러나지 아니함을 얻게 되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보시[檀]바라밀에서 반야바라밀에 이르기까지 원만하게 하겠습니까?

또 이 반야바라밀다는 앞의 다섯 가지 바라밀다의 모체가 됩니다. 어떻게 닦고 익혀야 능히 원만해지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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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 큰 서원을 어떻게 드러내고 발하며, 또 모든 유정은 열반 피안을 어떻게 닦고 익혀야 하는지를 세존이시여, 분별하여 해설하여 주소서. 일체 유정을 이익하고 안락하게 하여 환희를 얻게 하고자 하나이다.”

그 때 박가범께서 자씨보살마하살을 칭찬하시어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도다. 선남자여, 네가 지금 일체 유정을 이익하고 안락하게 하려고 이 깊은 뜻을 묻는구나. 모든 유정에게 선업을 닦도록 권하려는 까닭이요, 항상 유정을 위해 부지런히 닦고 익히게 하려는 까닭이요, 너는 지금 일심으로 널리 유정이 단번에 얽매인 쇠사슬을 끊고 부지런히 법을 구하게 하려는 까닭이요, 너는 지금 이 대자비심으로 3아승기겁에 여섯 가지 바라밀다의 큰 바다 같은 법을 원만히 하려는 까닭이요, 너는 지금 이미 보리도량의 열반 언덕에 가까운 까닭이다. 마치 명성(明星)이 사라지면 빛나는 태양이 곧 비추는 것처럼 너도 지금 또한 그러하여 부처님의 태양[佛日]을 짓는구나. 너는 이제 자세히 듣고 그것을 잘 생각하라.

내가 지금 너를 위해 아주 깊은 뜻을 구족하게 분별하리라. 지혜로운 사람은 잘 사유하니, 생사의 험한 길 가운데서 잘 관찰하여 믿고 의지할 것이 없는 곳에서 허물을 짓지 말 것이다. 비유하면 큰 바다로 나가는 배에 선장이 없으면 그 속의 유정은 표류하거나 빠지고 말 것이다. 물결이 일렁이고 소용돌이치면 끝내 부서져 가라앉게 되는데, 이러한 온갖 어려움으로 항상 근심하고 걱정하다가 길상스럽고 위없는 선장[船師]을 구하여 믿고 의지하는 것과 같다.

또 모든 유정은 생사 가운데서 항상 겁내고 두려워하는 일이 많아 그 까닭으로 힘 있고 세력 있는 사람을 구하여 의지해야만 원수의 침해를 입지 아니하니, 설령 그 원수에게 커다란 힘이 있을지라도 이 사람이 왕에 의지하여 붙으면 그 원수는 두 번 다시 능히 손해를 끼칠 수 없게 될 것이다.

또 그 원수는 이미 세력을 보았으므로 영원히 원한의 마음을 버리고 순종하며, 바르게 교화될 수 있을 것이다.

일체 유정도 이와 같아 각각 이렇게 생각하되, ‘누가 나에게 귀의처가 되어 쇠약한 근심을 없애고 안락을 얻게 해줄 수 있을까? 이 삼계 5도(五道) 가운데 하늘ㆍ용ㆍ야차ㆍ아수라ㆍ가루라ㆍ건달바ㆍ긴나라ㆍ마후라가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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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과 사람 아닌 것 등 모든 무리 속에서 귀의처를 구하고 찾아도 능히 귀의처가 될 자가 없다.

무슨 까닭인가?

그 모든 하늘 등은 스스로도 능히 생사의 쇠사슬을 벗지 못하였고, 번뇌에 얽매어 삼계에 유전하며 한량없고 끝이 없는 온갖 고통을 받으며, 모든 두려운 일을 삼키며 탐욕의 그물에 얽혀 있으니, 하물며 능히 나의 귀의처가 될 수가 있겠는가?

또 모든 하늘 등은 항상 갑옷과 투구와 전쟁의 장비를 갖추고 저 아수라에게도 두려움을 품는데 어찌 사람과 다른 모든 중생[趣]에게 있어서랴.

이로써 삼계 6도를 관찰하니 능히 나를 감당하여 이끌어 제도할 자가 없는 까닭에 마땅히 불(佛)ㆍ법(法)ㆍ승(僧)에 귀의하여야 하리라. 불ㆍ법ㆍ승을 제하고는 나를 구호할 자가 없다.

일체 유정이 만약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열반락(涅槃樂)을 구하고자 하면 불보ㆍ법보ㆍ승보에 귀의해야 할 것이며, 이 인연으로 모든 유정은 불ㆍ법ㆍ승에 귀의하게 해야 한다.”

그때 자씨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무엇을 불보ㆍ법보ㆍ승보라고 이름하며, 어떻게 귀의합니까?”

부처님께서 자씨에게 말씀하셨다.

“불보(佛寶)란 곧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부처님 몸이요, 다른 하나는 부처님의 덕이니라. 부처님의 몸이란, 여래ㆍ응공(應供)ㆍ정변지(正遍知)ㆍ명행족(明行足)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士)ㆍ조어장부(調御丈夫)ㆍ천인사(天人師)ㆍ불세존(佛世尊)이니라.

이미 과거 무량무변 아승기겁에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고 부지런히 6도만행(六度萬行)을 원만히 닦고, 보리수 아래 금강좌(金剛座)에 앉아서 마군을 항복받고 모든 번뇌의 도적을 끊고 일체지를 얻어 등정각을 이루었느니라. 이와 같이 모든 미묘한 공덕을 구족하였으므로 부처라 하느니라. 부처님의 덕이라는 것은, 곧 부처님 몸 가운데서 10력(力)과 4무소외(無所畏)와 18불공법(不共法)과 대자대비와 대희대사(大喜大捨)와 3해탈문(解脫門)과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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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드러내 보여 인도함[三示導]과 6신통과 마음을 따르는 삼매[隨心三摩地]와 네 가지 지혜[智]와 두 가지 지혜[智]와 아는 경계[知境]에서 떠나 번뇌장(煩惱障)과 소지장(所知障)을 끊고, 모든 습기(習氣)를 여의며 공용(功用)이 없는 도(道)로써 여여한 변화[如如化]를 일으키며, 멀리 또는 가까이에서 노닐거나 멈춤에 자재롭고 장애가 없으며, 한 알의 겨자씨에 능히 한량없는 묘고산(妙高山)을 들여놓으니, 이와 같은 무량무변한 공덕을 모든 부처님 여래는 다 구족하시느니라.

또 1겁에서 무량겁에 이르도록 수명이 자재하여 능히 줄어듦이 없으며 신족통[神境通]으로 왕래하여 변화를 나타내시는 것이 장애가 없고 마음대로 자재롭다.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 다니시는 성읍이나 부락에 먼저 미묘한 금색광명을 놓아 그곳에 비추면 그곳에 있는 중생으로서 이 빛을 받는 자는 몸의 병과 마음의 병이 다 없어져 나으며, 마음의 울화가 없어지고 몸이 맑고 시원해진다. 등이 굽은 자는 펴지고 절름발이는 걷게 되며, 눈이 어두운 이는 보게 되고 귀먹은 이는 듣게 되고 벙어리는 말할 수 있게 되며, 마음이 어지러운 이는 곧 본래의 마음으로 돌아가며 귀신병ㆍ미친병ㆍ도깨비병 등 온갖 병이 다 없어지고 치유된다. 벌거벗은 자는 옷을 얻고 교만한 마음이 있는 자는 겸손해지게 되며, 근심하고 고뇌하는 자는 마음이 안온해지고 길을 잃은 자는 바른 길을 얻게 된다. 굶주리고 목마른 자는 음식을 얻고 죄수로 묶인 자는 풀려나고 겁에 질린 자는 두려움이 없어진다. 또 구릉이나 구덩이나 산이나 물, 언덕은 마치 손바닥으로 친 것처럼 평평해지며, 저택의 문이 낮고 작은 것은 자연히 높고 커지며 좁은 길은 모두 다 넉넉하게 넓어지며, 저잣거리도 자연히 활짝 열리고 더럽고 부정한 것은 즉시 향기롭고 맑아지며 가시나 독가시나 기와나 조약돌ㆍ모래ㆍ돌 등이 다 나타나지 않게 된다. 햇빛이 내리쬐는 극심한 더위에도 고통을 받지 않으며 향기로운 바람이 불고 화창하며 온갖 먼지가 날리지 않는다. 백학과 공작ㆍ앵무ㆍ사리(舍利:황새)ㆍ가릉빈가(迦陵頻伽)ㆍ구지라(拘枳羅)ㆍ구나라(拘那羅)ㆍ명명(命命) 등의 새는 그 소리가 아름답고 미묘하여 평화롭고 아름다운 소리를 내며, 코끼리ㆍ말ㆍ소ㆍ양ㆍ물소[水牛]ㆍ검정소[犁牛]ㆍ들소[犎牛]ㆍ죽우(竹牛) 등이 각각 자기 소리를 내는데 그 소리가 미묘하다. 그리고 공후(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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篌)ㆍ피리ㆍ비파ㆍ북ㆍ부는 악기 등 이와 같은 악기가 치지 않아도 저절로 울린다. 그 밖의 갖가지 교묘하고 희유하고 기이하며 모든 신통스러운 일이 다 변화하여 나타난다. 이와 같은 온갖 희유한 일이 날마다 각각 달리 나타나되, 수승한 것이 더하여지니 이 모두가 여래의 위신력이다.

만약 어떤 중생이 부처님 세존과 부처님의 공덕이 같다거나 다르다고 의심하면 마땅히 부처님과 공덕은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고 말해야 한다. 비유하면 등불의 기름과 심지는 불빛과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으니, 기름과 심지를 떠나서 달리 불빛이 없는 것과 같다. 만약 등불의 빛이 기름과 심지를 떠나 있다고 말하면 빛이 비치는 곳은 모두 다 타버릴 것이다.

부처님 몸과 공덕도 이와 같으니, 이 미묘한 몸은 바로 부처님 공덕이요, 번뇌가 없는 법신이라 나와 남이 수용하여 평등하게 의지한다. 그러나 부처님 몸 또한 이 몸이 아니요 이 몸을 떠나 밖에 달리 법신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 몸이란 것은 밖의 물건과 같아 4대(大)의 모양이 있다. 그러므로 모양도 아니요 모양이 없는 것도 아니라고 알아야 한다. 만약 모양이 아니라면 큰 허공과 같으며, 큰 허공과 같다면 성품이 곧 이에 항상하여 방편의 허물이 없다. 자기 성품이 청정하여 물들거나 집착함도 없으며, 매우 깊고 한량이 없으며, 변하거나 바뀌는 것도 없고, 이해하기도 어렵고 알기도 어려우며, 미묘하고 고요하다. 한이 없이 진실하고 항상한 공덕을 갖추어서 모든 희론이 끊어졌으니, 오직 부처님만이 증득하여 아실 바요 다른 이는 미칠 바가 아니며, 또한 비유로써 비교하며 헤아릴 것도 아니니라.

자씨야, 마땅히 알라. 이와 같은 몸이란 곧 이 과거ㆍ미래ㆍ현재 항하의 모래수와 같은 모든 부처님 세존의 법신의 모양이다. 부처님의 보신(報身:과보신)이란 모든 여래가 3무수겁 동안 닦아 모은 한량없는 복과 지혜의 양식[資糧]으로서 일어난 한없는 진실한 공덕은 항상 머물러 변하지 아니하고 모든 근(根)의 상호(相好)의 지혜 광명이 두루 법계에 퍼지니, 다 출세간의 무루 선근에서 생긴 까닭이다. 불가사의하여 세간의 지혜를 뛰어넘어 근기가 무르익은 유정을 위하여 이런 모양을 나타내니, 다함이 없는 법을 펼쳐서 널리 끝없이 이익하게 하느니라. 자씨야, 마땅히 알라. 이것은 곧 여래의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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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한 보신이니라.

화신(化身:응신)이란 저 유정을 위하여 그를 따라서 응하여 변화한 것이니, 한량없는 아승기의 모든 변화한 부처님의 몸[化佛身]을 나타내신다. 그 변화한 몸은 혹 지옥에서 그 몸을 나타내어 유정을 제도하여 온갖 고통을 여의게 하며, 정법으로써 인도하여 수승한 마음을 내게 하고, 사람이나 하늘에 다시 태어나서 수승한 쾌락을 받게 하며, 부처님 법 가운데서 믿음의 즐거움을 깊이 일으켜 부처님 법의 일부분을 얻고 성인의 도과를 얻게 한다. 혹은 아귀의 갈래에 태어나 그 유정을 교화하여 목마름과 굶주림과 온갖 핍박을 여의게 하여 정법으로써 교화하여 수승한 마음을 내게 하여 사람이나 하늘에 다시 태어나서 모든 쾌락을 받고 깊이 불법에 들어가서 성인의 도과(道果)를 얻게 하느니라.

혹은 축생으로 변화하여 그 무리에 있으니, 가루라의 몸이 되기도 하고 용의 몸이 되기도 하고, 혹은 사자ㆍ코끼리ㆍ말ㆍ곰ㆍ호랑이ㆍ표범ㆍ승냥이ㆍ이리ㆍ들개[野干]ㆍ여우[狐]ㆍ토끼ㆍ독사ㆍ뱀ㆍ살모사ㆍ전갈ㆍ물고기ㆍ자라ㆍ큰 자라ㆍ악어ㆍ백학ㆍ공작ㆍ봉황ㆍ원앙ㆍ앵무ㆍ사리(舍利) 등 여러 가지의 몸이 되어서 모든 유정으로 하여금 서로 해치는 마음을 떠나 자비한 마음으로 서로 대하게 하며, 능히 갖가지 모든 두려운 일을 여의게 하고 정법을 보여 불ㆍ법ㆍ승을 깊이 믿어 즐거이 귀의하게 한다. 사람과 하늘에 태어나서 모든 쾌락을 얻고 불법의 일부분을 얻어 성인의 도과를 얻게 한다.

혹은 다른 국토에서 유정으로 교화하여 해와 달의 빛이 능히 비치지 못하는 곳인 이와 같은 여러 가지 부처님 법이 없는 곳에 정법을 세워서 모든 유정으로 하여금 불ㆍ법ㆍ승에 귀의하여 머리를 삭발하고 부처님의 금계(禁戒)를 받아 비구[苾芻]ㆍ비구니[苾芻尼]나 혹은 우바새[鄔波索迦]ㆍ우바이[鄔波斯迦]가 되게 하여, 승방을 세워 정법을 잘 지키고 한량없고 수없는 유정을 편안하게 하며, 사람과 하늘을 열반의 피안에 안치하여 과(果)를 증득하게 한다.

혹은 하늘의 세계에 태어나 그곳의 유정을 교화하여 5욕(欲)을 여의어 마음에 물들거나 집착함이 없게 하고 정법으로 인도하여 보리심(菩提心)을 발하게 하고, 불ㆍ법ㆍ승에 귀의하여 깊이 정법에 들어가 열반 해탈의 과를 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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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하여 머물게 한다.

혹은 사람의 세계에 태어나니 왕국의 석(釋)씨 집안에 태어나서 교묘한 방편으로 모든 유정을 교화하여 삼계의 번뇌와 근심과 걱정과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을 끊어 없앤다. 일부러 현재의 생을 받아 성을 넘고 출가하여 보리수 아래서 길상초(吉祥草)를 받고 도량의 금강좌에 앉아서 마군을 항복하고 등정각을 이룬다. 그리고 유정을 교화하기 위하여 정법의 수레바퀴를 굴리어 큰 광명을 놓아 두루 일체에 펴서 세간을 비추며, 자기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하여 모두 원만하게 하며 혹은 고요함[寂靜]을 나타내어 대열반에 드시니, 이것을 곧 부처님의 화신이라고 이름하느니라.

이와 같이 가지가지 선교방편이 무량무변하니, 이것은 다 여래의 자재로운 신통력이며, 이것이 곧 3신(身)의 체(體)로 다른 모양이 없는 것이니라.”

이때 박가범께서 자씨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너의 생각은 어떠하냐? 만약 선남자ㆍ선여인으로서 부처님께 귀의하는 자는 모든 부처님의 청정법신에 귀의해야 하며, 만약 부처님의 법신을 구하고자 하는 자는 마땅히 ‘나와 저 일체 유정이 이와 같은 공덕의 법신을 얻게 하여지이다’라는 큰 서원을 세워야 한다. 왜 이와 같은 원을 말하게 하는가? 부처님의 응신(應身)은 찰나 동안에 변천하고 화신불(化身佛)은 속히 열반에 들며, 공덕법신(功德法身)은 고요하게 항상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청정법신에 귀의하는 것이니, 법신에 귀의한다는 것은 곧 과거ㆍ현재ㆍ미래 모든 부처님께 귀의하는 것이다.

만약 내가 중생을 버리고 열반에 든다면 곧 함께 지옥의 모든 고통을 받을 것이요, 만약 유정과 같이 해탈하면 비록 지옥에 처하여도 열반과 다름이 없느니라. 이 인연으로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님 법신에 귀의하여 열반의 즐거움을 증득하게 하는 것이니 구경에는 여여(如如)하여 체(體)가 늘어나거나 줄어듦이 없느니라.

이와 같이 법신은 바로 참된 안락이니, 이런 까닭으로 다만 부처님 법신에 귀의하게 하는 것이다.

또한 자씨여, 무엇을 청정법보라고 이름하는가?

법보라고 말하는 것에 또한 세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세 가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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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법보는 열반ㆍ감로ㆍ해탈이니, 상(常)ㆍ낙(樂)ㆍ아(我)ㆍ정(淨)을 체의 성품으로 삼아서 능히 온갖 생ㆍ노ㆍ병ㆍ사ㆍ근심ㆍ슬픔ㆍ고뇌를 다한다.

무엇이 태어남의 고통인가?

부모가 혼인하여 한 몸이 되었을 때 부정한 종자가 모태 가운데에 자리하게 된다. 그리하여 업력의 바람을 가지고 아홉 달을 지나는데, 머물러 있는 곳은 캄캄하게 어두워서 빛이라고는 전혀 없다. 오장육부에서 살면서 커가되, 더럽고 부정한 8만 가지 벌레와 섞여서 내쉬고 들이쉬는 숨은 어머니를 따라 행하고 입은 능히 말을 못하고 눈은 볼 수 없으며, 굶주리고 목마르고 춥고 더운 가지가지 모든 고통이 몸과 마음을 절실하게 핍박한다.

이와 같은 모든 괴로움이 한량없고 끝이 없어 모든 중생을 자재할 수 없게 만드는 까닭에 태어남의 고통이라고 이름한다. 비록 이런 고통을 받을지라도 한 가지 덕이 있는데, 어떠한 원수들도 그를 보지 못하고 또한 능히 시비(是非)와 잘못이나 죄악을 말하지 않으니, 비할 데 없는 열반의 안락한 법 가운데서는 이와 같은 고통이 없느니라.

무엇이 늙음의 고통인가?

중생이 젊음에서 점차 늙어감에 세월이 흘러 옛것은 가고 새것이 오니, 충실하던 것은 한결같이 차차 감소해지며 근력이 쇠하여 이지러져서 가고 멈춤에 떨리고 머리는 희어지고 얼굴은 주름진다. 눈과 귀는 흐리고 어두워지며, 이는 빠져 성글어지고, 얼굴은 추하고 비루해지고, 몸은 구부러져 사람들이 불쾌하고 천하게 여기게 된다. 모든 말과 가르침은 말하자마자 곧 잊어버리고 몸은 무거워서 짐을 진 것 같으니라.

비유하면 등불에 기름이 이미 다하면 오래지 않아 꺼지는 것과 같다. 늙음도 이와 같아 왕성하던 기름이 다하면 오래지 않아 죽음에 이른다.

또 소막차(蘇莫遮:가면) 모자를 사람의 머리와 얼굴에 쓰면 모든 유정이 그것을 보고 희롱하는 것처럼 늙음의 소막차도 이와 같아 한 성읍(城邑)에서 다른 성읍에 이르름에 일체 중생이 쇠약하고 늙은 모자를 쓴 것을 보고 모두들 희롱하니, 이 인연으로 늙음은 큰 고통이 되는 것이다. 죽지 않고 약으로 능히 치료할 수 없는 것은 제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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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늙음의 고통을 받을지라도 그것을 싫어하지 아니하고 하늘과 땅의 귀신에 기도하여 항상 장수하기를 원하니, 비할 데 없는 열반의 안락한 법 가운데는 이런 늙음의 고통이 없느니라.

무엇이 병의 고통인가?

땅과 물ㆍ불ㆍ바람이 서로 어긋나고 해치며, 온갖 고통이 그 몸에 와서 모이니, 모든 중생은 젊은이나 늙은이를 가리지 않고 다 같이 병의 고통을 지니고 있다. 안락하고 몸에 맞는 수승하고 미묘한 5욕(欲)과 금ㆍ은ㆍ보배ㆍ가족ㆍ권속을 모두 다 버리며 온갖 가르침을 남녀 친척이 따르지 아니하며 모든 원수가 짐짓 다가와서 친한 듯 아부하니, 이와 같은 병의 고통을 모두 원하거나 구하지 아니한다.

이로써 병은 큰 고통임을 알아야 한다. 안락한 열반의 비할 데 없는 법 가운데는 청정하고 고요하니, 이런 병의 고통이 없느니라.

또한 자씨여, 무엇이 죽음의 고통인가?

중생이 기운이 끊어지고 알음알이[識]가 없어져서 지각해서 아는 것이 없으니, 모든 고통 가운데서 죽음의 고통보다 더한 것이 없느니라.

나고 늙고 병듦의 고통은 다섯 갈래 가운데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여 일정하지 않으나 이 죽음의 고통은 모두 다 지니고 있다. 비유하면 빈곤한 고통은 영화로움으로 능히 물리칠 수 있고, 원망과 미움의 고통은 친근하고 사랑함으로써 능히 물리칠 수 있지만, 만약 죽음의 고통이 이르면 늙은이와 젊은이, 어리석은 이와 지혜로운 이, 귀한 이와 천한 이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이 몸을 버리고 어둡고 컴컴한 곳에 들어간다. 의복이나 눕는 도구며 일체 재물이나 보배는 쓸모가 없어지고 벌거벗은 모습을 드러낸 채 가게 된다. 게다가 반려할 자 없고 돈과 재물로도 면할 수 없으며 하소연할 곳도 없다.

아, 무상(無常)이 능히 이런 해를 끼친단 말인가. 비루하고 추악함이 너무 커서 원수와 친한 이를 가리지 않으며, 삼계 중생은 이것을 벗어나거나 떠나지 못한다. 누구나 죽음의 침노를 받으니 무엇으로 구하랴. 설령 전륜왕이나 나라연(那羅延)의 힘이라도 다 사로잡히고 말 것이다. 마땅히 알라. 죽음의 고통은 한량없고 끝이 없으니, 이로써 죽음이 커다란 고통임을 관찰한다. 해탈 열반의 비할 데 없는 법 가운데는 고요하고 안락하여 이러한 죽음의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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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없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거센 강물에 빠져서 떠돌다가 높은 산에 오르면 겁나고 두려운 것을 벗어날 수 있는 것처럼, 중생도 그러하여 항상 일체 생사의 거센 강물에 빠져 표류하다가 열반의 산에 오르면 생사의 두려움을 여의게 된다. 또한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능히 지독한 열과 먼지와 더러움과 같은 장애를 없애주어 사람들이 안락해지고 몸과 뜻이 맑고 시원해지며, 온갖 초목이 우거지고 과실이 열리는 것과 같이 여래의 법의 비도 다시 이와 같아 능히 일체 번뇌의 지독한 열을 없애주시니, 중생이 안락해지고 해탈하며 맑고 서늘해진다. 그리고 일체의 밝고 깨끗한 선의 종자를 번성하게 자라게 하며 과실을 맺어 열반을 얻게 하느니라.

이 인연으로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는 무상의 몸을 버리고 열반의 즐거움을 증득하시느니라.”

그 때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베풀고자 하여 게송으로 설하셨다.

여래의 묘체(妙體)는 곧 법신이니,

청정 해탈은 진제(眞諦)와 같네.

태양과 빛이 서로 여의지 못하듯

여래의 공덕이 곧 열반이라네.

참된 나는 부처와 차별이 없으니,

일체 유정이 귀의할 곳[歸趣],

생사와 열반은 같아서 둘이 아니니

그 성품은 무너지지 않고 조작도 없네.

더러움과 깨끗함은 여여하니 성품이 다르지 않고

오직 부처님 세존만이

중생에게 모두 여래장 있음을 환히 아시니

3보(三寶)가 이에 세간에 나타나시네.

일체 유정이 부처님 지혜에 들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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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품이 청정하여 차별 없는 까닭에

부처님과 중생의 성품 다르지 않고

범부의 견해가 성인과 차별 없도다.

일체 중생 본래 청정하여

3세(世) 여래는 한가지로 연설하시며

그 성품의 더러움과 깨끗함은 본래 둘이 없고

중생과 부처 차별 없도다.

허공은 시방에 두루하되 분별이 없고

마음의 성품이 평등함도 또한 그러해

비유하면 일체 중생계가

널리 허공에서 생멸을 받듯

모든 근(根)의 생멸도 또한 이 같아

무위(無爲)세계에 있음도 또한 그러하네.

비유하면 허공은 불이 태우지 못하듯이

생사에도 허물어지지 않는 무위의 성품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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