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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 수심결 - 백용성스님 번역
글쓴이 : 백련사 날짜 : 2011-08-11 (목) 11:59 조회 : 2416
보조수심결-백용성스님 번역.hwp (20.8K), Down : 97, 2011-08-11 11:59:53

보조수심결(普照修心訣)-(1)

백용성스님 번역

(1) 고를 들어 참됨을 보이다(擧苦示眞)

“삼계의 고뇌는 마치 불타는 집과 같거늘 어찌 그대로 머물러 긴 고통을 달게 받겠는가? 생사윤회를 면하려 하면 부처가 되기를 구하는 것 만한 것이 없다. 부처가 되기를 구하지만 부처는 바로 이 마음이다. 마음을 어찌 멀리서 찾으랴. 이 몸을 떠나지 않는다. 이 몸은 헛것으로 태어남과 죽음이 있지만, 참 마음은 허공과 같아서 끊어지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사람이 죽으면 백 마디의 뼈는 무너지고 흩어져서 불과 바람으로 돌아가거니와 한 물건은 영원히 신령하여 하늘과 땅을 덮는다’고 한 것이다.”

(2) 미혹한 마음으로 도를 닦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迷心修道終無利益)

“슬프다, 지금 사람들은 미혹해 온 지가 오래되므로, 자기의 마음이 참 부처인 줄 알지 못하고, 자기의 마음이 참 법임을 알지 못하여 법을 구하려 하면서도 멀리 성인들에게 미루고, 부처를 구하려 하면서도 제 마음을 관하지 못한다.

만일 마음 밖에 부처가 있다거나 성품 밖에 법이 있다고 하여 이 생각을 굳게 집착하여 불도를 구하고자 한다면 비록 오랜 세월을 지내도록 몸을 태우고 팔을 태우며, 뼈를 깨고 골수를 뽑으며 피를 내어 경전을 쓰며, 오래 앉아 눕지 않으며, 하루에 한 끼니만 먹으며, 나아가서는 대장경 전부를 다 읽고 갖가지 고행을 닦더라도 그것은 모래를 삶아 밥을 지으려는 것과 같아서 다만 수고만 더 끼칠 뿐이다.”

(3) 성인과 범부는 한 길로 단지 이 마음을 밝히라(聖凡一道只明一心)

“다만 자기 마음만 열면, 갠지스강 모래알처럼 많은 법문과 한량없는 묘한 이치를 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얻게 되리라.

그러므로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중생들을 두루 관찰하건대 모두가 여래의 지혜와 덕상(德相)을 갖추고 있다’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모든 중생의 갖가지 환상과 같은 변화들이 모두 여래의 원만한 깨달음과 묘한 마음에서 나왔다’ 하시니, 이것으로써 마음을 떠나서는 부처를 이룰 수가 없음을 알 것이다.

과거의 모든 부처님들도 다만 마음을 밝히신 사람이며, 현재의 성현들도 마음을 닦으신 사람이며, 미래의 학인들도 반드시 이 법에 의지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수도하는 사람들은 부디 밖에서 찾지 말라.

마음의 성품이 물들지 않아 본래 스스로 원만히 성취된 것이니, 다만 허망한 인연을 떠나기만 하면 곧 부처가 되는 것이다.”

(4) 중생들은 생활 속에 그 한 물건을 모른다(衆生日用不知這一物)

어떤 사람이 물었다: “만일 불성이 현재 이 몸에 있다면 이미 몸 안에 있으므로 범부를 떠나지 않았거늘, 어찌하여 나는 지금 불성을 보지 못하나이까? 다시 설명하셔서 모두를 깨닫게 해주십시오.”

이에 이렇게 답하였다: “그대의 몸 안에 있건만 그대가 보지 못할 뿐이로다. 그대가 하루 동안에 배고프고 목마르고 추위와 더위를 알며 성내거나 기뻐하는데, 바로 그것은 무슨 물건인가? 우리 몸은 땅, 물, 불, 바람 등 네 가지 인연이 모여 된 것으로서, 그 바탕은 완고하여 감정이 없거늘, 어찌 그것들이 보고 듣고 느끼고 알리요?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은 반드시 그대의 불성이니라. 그러므로 임제 스님이 말하기를 ‘땅, 물, 불, 바람(四大)은 법을 설하지도 못하고 설법을 들을 줄도 모르며, 허공도 법을 설하거나 들을 줄을 모른다. 다만 그대의 눈앞에 역력하고 분명하여 형용할 수 없는 것만이 비로소 설법도 하며 설법을 들을 줄도 안다’ 하시니 이른바 형용할 수 없는 것이란 부처님들의 있는 그대로의 진리이며, 그대의 본래 마음이니라.”

(5) 옛 성현들이 증거를 제시함(擧古明證)

또한 불성이 그대의 몸에 있거늘 어찌 밖에서 구하려 하는가? 만일 그대가 이 말을 믿지 않는다면 옛 성인이 도에 들어간 인연을 간략히 말하여 그대의 의심을 풀게 하리니 자세히 듣고 믿어야 한다.

옛날 이견왕(異見王)이 바라제 존자에게 물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존자가 대답하였다: “견성한 것이 부처입니다.”

왕이 다시 물었다: “스님께서는 견성을 하셨습니까?”

존자가 대답하였다: “나는 불성을 보았습니다.”

“성품이 어디에 있습니까?”

“성품은 작용하는 곳에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작용이기에 나는 보지 못합니까?”

“지금 현재에 작용하고 있지마는 왕 스스로가 보시지 못할 뿐입니다.”

왕은 또 물었다: “저에게도 그것이 있습니까?”

“왕께서 작용을 하신다면 아닌 것이 없건만, 왕께서 작용하시지 않으시면 그 본체도 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것이 작용할 때에는 몇 군데에 나타납니까?”

“그것은 여덟 가지가 있습니다.”

“그 여덟 가지로 나타나는 모습을 말씀해 주소서.”

존자가 대답하였다: “태 속에 있으면 몸이라 하고 세상에 있을 때는 사람이라 하며, 눈에서는 본다 하고, 귀에서는 듣는다 하고, 코에서는 맡는다 하고, 혀로는 말을 하고, 손으로는 물건을 잡고, 발로는 운동해 다니니 두루 나타나면 항하의 모래같이 많은 세계를 모두 싸고 거두어 모으면 한 티끌 속에도 차지 않나니, 아는 이는 이것을 불성이라 하고 모르는 이는 정신이다 혼이다 합니다.”

왕이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열리어 깨달았다.

또 어떤 사람이 귀종(歸宗) 스님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귀종 스님이 답하였다: “내가 지금 말해주고자 하나 그대가 믿지 않을까 걱정이다.”

“화상께서 하시는 옳은 말씀을 어찌 믿지 않겠습니까?”

이에 귀종 스님이 대답하였다: “그대가 바로 부처이니라.”

“어떻게 보존해 지키오리까?”

귀종 스님이 대답하였다: “눈병이 걸리면 허공의 꽃이 어지러이 떨어지느니라.”

이 말을 듣고 그는 단박에 깨달았다.

위에서 말한 바 옛날 성인들의 도에 들어간 인연이 명백하고도 간편하여 수고를 덜기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공안(公案)에 의하여 믿음과 이해가 생기면 그는 곧 옛 성인들과 손을 맞잡고 거닐게 되리라.

(6) 깨달음에 의하여 닦는 것이지 단번에 신통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依悟而修非一時頓現神通)

어떤 사람이 물었다: “스님이 말씀하시는 견성이 진정한 견성이라면 이는 바로 성인이리니, 응당 신통변화를 나타내어 남보다 다른 점이 있어야 하겠거늘, 어찌하여 요즘의 마음 닦는 사람들은 한 사람도 신통변화를 나타내는 이가 없습니까?”

이에 이렇게 답하였다: “그대는 망령된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 삿되고 바름을 분별하지 못하면 그는 미혹한 사람이다. 요즘 도를 배우는 사람들이 입으로는 진리를 말하나 마음으론 물러날 생각을 내고, 오히려 분수없는 잘못을 범하는 자들은 모두가 그대가 지금 의심하는 그것이다. 도를 배우면서 선후를 알지 못하고 이치를 말하되 근본과 끝을 모르는 자를 삿된 소견이라고 하고, 도를 닦는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스스로를 그르칠 뿐 아니라 남까지 그르치나니 조심할 일이 아니겠는가?”

“대개 도에 들어가는 문은 많으나, 요약해 말하면 돈오(頓悟)와 점수(漸修)의 두 문에 지나지 않는다.

비록 돈오와 돈수(頓修)는 최상의 근기를 가진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문이라 하나, 과거를 미루어 보면 이미 여러 생 동안 깨달음에 의해 닦아 차츰 익혀오다가 금생에 이르러 듣는 즉시에 깨달아 한꺼번에 마친 것이니, 실로 말하면 그것도 먼저 깨닫고 뒤에 닦는 근기이다.

그렇다면 이 돈오와 점수의 두 문은 모든 성인의 길로, 과거의 모든 성인들은 먼저 깨닫고 그 후에 닦으셨으며 그 닦음에 의해 증득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른바 신통변화는 깨달음에 의해 닦아 차츰 익히면 나타나는 것이요, 깨닫는 즉시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니라.”

“경에 말하기를 ‘이치로는 금방 깨닫는지라 깨달음을 따라 동시에 사라지거니와 현실로는 단박 사라지는 것이 아니므로 점차로 사라진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규봉(圭峰) 스님도 먼저 깨닫고 뒤에 닦는 이치를 깊이 밝혀서 말하기를 ‘얼어붙은 연못이 순전히 물임을 알지마는 햇빛을 받아야 녹고, 범부가 곧 부처임을 깨달았지만 법의 힘을 빌어 익히고 닦아야 한다. 얼음이 녹으면 물이 풍족히 흘러서 적시고 씻는 공덕을 나타내고, 망상이 사라지면 마음이 신령하게 통하여 신통광명의 작용을 나타낸다’고 하였다. 이것으로 보건대 현실적인 신통과 변화는 하루나 이틀의 공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차츰차츰 익히고 닦아서 나타나는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물며 현실적인 신통이란 깨달은 사람의 경지에서는 오히려 요망하고 괴이한 일이며 또한 성인에게는 지엽적인 말단의 일이라, 흑 그것을 나타낼지라도 쓸모 없이 여기거늘 요즈음의 어리석은 무리들은 함부로 말하기를 ‘한 생각 깨달으면 곧 한량없는 묘한 작용과 신통변화를 나타낸다’고 한다. 만일 이런 견해를 가지면 이것이야말로 앞뒤를 알지 못하며 근본과 끝을 분간치 못하는 것이니, 마치 모난 나무를 가져다 둥근 구멍을 막으려는 것과 같으니 어찌 큰 잘못이 아니겠는가?”

(7) 문득 깨달은 후 차츰 닦는 법을 밝힘(先辨頓悟漸修)

어떤 사람이 물었다: “깨달음이 단박의 깨달음(頓悟)이라면 어찌 차츰 닦을(漸修) 필요가 있으며, 닦음이 점차의 닦음이라면 왜 단박 깨달음이라 하는가? 돈오와 점수의 두 뜻을 다시 설명하여 남은 의심을 끊게 하소서.”

이에 이렇게 답하였다: “단박의 깨달음이란 범부가 미혹했을 때에 사대를 몸이라 하고 망상을 마음이라 하여, 자기의 성품이 참 법신(法身)임을 모르고 자신의 신령한 알음알이가 참 부처인 줄 알지 못하여,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기에 끝없이 헤매다가, 갑자기 선지식의 지시를 받고 바른 길에 들어가, 한 생각에 빛을 돌이켜 자신의 본성을 보면, 번뇌 없는 지혜의 성품이 본래부터 스스로 갖추어져 있어, 모든 부처님과 털끝만큼도 다르지 않음을 아나니, 그 때문에 단박의 깨달음이라 한다.”

“또 점차로 닦는다 함은 비록 근본 성품이 부처와 다름없는 줄 깨달았으나 끝없는 옛날부터 익힌 습기(習氣)를 갑자기 버리기 어려운 까닭에 깨달음에 의해 닦아 차츰 익혀 공(空)이 이루어져서 성인이 될 수 있는 요인을 길러서 오랜 동안을 지나야 성인이 되므로 점차로 닦는다 한다. 마치 아기가 처음 태어났을 때 모든 감관이 남과 다를 것이 없지마는 그 힘이 아직 충실하지 못하니, 제법 세월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사람 구실을 하는 것과 같으니라.”

(8) 깨닫는 방편을 구하면 더욱 어긋남(求悟方便轉轉蹉過)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방편을 지어야 한 생각을 돌이켜서 문득 스스로의 성품을 깨달으리까?”

이에 이렇게 답하였다: “다만 그대 자신의 마음인데, 다시 무슨 방편을 쓰겠는가? 만일 방편을 써서 알려고 한다면 마치 어떤 사람이 자기의 눈이 보이지 않는다 하여 눈이 없다 하면서 다시 보기를 바라는 것과 같도다. 이미 자신의 눈이거늘 어떻게 다시 보리요? 만일 잃지 않았음을 알면 그것이 곧 눈을 보는 것이다. 다시 보려는 마음이 없는데 어찌 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있겠는가? 자기의 신령한 알음알이도 그러하여서 이미 제 마음인데 어찌 다시 알려 하는가? 만일 알기를 바란다면 끝내 알지 못하리니, 오직 알 수 없는 것임을 알면, 그것이 곧 성품을 보는 것이니라.”

(9) 비고 고요하고 신령한 앎을 보임(直示空寂靈知)

어떤 이가 물었다: “상근기를 가진 사람은 들으면 즉시에 알겠지만, 중․하근기를 가진 사람은 의혹이 없지 않으니 다시 방편을 설하여 미혹한 이로 하여금 깨치어 들어가게 하소서.”

이에 이렇게 답하였다: “도는 알고 모르는 데에 속하지 않은 것이니, 그대는 미혹을 가지고 깨닫기를 바라는 마음을 버리고 나의 말을 들어라. 모든 법은 꿈과 같고 허깨비와 같다. 그러므로 망령된 생각은 본래 고요하고, 티끌의 대상은 본래 빈 것이다.”

“모든 법이 다 공한 곳에 신령한 앎이 어둡지 않으니, 이 비고 고요하여 신령하게 아는 마음이 바로 그대의 본래의 면목이며, 또한 삼세의 부처님들과 역대의 조사들과 천하의 선지식이 비밀히 전하는 법인(法印)이니라. 그러므로 이 마음을 깨달으면 그야말로 단계를 밟지 않고 지름길로 부처님의 경지에 올라 걸음마다 삼계를 뛰어넘고 집에 돌아가 단박 의심을 끊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과 천상의 스승이 되어 자비와 지혜가 서로 도와, 자기와 남의 이익을 모두 갖추어 인간과 천상의 공양을 받되, 하루에 만냥의 황금을 소비할 것이다. 그대가 이렇게 하기만 하면 참으로 대장부로서 일생의 중요한 일을 끝냈다 하리라.”

(10) 인간의 마음이 곧 부처님을 보임(直指人心本來是佛)

어떤 이가 물었다: “내 분수에 의하건대 어느 것이 비고 고요하며 신령스러이 아는 마음입니까?”

이에 이렇게 답하였다: “그대가 지금 내게 묻는 그것이 바로 그대의 비고 고요하며 신령스러이 아는 마음이거늘 어찌 돌이켜 보지 않고 아직도 밖에서 찾는가? 나는 지금 그대의 분수에 의거하여 본래 마음을 바로 가리켜 그대로 하여금 깨치게 하거니 그대는 모름지기 마음을 깨끗이 하여 내 말을 들어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두 시간 동안에 보기도 하고 듣기도 하며, 웃기도 하고 이야기도 하며, 성내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며, 옳다고 주장도 하고 그르다고 헐뜯기도 하면서 갖가지로 활동을 하나니, 이것은 무엇이 그렇게 하게 하는지 말해보라!”

“만일 육신이 운전한다면, 무엇 때문에 어떤 사람이 갑자기 죽어 몸은 전혀 썩지 않았으되 눈은 보지 못하고, 귀는 듣지 못하며, 코는 냄새를 맡지 못하며, 혀는 말을 하지 못하며, 몸은 움직이지 못하고 손은 붙잡지 못하며, 발은 걸어가지 못하는가?

이것으로 보건대 듣거나 동작하는 것은, 반드시 너의 본래의 마음이요 너의 육신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하물며 이 육신을 이룬 사대는 그 성품이 공하여, 마치 거울 속의 형상과 같고 물 속의 달과 같은데, 어찌 능히 항상 분명히 알면서 환하고 어둡지 않게 항하의 모래 같이 많은 묘한 작용을 다 통하리요? 그러므로 말하기를 ‘신통과 묘용이 곧 물긷고 나무 나르는 것이다’라고 하노라.”

(12) 수행을 권함(結勸)

“만일 그대가 믿기만 한다면 의심을 활짝 쉬게 되리니, 대장부의 뜻을 내어 진정한 견해를 일으키어 친히 그 맛을 보고 스스로 긍정할 경지에 이르면 그것이 마음을 닦는 사람이 알아 깨치는 곳이요, 따로 계급과 차례가 없기 때문에 ‘활짝 깨달음(頓悟)’이라 하며, 또 말하기를 ‘믿음의 인행(因) 가운데서 모든 불과(佛果)의 공덕이 털끝만큼도 다르지 않음을 깊이 알아야 비로소 믿음을 이룬다’고 하셨느니라.”

(13) 깨달은 후 차츰 닦는 법을 보임(重示悟後漸修)

어떤 이가 물었다: “이 이치를 깨치면 다시 계급이 없을진대, 무엇 때문에 깨친 뒤에 다시 닦아 차츰 익히고 차츰 이룰 것이 있겠는가?”

이에 이렇게 답하였다: “깨친 뒤에 차츰 닦는다는 이치는 이미 앞에서 충분히 설명하였는데, 그래도 의심을 풀지 못하니 거듭 설명하리라. 그대는 마음을 깨끗이 하여 자세히 들어라.

범부는 끝없는 옛적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다섯 길(지옥, 아귀, 축생, 인간, 천상)에 헤매면서 나고 죽되, ‘나’ 라는 관념에 굳이 집착하여 오랫동안 망상과 뒤바뀜과 종자로 훈습된 무명과 더불어 오랫동안 성품을 이루었다. 그러므로 금생에 이르러 비록 제 성품이 본래 비고 고요하여 부처와 다름이 없음을 단박 깨쳤더라도 그 오랜 습기를 갑자기 버리기 어려우므로, 역경과 순경을 당하면 성내고 기뻐하며 옳다 하고 그르다 하는 생각이 불길처럼 일어났다 사라졌다 하여, 밖에 대한 번뇌가 예전과 다름이 없다. 그러므로 만일 지혜로써 공부를 더하고 힘을 쓰지 않으면, 어떻게 무명을 다스려 아주 쉬는 경지에 이를 수 있겠는가?”

“전하는 말에 이르기를 ‘단박 깨치면 부처와 같지마는, 많은 생의 습기가 깊구나. 바람은 멈췄으나 물결은 아직 출렁이고, 이치는 나타났으나 망상이 오히려 침노한다’고 한 말과 같다.

또 종고(宗杲) 선사도 ‘간혹 영리한 무리들은 흔히 많은 힘을 들이지 않고 이 이치를 깨치고는 곧 아주 쉽다는 생각을 내어 더 닦으려 하지 않다가, 오랜 세월을 지나며 여전히 흘러 다니면서 생사를 면하지 못한다’ 하였으니 어찌 잠시 깨달은 바가 있다 하여 다시 닦는 일을 던져 버리리요?

그러므로 깨달은 뒤에 오래오래 밝히고 살펴서 망념이 일어나거든 결코 따르지 말고, 덜고 또 덜어서 더 할 것이 없는 데 이르러야 비로소 완전하리니, 천하의 선지식이 깨친 뒤에 수행을 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비록 나중에 닦는다고는 하나, 망념은 본래 공하고 심성(心性)은 본래 깨끗한 것임을 먼저 깨쳤으므로 악을 끊어도 끊을 것이 없고 선을 닦아도 닦을 것이 없나니 이것이 참으로 닦고 참으로 끊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비록 갖가지 수행을 골고루 닦는다 하여도 오직 무념(無念)으로 근본을 삼는다’ 하였다.”

“규봉 스님도 먼저 깨치고 뒤에 닦는 이치를 통틀어 결론하기를 ‘이 성품은 원래 번뇌가 없으며, 번뇌가 없는 지혜의 성품이 본래 갖추어져 부처와 다름이 없음을 단박 깨치고 그것에 의해 닦으면 그것을 최상승(最上乘)의 선이라 하고 또 여래의 청정한 선이라 한다. 만일 생각 생각에 닦아 익히면 저절로 차츰 백천 삼매를 얻을 것이니, 달마 스님의 문하에서 계속해 서로 전해오는 것이 바로 이 선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돈오와 점수의 이치는 마치 수레의 두 바퀴와 같아서 하나가 없어도 안 되는 것이다.

어떤 이는 선악의 성품이 공한 것임을 알지 못하고 굳게 앉아 움직이지 않으면서, 몸과 마음을 눌러 억제하기를 마치 돌로 풀을 누르듯 하는 것으로써 마음을 닦는다 한다. 그러나 그것은 큰 미혹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성문(聲聞)들은 마음 마음에 미혹을 끊지마는 그 끊으려는 마음이 바로 도적이다’고 하였다. 다만 살생과 도둑질, 음행, 거짓말 등이 성품으로부터 일어나는 줄로 자세히 관찰하기만 하면 일어나도 일어남이 없는 것이어서 그 자리가 곧 고요한 것이니, ‘어찌 다시 끊을 필요가 있는가’ 하였다.

그러므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깨달음이 더딜까 두려워하라’ 하였으며, 또 말하기를 ‘망념이 일어나면 곧 깨달아라. 깨달으면 곧 없어지리라’ 하였다. 그러므로 깨달은 사람의 처지에서는 비록 밖에 대한 번뇌(客塵煩惱)가 있더라도 그것은 모두가 최상의 맛(醍醐)이 되느니라.

다만 미혹이 근본이 없는 줄 알면 허공의 꽃과 같은 허망한 삼계는 바람이 연기를 걷음과 같고, 허깨비인 육진(六塵)은 끓는 물에 얼음 녹듯 하리라.”

“만일 이와 같이 생각마다 닦아 익히어 살피기를 잊지 않고 선정과 지혜를 고루 가지면, 사랑하거나 미워하는 마음이 저절로 없어지고 자비와 지혜가 저절로 밝아지며, 죄없이 저절로 끊어지고 공덕이 저절로 늘어나 번뇌가 다할 때에 생사가 곧 끊어질 것이다.

만일 미세한 번뇌가 영원히 끊어지고 원각의 큰 지혜가 환하게 홀로 있으면 곧 천백억의 화신(化身)을 나타내어 시방세계 안에서 중생들의 정성에 감동되는 대로 응해 주리니, 그것은 마치 달이 하늘에 나타나면 그 그림자가 온갖 물에 두루 비치는 것과 같이 응용이 무궁하고 인연이 있는 중생을 제도하면서 즐거워 근심이 없으므로 크게 깨달은 세존이라 하느니라.”

출처 : 범어사 홈페이지 경전공부.(누락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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