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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설보살십주경(佛說菩薩十住經)
글쓴이 : 백련사 날짜 : 2011-07-30 (토) 09:24 조회 : 2643

불설보살십주경(佛說菩薩十住經)

동진(東晉) 기다밀(祇多蜜) 한역

번역

부처님께서 보살계(菩薩戒)의 12시법(時法)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마치시자,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보살이 어떠한 공덕으로 10주(住)를 성취하게 됩니까? 원컨대 천중천(天中天)께서는 이를 분별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장하고 장하구나. 문수사리보살마하살이여, 근심이 아무리 많을지라도 내가 이를 편안케 해주겠다. 내가 지금 너에게 그 법요(法要)를 설명할 것이니, 잘 새겨듣고서 정성껏 수지하여라.”

이에 문수사리보살이 가르침을 받들겠다고 아뢰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열 가지 법에 머무르는 보살의 공덕에는 각각 높고 낮은 차례가 있느니라.”

다시 문수사리보살이 여쭈었다.

“어떠한 것이 열 가지입니까?”

첫 번째 머무름은 파람질도파보살법(波藍質兜波菩薩法)에 머무는 것이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고개를 들어 부처님의 비할 데 없이 단정한 존안을 뵙게 되면 싫은 마음이 나지 않으니, 감히 맞서려는 이가 없고, 그 존귀함을 넘어서려는 이가 없고, 그 가르침을 거역하려는 이가 없다. 부처님의 위신(威神)을 친견하는 위의법(威儀法)이 이와 같아 서서히 불도(佛道)에 들어오면 이를 전향시켜 교화하시는 것이니, 모두 그 뜻에 따라 가르쳐서 해탈케 하시는 것도 그 고통에 매어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를 가엾게 여기시기 때문이다. 점점 부처님의 말씀을 깨닫고서 신심을 내어 뜻을 새롭게 세워서 불도를 배워 부처님 지혜의 열 가지 난처(難處)를 모두 깨닫고자 하느니라.

어떠한 것이 열 가지 난처인가? 부처님의 열 가지 힘[十種力]이 바로 이것이다. 첫 번째는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 기호에 따라 가르침을 내리는 것이고, 세 번째는 태어나는 장소마다 모두 존귀한 것이고, 네 번째는 천상천하에 능히 따를 자가 없는 것이고, 다섯 번째는 부처님의 지혜를 모두 체득하는 것이고, 여섯 번째는 세세생생 무앙수(無央數)의 부처님을 친견하는 것이고, 일곱 번째는 부처님의 경전을 모두 섭렵하는 것이고, 여덟 번째는 모든 생사를 건너가는 것이고, 아홉 번째는 해탈이 멀지 않은 것이고, 열 번째는 시방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해탈시키는 것이다.”

두 번째 머무름은 어떠한 것인가? 아사부보살법(阿闍浮菩薩法)에 머무는 것이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열 가지 뜻으로 시방 세계 사람들을 생각하는[念] 것이다. 어떠한 것이 열 가지 뜻인가? 첫 번째는 세간의 선(善)을 모두 생각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고, 세 번째는 언제나 마음을 편안케 하는 것이고, 네 번째는 그 마음을 부드럽게 하는 것이고, 다섯 번째는 모두 평등하게 사랑하는 것이고, 여섯 번째는 마음속으로 다른 이에 대한 보시만을 생각하는 것이고, 일곱 번째는 마음을 언제나 일정하게 보호[護]하는 것이고, 여덟 번째는 남과 나는 차별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아홉 번째는 마음속으로 시방 세계의 사람을 생각하되 스승을 보는 것처럼 보는 것이고, 열 번째는 마음으로 시방 세계 사람들을 생각하되 부처님을 보듯이 보는 것이다.

아사부보살법은 경전을 충분히 배워야 하며, 경전을 충분히 배우고 나면 마땅히 외진 곳에 머물러야 한다. 외진 곳에 머무르고 나면 언제나 선지식을 섬기되 선지식의 곁에서 수발들면서 때에 따라 정성스럽게 모셔야 한다. 그 모시는 일이 이미 정성스러워졌다면 마땅히 남에게 혜(慧)를 배우되 전수받은 법은 모두 수지해서 잊지 말아야 한다. 이미 잊지 않았다면 마땅히 편안한 곳에 머물러야 한다. 왜냐하면 시방 세계 사람들을 이익되게 하려는 까닭이다.”

세 번째 머무름은 어떠한 것인가? 유아사보살법(喩阿闍菩薩法)에 머무는 것이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제법(諸法)에 들어가 열 가지 일을 지용(持用)하는 것이니, 어떠한 것이 열 가지 일인가? 첫 번째 존재하는 모든 것은 무상(無常)하다는 것이고, 두 번째 존재하는 모든 것은 고통에 휩싸여 있다는 것이고, 세 번째 존재하는 모든 것은 허공(虛空)이라는 것이고, 네 번째 존재하는 모든 것은 아소(我所)가 아니라는 것이고, 다섯 번째 존재하는 모든 것은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고, 여섯 번째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이익이 없다는 것이고, 일곱 번째 존재하는 모든 것은 적정(寂靜:止)하지 않다는 것이고, 여덟 번째 존재하는 모든 것은 처소가 없다는 것이고, 아홉 번째 존재하는 모든 것은 고착(固着)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열 번째 일체는 무소유(無所有)라는 것이다. 모든 법이 다 한 가지 법에 들어가고, 다시 한 가지 법이 모든 법에 들어가는 이러한 것이 유아사보살의 교법이다.”

네 번째 머무름은 어떠한 것인가? 사마기보살법(闍摩期菩薩法)에 머무는 것이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언제나 부처님께서 계신 처소에 태어나기를 발원하는 것에는 열 가지 일이 있다. 첫 번째는 다시 퇴실(退失:還)하지 않는 것이고, 두 번째는 부처님을 깊이 사량(思量)하는 것이고, 세 번째는 법을 깊이 사량하는 것이고, 네 번째는 스님들을 생각하면서 시방 세계 사람들을 자비심으로 살피는 것이고, 다섯 번째는 만물은 모두 무소유라고 사유하는 것이고, 여섯 번째는 시방의 불국토[佛刹]가 모두 허공이라는 것이고, 일곱 번째는 숙명(宿命)에서 이루어진 것은 무소유임을 깨닫는 것이고, 여덟 번째는 모든 존재하는 것은 허깨비[幻]와 같아서 모두 허공이라는 것이고, 아홉 번째는 여러 가지 고통받는 것도 무소유라는 것이고, 열 번째는 니원(泥洹)도 허공이며 또한 무소유라는 것이다.

이것을 지용하는 까닭에 불법 가운데 태어나는 것이니, 이러한 것이 사마기보살의 교법이다.”

다섯 번째 머무름은 어떠한 것인가? 파유삼반보살법(波兪三般菩薩法)에 머무는 것이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공덕을 지어 시방 세계 사람들을 제도하는 것에는 열 가지 일이 있다. 첫 번째는 언제나 시방 세계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언제나 시방 세계 사람들이 착해지도록 생각하는 것이고, 세 번째는 언제나 시방 세계 사람들이 편안하도록 생각하는 것이고, 네 번째는 언제나 시방 세계 사람들을 아끼는 것이고, 다섯 번째는 언제나 시방 세계 사람들을 가여워하는 것이고, 여섯 번째는 언제나 시방 세계 사람들이 악행을 짓지 않도록 생각하는 것이고, 일곱 번째는 언제나 시방 세계 사람들을 보살도(菩薩道)에 도달하도록 인도하는 것이고, 여덟 번째는 언제나 시방 세계 사람들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고, 아홉 번째는 언제나 시방 세계 사람들을 제도하여 해탈시키는 것이고, 열 번째는 언제나 시방 세계 사람들을 반니원(般泥洹)에 들게 하는 것이니, 이러한 것이 파유삼반보살의 교법이다.”

여섯 번째 머무름은 어떠한 것인가? 아기삼반보살법(阿耆三般菩薩法)에 머무는 것이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깊은 자비심을 내는 것에는 열 가지 법이 있으니, 첫 번째는 어떤 사람이 부처님에 대해 좋거나 나쁘다고 말하더라도 그 마음이 변치 않는 것이고, 두 번째는 법에 대해 좋거나 나쁘다고 말하더라도 그 마음이 변치 않는 것이고, 세 번째는 보살에 대해 좋거나 나쁘다고 말하더라도 그 마음이 변치 않는 것이고, 네 번째는 보살도를 구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선이나 악으로 유인하더라도 그 마음이 변치 않는 것이고, 다섯 번째는 어떤 사람이 시방 세계 사람들이 많거나 적다고 말하더라도 그 마음이 변치 않는 것이고, 여섯 번째는 시방 세계 사람들이 서로를 선이나 악으로 유인하는 것을 보더라도 그 마음이 변치 않는 것이고, 일곱 번째는 이러한 중에서 어떤 사람이 시방 세계 사람이 해탈하기가 쉽거나 어렵다고 말하더라도 그 마음이 변치 않는 것이고, 여덟 번째는 만약 어떤 사람이 법이 많거나 적다고 말하더라도 그 마음이 변치 않는 것이고, 아홉 번째는 어떤 사람이 법이 무너진다거나 무너지지 않는다고 말하더라도 그 마음이 변치 않는 것이고, 열 번째는 법이 있거나 없다고 말하더라도 그 마음이 변치 않는 것이니, 이러한 것이 아기삼반보살의 교법이다.”

일곱 번째 머무름은 어떠한 것인가? 아유월치보살법(阿惟越致菩薩法)에 머무는 것이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이 견고하게 머물러 동요하지 않는 것에는 열 가지 일이 있으니, 첫 번째가 부처님이 계시거나 계시지 않거나 그 마음이 동요되어 퇴실(退失:還)하지 않는 것이고, 두 번째는 법이 있거나 없거나 그 마음이 동요되어 퇴실하지 않는 것이고, 세 번째는 보살이 있거나 없거나 그 마음이 동요되어 퇴실하지 않는 것이고, 네 번째는 보살도를 구하는 이가 있거나 없거나 그 마음이 동요되어 퇴실하지 않는 것이고, 다섯 번째는 이 같은 법의 지님을 얻거나 얻지 못하거나 그 마음이 동요되어 퇴실하지 않는 것이고, 여섯 번째는 모든 과거의 부처님이 계시거나 계시지 않거나 그 마음이 동요되어 퇴실하지 않는 것이고, 일곱 번째는 모든 미래의 부처님이 계시거나 계시지 않거나 그 마음이 동요되어 퇴실하지 않는 것이고, 여덟 번째는 현재의 부처님이 계시거나 계시지 않거나 그 마음이 동요되어 퇴실하지 않는 것이고, 아홉 번째는 부처님의 지혜가 다하거나 다하지 않거나 그 마음이 동요되어 퇴실하지 않는 것이고, 열 번째는 미래ㆍ과거ㆍ현재의 세간사(世間事)에서 약간이나 더 나아가 한 가지라도 그 마음이 동요되어 퇴실하지 않는 것이니, 이러한 것이 아유월치보살의 교법이다.”

여덟 번째 머무름은 어떠한 것인가? 구마라부동남보살법(鳩滅浮童男菩薩法)에 머무는 것이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열 가지 일에 머무는 것이니, 첫 번째는 몸[身]의 소행(所行)1)ㆍ입[口]의 소언(所言)ㆍ마음[心]의 소념(所念)이 모두 정결한 것이고, 두 번째는 좋고 나쁜 것을 가리지 않는 것이고, 세 번째는 한 생각을 돌이켜 욕(欲)이 어떠한 곳에서 생기는지 생각하는 것이고, 네 번째는 시방 세계의 사람들 가운데 누가 자비심을 내는지 아는 것이고, 다섯 번째는 시방 세계 사람들 가운데 누가 신심을 내는지 모두 아는 것이고, 여섯 번째는 시방 세계 사람들의 약간의 종(種)일지라도 모두 아는 것이고, 일곱 번째는 시방 세계 사람들이 짓는 일을 모두 아는 것이고, 여덟 번째는 시방의 모든 불국토[佛刹土]의 이루어지고 무너짐[成敗]을 모두 아는 것이고, 아홉 번째는 신족념(神足念)을 성취해서 가야 할 곳으로 날아가는 것이고, 열 번째는 제법(諸法)이 모두 정결한 것이니, 이러한 것이 구마라부동남보살의 교법이다.”

아홉 번째 머무름은 어떠한 것인가? 유라사보살법(兪羅闍菩薩法)에 머무는 것이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열 가지 일을 지용해서 성취하는 것이니, 첫 번째는 시방 세계 사람들의 출생을 모두 아는 것이고, 두 번째는 시방 세계 사람들에게 얽힌 은혜를 모두 아는 것이고, 세 번째는 시방 세계 사람들이 생각하는 본말(本末)이 어디서 생기는지 모두 아는 것이고, 네 번째는 시방 세계 사람들이 지은 숙명과 그 취향(趣向)2)을 모두 아는 것이고, 다섯 번째는 시방 세계 사람들의 약간의 종(種)의 제법(諸法)이라도 모두 아는 것이고, 여섯 번째는 시방 세계 사람들이 생각하는 약간의 종의 변화라도 모두 아는 것이고, 일곱 번째는 모든 불국토의 선악과 무너짐[壞敗]을 모두 아는 것이고, 여덟 번째는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무앙수(無央數)의 세간 일을 모두 아는 것이고, 아홉 번째는 시방 세계 사람들의 평등과 불평등을 모두 아는 것이고, 열 번째는 시방 세계 사람들을 가르치되 허공법(虛空法)을 설하여 모두 아는 것이니, 이러한 것이 유라사보살의 교법이다.”

열 번째 머무름은 어떠한 것인가? 아유안보살법(阿惟顔菩薩法)에 머무는 것이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이 열 가지 지혜에 들어가 분별해서 아는 열 가지 일이 있으니, 첫 번째는 어떠한 인(因)이 시방의 모든 불국토를 감득하는지 분별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무앙수 불국토의 일을 밝힐 수 있는지 분별하는 것이고, 세 번째는 내가 날마다 무앙수 불국토의 보살로 있을지 분별하는 것이고, 네 번째는 내가 날마다 무앙수 불국토의 인민을 해탈시킬 수 있는지 분별하는 것이고, 다섯 번째는 내가 무앙수 불국토의 중생을 편안케 할 수 있는지 분별하는 것이고, 여섯 번째는 시방 세계 사람들이 내 음성을 듣고서 환희하여 해탈을 얻을 수 있는지 분별하는 것이고, 일곱 번째는 시방 세계의 인민들로 하여금 불도(佛道)를 얻어 모두 출가시켜 사문을 만들 수 있는지 분별하는 것이고, 여덟 번째는 시방 세계 사람들이 생각하는 선과 악을 내가 모두 알 수 있는지 분별하는 것이고, 아홉 번째는 시방 세계 사람들을 내가 모두 불도로 거두어 보살의 마음을 내게 할 수 있는지 분별하는 것이고, 열 번째는 시방 세계 사람들을 내가 모두 해탈케 할 수 있는지 분별하는 것이다. 이것은 유라사보살(兪羅闍菩薩)3)이 아니라면, 저 아유안(阿惟顔)보살이 몸의 소행(所行)ㆍ입의 소언(所言)ㆍ마음의 소념(所念)에서 소작(所作)하는 것을 알거나 깨닫지도 못하는 것이니, 어찌 아유안보살의 일을 알거나 깨달을 수가 있겠는가? 신족념(神足念)을 알지 못하면 그 비행(飛行)조차도 깨달을 수 없는 것이니, 이처럼 아유안보살이 미래ㆍ과거ㆍ현재에 짓는 일을 알지 못하는 것이 아유안보살의 교법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때에, 화륜조(和輪調)보살 등의 7만 2천 인(人)이 모두 뛸 듯이 기뻐하여 제각기 광명을 나타내어 서로를 비추었으니, 각자 옷깃을 바로 여미고 머리를 땅에 조아리고 부처님께 예배드리고 나서 물러갔다.

주)----------------------------------------------------------------

1) 소(所)는 본법(本法)이 미래법의 과위(果位)에 처해서 그 행하는 바를 결정한다는 뜻.

2) 여기서 취향(趣向)은 업풍에 따라 5도(道) 6취(趣)로 그 갈 곳이 결정된다는 뜻이다.

3) 원문의 아(阿)는 비(非)에 해당한다. 원문을 범어로 고쳐보면, yadutnullso bodhisattvo이다. 한역된 경문은 yaduta an\\ullso의 anullso에서 ullso의 부정접두사 an을 아(阿)로 처리한 것으로 여기서는 “이것은 유라사보살이 아니라면”으로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특수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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