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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설대반니원경(佛說大般泥洹經) 해제 및 제 1~6권
글쓴이 : 백련사 날짜 : 2011-07-27 (수) 20:01 조회 : 2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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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설대반니원경(佛說大般泥洹經) 해제 및 제 1~6권

불설대반니원경(佛說大般泥洹經) 해제

이 경전은 6권으로 되어 있으며, 5세기 초(初)에 중국의 학승 법현(法顯)이 번역한 것이다. 법현은 평양의 무양(武陽) 사람이다. 속성은 습(襲)이며, 어려서 승려가 되어 20세에 비구계를 받았다. 연구가 진취해 가자 경(經)과 율(律)이 구비되지 못한 점을 느끼고, 399년(동진 융안 3년)에 도반 혜경ㆍ도정ㆍ혜달ㆍ혜외 등과 함께 장안을 떠나 서역의 여러 나라를 거쳐 북인도에 갔다. 불루사(弗樓沙)에서 동행들과 작별하고 홀로 펀잡 지방을 지나 항하 유역의 교세(敎勢)를 시찰하고, 불적(佛跡)ㆍ영지(靈地)를 순례하면서 경과 율을 번역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마갈타국에 3년간 머물면서 『마하승기율』ㆍ유부율ㆍ『니원경』ㆍ『잡아비담심론』 등을 연구하고, 항하 어귀에 있는 다라리뎨 나라에서 2년 동안 수학하고, 스리랑카[錫蘭島]에 건너가서 2년 동안 『오분율』ㆍ『장아함경』ㆍ『잡아함경』 등을 얻어 가지고 상선(商船)을 타고 돌아오다가 폭풍을 만나 조와도(爪哇島)에 표류되고, 뒤에 갖은 곤란을 겪으면서 413년(동진 의희 9년)에 청주(靑洲)에 돌아왔다.

전후 15년 동안 서역과 인도를 두루 다니며 많은 경과 율을 가져왔다. 그뒤부터 서역 지방으로 여행하는 이가 많게 되었으니, 경전을 전역(傳譯)하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귀국한 뒤에는 도량사(道場寺)에서 가지고 온 『마하승기율』ㆍ『방등경』ㆍ『니원경』 등 많은 경과 율을 번역하였고, 뒤에 형주의 행사(幸寺)에서 82세의 나이로 입적하였다. 파미르 고원을 넘은 최고의 중국 스님이기도 하며, 저서는 『천축행기』 1권이 있다. 이것을 『법현전(法顯傳)』 또는 『불국기(佛國記)』라고 한다.

이 경의 이름은 부처님께서 니원[涅槃]에 대하여 설하신 경이라는 뜻이다. 이 경에서는 부처님과 열반 및 불성(佛性)에 대한 교리를 설하고 있다. 이 경은 여러 대승 열반경(涅槃經)들 중의 하나로서 418년에 법현이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의 제9권을 번역하였는데, 이것을 이름하여 『대반니원경(大般泥洹經)』이라 한다. 이 경전은 421년에 북량(北凉)의 담무참(曇無讖)이 번역한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40권)의 제1권~제10권까지의 내용을 포괄하고 있다. 이 경은 18개의 품으로 되어 있다.

[제1권]

이 권에는 3개의 품이 있다.

서품(序品):서품이란 머리글이라는 뜻이다. 이 품에서는 부처님이 이 경을 설하게 된 계기와 배경을 서술하고 있다. 부처님이 8백억 명의 비구와 함께 구이성 희련강가의 견고나무 숲에 계셨을 때, 2월 15일 부처님의 입멸의 날이 다가오자 사람들은 부처님의 마지막 설법을 듣기 위하여 앞 다투어 견고나무 숲으로 밀려들었다. 그리하여 이 숲 속에는 비구ㆍ비구니와 보살과 신자들로부터 여러 나라의 왕과 대신들, 하늘 귀신들까지 모이게 되었다. 그들은 저마다 일곱 가지 보물로 장식한 침상과 장막, 금실로 수놓은 깃발을 가지고 와서 부처님의 자리를 마련하였으며, 코끼리와 말에 음식과 보물을 싣고 와서 부처님께 바치려고 하였다. 그러나 부처님이 어느 하나도 받아 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몹시 서운해 하며 한쪽으로 물러나 묵묵히 앉아 있었다고 한다.

대신보살품(大身菩薩品):대신보살은 동쪽 의락미음세계에 산다는 허공등부처님의 제자이다. 이 품에서는 대신보살을 비롯한 시방세계의 수많은 보살들이 석가모니부처님을 찾아온 데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석가모니부처님이 사는 이 세상으로부터 동쪽으로 무수한 세계를 지나면 의락미음세계가 있다고 한다. 그곳 허공등부처님이 음식과 침상, 장막 등의 물건을 부처님께 전하고 한쪽으로 물러나 앉자 연이어 시방의 무수한 세계로부터 보살들이 날아왔다.

이곳 견고나무 숲의 넓지 않은 자리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는지 그 모든 사람들이 티끌만하게 작아진다 하더라도 다 앉지 못할 형편이었으나 부처님의 신기한 조화는 그들을 아무런 불편 없이 편히 앉아 있게 하였다.

장자순타품(長者純陀品):장자 순타란 부자 순타라는 뜻이다. 이 품에서는 부처님이 순타의 음식을 받아 주기로 약속하고, 그에게 세상의 모든 것이 허무하다는 내용을 설한 데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모인 사람들 가운데 순타라는 한 부자가 있었다. 그가 부처님의 임종을 얼마나 슬퍼하였던지 온몸에서 피가 배어나고 눈에서는 눈물이 비오듯 하였다. 이 사람이 같이 온 5백여 명의 부자들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들이 가져온 보잘것없는 음식이나마 받아 주실 것과 번뇌에 시달리는 자기들을 위하여 설하여 줄 것을 간청하였다.

지금까지 자기들의 모든 공양을 거절하던 부처님이 순타의 청을 받아들이자 모두들 환성을 올렸으며, 한편으로는 그를 몹시 부러워하였다. 기쁨에 넘친 순타는 부처님께서 세상을 떠나지 말고 오래도록 자비와 지혜의 빛으로 사람들을 비춰줄 것을 기원하였다. 부처님은 순타에게 사람이 허무한 이 세상에서 당하는 것은 고통뿐이므로 자신은 지금 세상을 떠나 열반에 들어감으로써 온갖 고통에서 벗어나 즐겁고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된다고 말하였다.

[제2권]

이 권에는 4개의 품이 있다.

애탄품(哀歎品):애탄이란 슬퍼하며 탄식한다는 뜻이다. 이 품에서는 부처님이 자신의 입멸을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참된 나와 영원하고 즐겁고 깨끗한 것에 대하여 설하고 있다. 먼저 사람들과 귀신들, 짐승들이 통곡하여 울부짖고 있을 때 부처님이 근심에 싸여 통곡하지 말고 자신이 설한 진리를 마음속에 받아들이기 위하여 애쓰라고 하자, 울며 떠들던 사람들이 울음을 그치고 점차 조용해지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다음으로 부처님이 참된 나에 대하여 비구들에게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설법하고 있다.

이전에 사람들은 자신을 덧없고 고통스럽고 허무한 것으로 보면서 나[我]란 없다는 생각에 도달하는 것이 불법을 닦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왔다. 지금까지 부처님이 나란 것은 없다고 설해 온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 세상에 잠깐 살고 있다가 없어질 허무한 자신을 참된 존재로 보는 것과 같은 이교도들의 그릇된 견해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였다. 지금 이 설법이 전파되어 많은 사람들이 나란 없다고 옳게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은 한 단계 더 올라가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불성이 바로 자신들의 참된 나이며, 이것은 영원하고 즐겁고 깨끗한 것이라고 하였다. 부처님은 이렇게 허무한 나와는 다른 참된 나가 있다는 데 대하여 설하였다.

장수품(長壽品):장수란 오래 산다는 뜻이다. 이 품에서는 어떻게 하면 오래 살 수 있는가에 대하여, 그리고 부처님의 영원한 수명에 대하여 설하고 있다. 먼저 어떻게 하면 오래 살 수 있는가에 대하여 설하고 있다.

부처님의 설법에 의하면 보살이 모든 사람을 친자식처럼 사랑하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며 그들과 함께 기뻐하고 누구나 평등하게 대한다면 이러한 마음을 가진 것으로 하여 그는 장수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고 한다 하여 죄를 지은 사람까지 덮어놓고 두둔하라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죄를 조장시키는 것이다. 죄를 지은 사람을 계율에 따라 엄하게 다스리는 것이야말로 참된 사랑이다. 부처님은 죄를 지은 사람을 지옥에 떨어뜨리는 것도 그 사람이 미워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로 하여금 지옥의 고통 속에서 자기 죄를 뉘우치게 하며 착한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하여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다음으로 부처님은 자신의 영원한 수명에 대하여 설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부처님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한다. 죽는 것은 다만 사람들에게 불법을 가르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육신으로 태어났던 부처일 뿐이며, 참된 부처님인 법신(法身)은 영원히 살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부처님은 영원한 부처인 법신은 사람으로서는 알 수 없고, 오직 부처님만이 알 수 있다고 하였다.

금강신품(金剛身品):금강신이란 금강석과 같은 몸이라는 뜻으로서 법신, 즉 영원한 부처를 말한다. 이 품에서는 부처님과 같은 영원한 몸을 얻기 위해서는 불도를 지켜 잘 싸워야 한다는 데 대하여 설하고 있다.

부처님은 불도를 지켜 잘 싸운 자들이 법신이 된다고 하면서 부처님 자신도 전생에 이 구이성의 왕으로 있으면서 불도달라라는 비구를 모해하던 자들을 반대하여 칼을 들고 싸우다가 온몸에 상처를 입고 죽었기 때문에 법신을 얻게 된 것이라고 하였다. 부처님은 자신이 세상을 떠난 다음에도 불도를 설교하는 비구들을 모해하는 일이 있을 것인데, 이때에 비구와 신도들은 칼을 들고 그들과 싸워야 한다고 설하였다.

수지품(受持品):수지란 받아 지닌다는 뜻이다. 이 품에서는 이 불경을 받아 지니는 자의 보람에 대하여 설하고 있다.

먼저 부처님은 이 불경을 받아 지니는 자의 보람은 매우 크며 언제나 좋은 곳에 태어나 부처님을 가까이하게 될 뿐 아니라 늙지도 죽지도 않는다고 하였다.

[제3권]

이 권에는 1개의 품이 있다.

사법품(四法品):4법이란 네 가지 조목이라는 뜻이다. 이 품에서는 보살이 설법의 네 가지 방법을 소유하면 사람들에게 『대반니원경』을 해설하여 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것과 법신, 열반 및 해탈에 대하여 설하고 있다. 먼저 설법의 네 가지 방법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부처님의 설명에 의하면, 그 첫째 방법은 우선 보살 자신이 이 경의 교리와 맞지 않는 자기의 그릇된 생각을 바로잡는 것이다. 둘째 방법은 이 경에 있는 부처님의 설법에 따라 다른 사람들을 일깨워 주고 그들의 생각을 바로잡아 주는 것이다. 셋째 방법은 상대자가 어떤 질문을 하든지 그에 따라 순순히 대답하면서 그로 하여금 이 경의 교리를 깨닫도록 이끌어 가는 것이다. 넷째 방법은 설법을 할 때에는 반드시 그 설법을 하게 되는 인연이 있도록 하여야 한다. 이것은 마치 많은 사람을 데리고 먼 길을 가는 사람이 처음에는 대략 그 길을 알려주고 사람들이 길을 헷갈릴 때마다 그를 불러 바른 길로 돌려세우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다음으로 부처님은 가섭보살과의 문답을 통하여 법신, 열반 및 해탈에 대하여 설하고 있다. 법신에 대한 설법에 의하면 그것은 사람으로 태어난 부처님의 죽음은 결코 진짜 죽음이 아니라 그가 법신이 되어 열반에 들어간다는 것을 말한다. 열반에 들어간 자들은 어떠한 조화도 마음대로 나타낼 수 있다. 그들은 심지어 온 세상을 자기 몸의 땀구멍 속에 넣었다 꺼냈다 할 수도 있다. 부처님의 생애에 있었던 가지가지 일들은 다 사람들에게 불도를 깨우쳐 주기 위하여 나타낸 그의 조화였다. 그는 사람으로 태어나 불도를 닦는 본보기를 보여 주고 세상을 떠나는 것이다. 열반에 대한 부처님의 설법에 의하면 그곳은 고요하고 즐거운 세계이다. 거기에는 해와 달, 구름과 비, 흙과 물을 비롯하여 아무것도 있는 것이 없으며, 출생과 늙음과 쇠약함, 질병과 사망 같은 고통도 없다고 한다. 해탈에 대한 부처님의 설법에 의하면 참으로 해탈한 자는 부처님이다. 부처님이 육체로부터 해탈하였다고 하여 그에게 몸이 없는 것은 아니다. 몸은 있으나 사람으로서는 볼 수 없고 알 수 없는 몸일 뿐이라고 한다.

[제4권]

이 권에는 2개의 품이 있다.

사의품(四依品):4의(依)란 네 가지에 의거한다는 말이다. 이 품에서는 보살이 이 경을 들은 사람에 대해서는 그가 비록 보통 사람이거나 소승의 비구들인 경우에도 그들에게 의거하며 그들을 공경해야 한다는 데 대하여 설하고 있다.

먼저 부처님은 마땅히 의거하여야 할 부류의 사람에 대하여 들고 있다.

그 첫째는 이 경의 교리를 받아들인 보통 사람이고, 둘째는 역시 이 경의 교리를 받아들인 소승의 수다원ㆍ사다함이며, 셋째는 소승의 아나함, 넷째는 소승의 아라한이다. 여기서 수다원ㆍ사다함ㆍ아나함ㆍ아라한이란 소승의 비구들이 불도를 닦아 도달한 경지의 순위를 표시한다. 그러므로 네 부류의 사람에게 의거하라는 부처님의 설법은 이 경의 교리를 받아들인 사람이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그에게 의거하며 그를 공경하라는 설법이 된다.

다음으로 부처님은 대승 보살이 무엇 때문에 자기보다 못한 이러한 사람들에게 의거하여야 하는가에 대하여 설하고 있다. 그것은 이들이 비록 보통사람이거나 소승에 속한 사람들이긴 하지만 이 경의 교리를 받아들인 것으로 하여 부처님의 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부처님은 끝으로 네 부류의 사람에게 의거한다는 것은 결국 사람과 같이 변하기 쉬운 것들에 의거한다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변함없는 확고한 교리에 의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분별사정품(分別邪正品):분별사정이란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한다는 뜻이다. 이 품에서는 부처님의 말과 악마의 말을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에 대하여 설하고 있다. 부처님의 설법에 의하면 그가 세상을 떠난 다음 7백 년 후에 부처님의 설법은 점차 없어지고, 마귀들이 부처님이나 보살의 형상으로 나타나 거짓 불도를 설교하게 된다고 한다. 부처님은 이때에 자신의 말과 악마의 말을 구별하기 위하여서는 네 가지로 따져 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첫째로 부처님은 설법하는 자가 부처님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는가를 따져 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예를 들어 부처님은 정반왕과 마야가 애욕으로 화합한 결과로 태어났다고 말하는 자는 마귀의 제자이고, 부처님은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신기한 조화로 세상에 태어났다고 말하는 자는 부처님의 제자라고 하였다.

둘째로 부처님은 설법하는 자가 계율에 대하여 어떻게 말하는가를 따져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예를 들어 부처님이 돈과 금은 보배를 저축하고 농사하고 집짐승을 기르며 시장에서 팔고 사는 것을 비구들에게 허락하였다고 말하는 자는 마귀의 제자이고, 부처님은 재물이 사람의 착한 마음을 흐리게 한다고 하면서 언제나 이런 일을 금하였다고 말하는 자는 부처님의 제자라고 하였다.

셋째로 부처님은 설교하는 자가 대승 경전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는가를 따져 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예를 들어 소승 경전은 부처님의 말이지만 대승 경전은 허황한 것이라고 말하는 자는 마귀의 제자이고, 모든 사람에게 불성이 있다는 것과 같은 중요한 교리를 대승 경전에서 설하였다고 말하는 자는 부처님의 제자라고 하였다.

넷째로 부처님은 설법하는 자가 비록 교만한 말을 하는 듯하지만 이 경의 교리에 맞게 말한다면 그는 부처님의 제자라고 하였다. 예를 들어 설법하는 자가 나에게는 불성이 있기 때문에 나는 반드시 부처가 된다고 말하더라도 이것은 잘못이 아니라고 하였다.

[제5권]

이 권에는 6개의 품이 있다.

사제품(四諦品):4제(諦)란 네 가지 진리라는 뜻이다. 이 품에서는 불교의 네 가지 진리에 대하여 설하고 있다.

그 첫 번째 진리는 고통에 관한 진리이다. 부처님의 설법에 의하면 죽고 다시 태어나고 하면서 끊임없이 윤회하는 자는 고통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 바로 고통에 관한 진리를 아는 것이다.

두 번째 진리는 고통의 원인에 대한 진리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허무하다는 것을 모르고 그것들에 애착을 가지는 것으로 하여 사람들이 불도를 깨닫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 고통의 원인을 아는 것이다.

세 번째 진리는 고통을 없애는 진리이다. 누구에게나 불성이 있으며 번뇌를 없애고 불성을 키움으로써 영원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고통을 없애는 진리를 아는 것이다.

네 번째 진리는 고통을 없애는 방법에 관한 진리이다. 부처님과 그의 교리 및 교리를 전파하는 승단에 의거함으로써 고통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고통을 없애는 방도에 관한 진리를 아는 것이다.

사도품(四倒品):4도(倒)란 네 가지 뒤바뀜이라는 뜻이다. 이 품에서는 네 가지 뒤바뀐 생각이 어떤 것인가에 대하여 설하고 있다.

첫 번째 뒤바뀐 생각은 괴로운 세상살이를 즐거운 것으로, 자신의 불성을 키움으로써 도달하게 된 즐거운 삶을 도리어 괴로움으로 그릇되게 생각하는 것이다.

두 번째 뒤바뀐 생각은 보잘것없는 삶을 매우 긴 것으로, 영원한 열반을 허무한 것으로 그릇되게 생각하는 것이다.

세 번째 뒤바뀐 생각은 허무한 자신을 참된 나로, 허무한 자신을 버리고 영원한 불성을 체득하는 것을 도리어 허무한 일로 그릇되게 생각하는 것이다.

네 번째 뒤바뀐 생각은 사람의 더러운 몸에는 불성이 있을 수 없는 것으로, 깨끗한 몸을 가진 부처님을 세상 사람과 같은 더러운 몸을 가진 것으로 그릇되게 생각하는 것이다.

결국 네 가지 뒤바뀐 생각이란 괴로움과, 즐거움, 영원한 것과 일시적인 것, 나와 나 아닌 것,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의 관계를 대승 교리에 어긋나게 보는 것을 말한다.

여래성품(如來性品):여래성이란 불성과 같은 말로서 부처의 성품 또는 부처될 성품을 의미한다. 이 품에서는 불성에 대한 여러 가지 교리를 설하고 있다.

먼저 부처님은 모든 사람에게 불성이 있으며, 이 불성이 바로 모든 사람의 참된 나로 되어야 한다는 데 대하여 설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부처님은 이전에 사람들이 자기에게 불성이 있는 것을 모르고 허무한 자신을 가리켜 나라고 하기 때문에 우선 나라는 것이 없다고 그들에게 설교하였다. 그것은 허무한 자신이 나가 아니라는 것을 깨우쳐 준 다음에야 참된 나가 무엇인가를 알려 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속병이 난 갓난아이에게 젖을 먹이지 않기 위하여 젖꼭지에 쓴 약을 발라 놓았다가 아이의 병이 나은 다음에 약을 씻어 버리고 다시 젖을 먹이는 어머니처럼 부처님도 사람들이 나에 대한 그릇된 생각을 없앤 다음에 참된 나에 대하여 알려 준다는 것이다.

부처님은 참된 나란 불성이며, 이 불성은 누구에게나 다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불성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쌓이고 쌓인 번뇌 때문에 가려 있어서 사람들 자신은 자기 자신에게 불성이 있는 것을 알지 못한다. 비유하면 어떤 가난한 집 주인은 자기에게 보물이 있는 것도 모르고 있다가 어진 사람이 이 집에 나타나 보물을 찾아 주어서 비로소 알게 된 것과 같다는 것이다. 자기 집의 보물을 모르고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처럼 자기에게 있는 불성을 모르고 헛된 것을 찾아 헤매며 고통 당하는 사람들에게 그의 불성을 찾아 주는 사람이 바로 부처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보살들은 자기에게도 불성이 있으므로 떳떳해야 한다고 설하고 있다. 부처님은 이에 대하여 마치 장수가 싸움에 들어서면 ‘나는 장수이다. 모든 사람은 나를 따라야 한다’라고 생각하듯이 보살도 떳떳하게 나서서 무지한 사람들을 대승의 지혜로 일깨워 주어야 한다고 하였다.

끝으로 불성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보기 어렵다는 것에 대하여 설하고 있다. 불성에 대한 부처님의 설교를 듣는다 하여도 보통 사람은 그것을 잘 보지 못하고 많이 닦은 보살까지도 불성을 어렴풋이 볼 수 있을 뿐이니, 불성을 똑똑히 보는 것은 오직 부처님뿐이라고 하였다.

문자품(文字品):이 품에서는 문자의 참된 뜻에 대하여 설하고 있다. 먼저 부처는 모든 이치는 글자를 배우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알게 된다고 하면서 범어(梵語)의 뜻을 불교식으로 풀고 있다. 예를 들어 짧은 ‘아’자는 길하다는 뜻으로서 부처님과 교리와 승단을 가리키며, 긴 ‘아’자는 신성하다는 뜻으로 세상을 벗어난 것을 가리킨다고 하였다. 다음으로 부처님은 문자를 가지고 세상의 모든 것을 표현하지만 세상을 해탈한 부처님의 경지는 표현할 수 없으므로 세상에서 해탈하는 것과 함께 문자에 의하여 표현되는 세상의 이치에서까지 해탈하여야 참된 해탈이 된다고 하면서 이것을 아는 것이 참으로 문자의 뜻을 아는 것이라고 설하였다. 결국 문자란 설법의 수단이면서도 해탈의 경지를 표현할 수 없는 것이므로 문자에 매달리지 말아야 하며, 구경에는 부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유품(鳥喩品):조유란 새에 비유한다는 뜻이다. 이 품에서는 부처님을 새에 비유하여 구제의 화신으로 묘사하고 있다. 먼저 부처님은 암컷과 수컷이 짝을 지어 사는 새는 부족한 점을 서로 보충한다고 하면서 자기도 이러한 새와 같이 두 가지 성질을 한 몸에 지녔으므로 삶들을 구제할 수 있게 된다고 하였다. 다시 말하여 부처님은 보이지 않는 정신적 존재인 법신일 뿐 아니라 세상의 보통 사람으로 태어나기도 하는 그런 존재이므로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으며, 그들을 구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부처님은 사람들에 대한 자신의 자비심을 새끼 새에 대한 어미 새의 사랑에 비유하고 있다. 여기서 부처님은 여름 장마철이 오면 기러기나 학과 같은 새들은 물이 침습하지 못할 높은 지대에 새끼들을 옮겨 놓은 다음에야 안심하고 멀리 날아다니는 것처럼 자기도 사람들에게 구제의 길을 가르쳐 준 다음에야 열반에 들어간다고 하였다.

월유품(月喩品):월유란 달에 비유한다는 뜻이다. 이 품에서 부처님은 사람들이 자기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을 달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다. 부처님은 사람들은 달이 뜨면 달이 생겨났다고 하고, 달이 지면 달이 없어졌다고 하는데, 사실 달 자체는 수미산을 돌며 나타났다 가려졌다 할 뿐이라고 하면서 이와 마찬가지로 부처님도 생겨나거나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나타나기도 하고, 열반에 들어가기도 할 뿐이라고 하였다.

[제6권]

이 권에는 2개의 품이 있다.

문보살품(問菩薩品):문보살이란 보살에 대하여 묻는다는 뜻이다. 이 품에서는 일천제(一闡提)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보살이라고 설하고 있다. 일천제란 부처님에 대한 신앙심과 착한 마음이 전혀 없는 사람을 말한다. 먼저 부처님은 이 경을 한 번 들은 사람은 다 보살이라고 하면서 보살의 뜻을 넓히고 있다. 부처님은 보살이 되겠다고 뜻을 세운 사람이거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거나 할 것 없이 이 경의 설법을 들은 사람은 다 보살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하였다. 마치 봄날의 따뜻한 햇빛을 받으면 얼어 붙었던 모든 것이 녹아 생명의 진액이 흐르게 되듯이 이 경의 설법을 들으면 부처님이 영원하다는 이치를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부처님은 그러나 일천제만은 현세에 불법을 깨달을 수 없으며, 그를 보살이라고 할 수 없다고 하였다. 부처님은 불에 볶은 종자를 아무리 좋은 땅에 심어도 싹이 나올 수 없듯이 일천제의 마음속에서는 깨달음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하였다. 끝으로 부처님은 자신에게 불성이 있다는 것을 아는 자는 다 보살이며, 자기에게 불성이 있다는 것을 아는 여자는 남자로 보아야 하고, 이것을 모르는 남자는 여자로 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것은 불성을 가진 자는 다 대장부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수희품(隨喜品):수희란 함께 기뻐한다는 뜻이다. 이 품에서는 부처님이 마지막 음식을 받고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삼보의 영원함을 믿고 그것과 함께 기뻐하라고 설하고 있다. 먼저 부처님이 순타의 음식을 받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부처님이 입으로 빛을 내뿜어 모인 사람들을 두루 비추자 순타가 음식을 가지고 급히 부처님 앞으로 달려 나갔다. 부처님은 또한 자기들이 가져온 음식은 소용없게 되었다고 서운해 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자기 몸의 땀구멍으로부터 수많은 부처를 내보내어 그들의 음식을 다 받게 하였다. 다음으로 부처님은 누구나 부처와 교리와 승단, 이 세 가지 보배의 영원함을 믿으며 기뻐하라고 설하고 있다. 온갖 귀신과 사람들이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는 것을 슬퍼하고 있을 때 부처님은 그들을 위로하고 나서 삼보의 영원함을 믿으면 그들도 영원할 것이므로 이것을 가지고 함께 기뻐하라고 말하였다. 등창의 아픔 때문에 더는 설법할 수 없게 된 부처님은 문수보살과 가섭, 그리고 아난에게 설법을 부탁하고, 오른쪽 옆구리를 땅에 붙이고 모로 누웠다. 그러나 이 병은 사람이란 고통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하여 부처님이 일부러 나타낸 병이라는 설명으로 이 경전은 끝나고 있다.

이상과 같이 이 경에서는 사람마다 자기에게 있는 불성과 부처님에 대한 신앙심을 키우면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된다고 설하고 있다.

불설대반니원경(佛說大般泥洹經) 제1~6권은 첨부 파일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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