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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린다빵하’ <1>,<2>,<3>- 윤영해교수님
글쓴이 : 백련사 날짜 : 2009-01-13 (화) 11:47 조회 : 1807
이 름 :
관리자 [등록일 : 2004-04-07 오후 8:48:00]
제 목 :
‘밀린다빵하’ <1>,<2>,<3>- 윤영해교수님
동서양의 대화, ‘밀린다빵하’ <1>


#경전의 성립과 구성

〈밀린다빵하(Milindapanha)〉는 ‘밀린다의 물음’이라는 뜻이다. 밀린다는 서력기원전 150년 경 서북인도를 지배하던 그리스 왕 메난드로스(Menandros)의 빨리어 발음이고 빵하(panha)는 질문이라는 뜻이다. 이 경은 메난드로스 왕과 나가세나(Nagasena) 스님 사이에서 진행된 사흘 동안의 대화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밀린다빵하〉는 서력기원을 전후한 즈음에 동서양 지성인들의 공통 관심사로 성립된 경전이다.

원전은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 등에 전해진 빨리어 〈밀린다빵하〉이고 한자번역으로는 〈나선비구경(那先比丘經)〉(T. 1670, 32-694)이 있다. 〈나선비구경〉의 한글번역은 한글대장경 제 195책이다. 이와 함께 〈밀린다빵하〉의 한글번역도 시중에서 쉽게 구해 읽을 수 있다.

〈밀린다빵하〉는 서문 1편과 본문 6편을 합해 총 7편으로 구성된데 비해, 〈나선비구경〉은 〈밀린다빵하〉의 1, 2, 3편만으로 번역되었다.

〈나선비구경〉의 서문 역시 〈밀린다빵하〉와 많이 다르다. 이로 보아 〈밀린다빵하〉의 4, 5, 6, 7편은 후대에 새롭게 첨가된 것으로 판단한다. 1880년 트렌크너(V. Trenckner)에 의해 빨리어 교정본과 번역본이 나오고 1890년에 리스데이비스(T. W. Rhys Davids)에 의해 영역본이 나온 이후, 〈밀린다빵하〉는 동서양 모두에서 대단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며 널리 읽혀왔다.

〈밀린다빵하〉만큼 여러 가지 점에서 많은 특징과 매력을 가진 경전도 드물다. 이 경전이 동서양의 지성인들에게 동시에 폭넓은 관심을 받게 된 첫 번째 이유는 불교경전으로서는 드물게 불교에 대한 동서양의 시각이 동시에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토론의 두 당사자 중 메난드로스는 당시 서양의 중심이었던 그리스의 왕으로서 철학적 소양을 충분히 갖추었으며 나가세나는 당시 인도에서 가장 큰 학파로서 서력기원후 10세기까지 존속했던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sarvastivada)의 고승으로서 논리적 해명에 뛰어난 사람이었으니 두 사람은 당시 동서양의 지성을 대표하기에 충분하다.

밀린다왕.나가세나 스님의 대화

불교에 대한 동서양의 시각 담겨

둘째 이유는 논의되는 내용들이 전문가들에게나 해당하는 고답적이거나 난해한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면 누구나 가질 법한 평이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지금까지도 여전히 문제의식의 효용성이 살아 있어 누구나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절실한 내용이다.

또한 구사된 용어들이 어려운 전문 술어가 아니라 일반인들이 일상에서 사용하는 평이한 일상적 술어들을 활용하고 있다는 점도 이 경이 대중들의 폭넓은 관심을 모으게 된 이유가 될 것이다. 대답 역시 명쾌한 논리와 구체적 예시가 풍부하여 강한 설득력과 공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밀린다빵하〉의 원형으로 판단되는 1, 2, 3편에만 80여 개의 적지 않은 토론이 등장한다. 또한 경전이 전체 토론내용이나 중심 주제를 체계적이거나 명시적으로 표명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이 경의 중심 주제를 하나로 요약해내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대론(對論)의 중심 주제는 윤회업보설과 무아설과의 관계에 대한 논리적 입증에 있다. 불교는 윤회라는 인도의 기성사상을 받아들이는 반면, 기성의 윤회설과 도무지 논리적 정합을 이루기 어려운 무아(無我)설을 제시했다.

현실의 경험을 중시하며 실체적 영혼관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그리스의 왕에게 윤회와 무아설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해하기 쉽지 않은 문제였다. 게다가 그 두 가지 교설이 갖는 논리적 정합의 어려움은 불교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큰 난제였다. 나가세나는 이 어려운 난제를 빼어난 논리적 설득력으로 풀어나간다.

무아 윤회설의 명쾌한 해명, ‘밀린다빵하’ <2>

#중심주제

〈밀린다빵하〉는 메난드로스 왕과 나가세나 스님의 전생이야기, 사흘간의 대화를 통해 스승과 제자가 되는 과정, 메난드로스가 어려운 문제들을 묻고 나가세나가 답하는 과정, 수행자가 지켜야 할 규칙들을 비유로써 밝히는 과정 등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들 전체에서 다루어지는 주제들은 심성의 구조와 작용 등 인간 영혼의 문제, 윤회와 무아설의 모순 문제, 무아설과 업의 소재 및 윤리의 문제, 역사적 부처님의 실재와 불타관의 문제, 열반을 위한 실천 수행의 문제, 시간, 자살 등 장장 236개의 질문과 답변을 통해 다양하게 설정되고 해명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린다빵하〉에서 토론된 가장 중요한 주제는 무아설과 윤회설의 논리적 정합성(整合性)의 문제다. 윤회설은 오래 전부터 인도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믿어오던 신념이다. 그들에 따르면 창조신 브라흐마는 만물을 창조한 다음 개개의 만물에 내재(內在)해 들었다. 개물(個物)에 내재한 브라흐마, 이것을 아트만이라 하는데 이것이 바로 윤회의 주체다. 옷이 헐면 버리고 새 옷으로 갈아입듯이 집이 헐면 버리고 새집으로 이사 가듯이 아트만은 그렇게 윤회한다. 사실 많은 불자들이 아직도 불교의 윤회설을 이렇게 믿고 있다.

그러나 부처님은 인도사람들이 굳게 믿어오던 이 아트만설을 단호하게 부정하고 무아(無我)설을 주창하셨다. 무아설은 부처님의 독창적 교설로서 불교의 정체성이 이곳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을 만큼 고유하고 중요한 교설이다. 그런데 부처님은 아트만의 존재는 부정하셨지만, 윤회설은 수용하셨다. 그러니까 부처님은 아트만 윤회설을 변용(變容)하여 무아 윤회설을 주창하신 것이다.


촛불이 옆 촛불로 옮겨 붙듯이

실체 없이 업만으로 윤회 가능


무아설과 윤회설의 논리적 정합성의 문제는 불교사상사 내내 거듭된 중대한 논란거리였다. 〈밀린다빵하〉는 이 어렵고 중차대한 문제를 집중적으로 조명하여 명쾌하게 해명하는 경전이다.

그리스 철학의 세례를 받아 논리적 이해에 익숙한 메난드로스 왕은 윤회의 주체도 없이 어떻게 윤회할 수 있는가를 질문한다. 나가세나는 이해를 돕기 위해 비유를 구사한다.

대왕이여, 여기에 어떤 사람이 촛불을 켠다고 합시다. 그러면 대왕이여, 초저녁에 타는 불꽃과 한밤중에 타는 불꽃이 같겠습니까? 존자여, 아닙니다. 대왕이여, 그러면 한밤중에 타는 불꽃과 새벽에 타는 불꽃이 같겠습니까? 존자여, 아닙니다. 대왕이여, 그렇다면 초저녁의 불꽃과 밤중의 불꽃과 새벽의 불꽃은 각각 다르겠습니까? 존자여, 그렇지 않습니다. 불꽃은 똑같은 초에서 밤새도록 탈 것입니다. 대왕이여, 모든 윤회의 연속은 마치 그와 같이 지속됩니다. 생겨나는 것과 없어지는 것은 서로 다른 것이지만, 한쪽이 다른 쪽보다도 앞서거나 뒤서거나 하지 않고 동시에 지속되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모든 존재는 같지도 않고 서로 다르지도 않으면서 마지막 의식(현재의 존재)으로 수렴되는 것입니다.

나가세나는 무아설과 윤회설을 촛불의 비유로 간명하게 해명한다. 물방울들이 모여 흐르는 강물 속에 강이 따로 없듯이 고체 액체 기체로 흐르면서 타오르는 촛불에도 아무런 실체가 없다. 그러나 한 촛불이 다른 촛불로 옮겨 가는 것처럼 윤회는 가능하다. 타오르는 하나의 양초 곁 가까이에 심지를 세운 다른 양초를 두면 열의 이동으로 잠시 후 불꽃이 옮겨 붙는다. 이처럼 무아와 윤회의 문제에 있어서도 아트만 같은 실체가 없어도 업만으로 윤회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無我說의 실천적 의미 ‘밀린다빵하’<3>


〈밀린다빵하〉의 중심주제인 무아설은 연기법과 함께 부처님 최고의 독창적 교설이다. 불교의 정체성은 바로 이곳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불교에 대한 이론적 이해는 여기서부터 시작해서 여기서 끝난다고 할 수 있다. 이를 모르고서는 결코 불교를 알 수 없다.

무아설에 대한 논의에서 메난드로스 왕은 스님의 이름을 묻는다. 이에 스님은 ‘나가세나’라고 불리지만 그 이름에는 어떠한 인격적 실체도 없다고 덧붙인다. 메난드로스는 인격적인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에 주목한다. 만일 인격적 실체가 없다면, 스님들에게 공양을 베푸는 자도 그 공양을 받는 자도 있을 수 없고, 수행하는 자도 수행을 통해 열반을 얻는 자도 있을 수 없는 모순이 생긴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만일 인격적 실체가 없다면 지금 눈앞에 여실하게 존재하는 ‘나가세나’는 과연 무엇인가라고 반문한다.

나가세나 스님은 인격적 실체를 육체적인 관점에서 찾아보기 위해 머리카락, 손톱, 치아 등 신체 각 부분이 나가세나인가라고 묻는다. 스님이 아니라고 답하자 이번에는 인간존재를 신체[色]뿐만 아니라 정신적 현상[受想行識]까지 포함하는 오온(五蘊)으로 분석하여 오온 중의 어느 하나나, 아니면 오온 전부를 합친 것이 나가세나냐고 묻는다.

스님은 이 질문을 쉽게 풀기 위해 왕이 타고 온 수레를 예로 들어 반문한다. 무엇이 수레인가라는 스님의 질문에 왕은 굴대, 바퀴, 차체, 차틀 각각 어느 것도 수레가 아니라고 답한다. 또한 이것들을 합친 것도 수레라고 할 수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합친 것을 고스란히 해체해도 어느 것 하나 줄어든 것은 없지만 그것을 수레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자동차 부품 가게에 가면 수십 대 분량의 부품이 모두 있지만 정작 그곳에 자동차가 있다고 할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왕은 그렇다면 오온 이외의 다른 것이 나가세나인가라고 묻는다. 스님은 육신과 정신현상인 오온 밖에 따로 나가세나가 있을 수는 없다고 답한다.


모든 고통은 ‘나’의 헛된 집착 때문

대승적 이타행으로 무아 적극 실천


우리는 무아설에 대한 〈밀린다빵하〉의 논리적 설파와 예증(例證)에 설복당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이 경전의 최대 매력은 동서양의 지성이 만나 펼치는 날카로운 질문과 논리적 설득력에 있다.

〈밀린다빵하〉의 중심주제인 무아설은 이 경전뿐만 아니라 불교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주제이다. 우리는 여기서 즉 부처님께서 무아설을 설파하신 궁극적 목적과 의미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부처님께서 인도사람이면 누구나가 철석같이 믿고 있던 아트만의 존재를 부정하고 무아, 즉 ‘나 없음’을 강조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부처님은 당신의 가르침은 고통의 해결과 극복을 위한 것이라고 누누이 반복하셨다. 고통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고통은 욕망이 충족되지 않은 상태다. 욕망은 자신을 이롭게 하려는 충동, 즉 이기심에서 비롯된다. 이기심은 ‘자기 있음’을 전제로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모든 고통은 ‘실체적 존재로서의 자기 있음’이라는 착각(無明)에서 비롯한 것이다. 그러므로 실체적 존재로의 자기 있음의 착각을 타파(智慧, 깨달음)하면 이기심이 사라지고, 이기심이 사라지면 욕망이 사라지고, 욕망이 사라지면 고통이 사라진다. 부처님께서 무아설을 극력 설파하신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 ‘실체적 나’에 대한 헛된 집착에서 벗어나 고통이 없는 자유와 행복을 누리게 하고자 함이었다. 이기심 없음의 적극적 실천이 다름 아닌 대승적 이타행(利他行, 자비)이다. 이처럼 무아설은 모든 불교의 토대이며, 〈밀린다빵하〉는 그것을 가장 설득력 있게 설파한 경전이다.


윤영해/ 동국대 교수
* 백련사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9-03-12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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