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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일람집(大藏一覽集) 제1권~ 대장일람집(大藏一覽集) 제5권
글쓴이 : 백련사 날짜 : 2014-02-07 (금) 14:25 조회 : 2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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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일람집(大藏一覽集)

대장일람집(大臧一覽集) 제1권

대장일람집 제1권

영덕(寧德) 우바새 진실(陳實) 편집

장순용 번역

[제1문(門)]

첫머리에서 대각(大覺)의 모습을 먼저 소개함으로써 중생의 본보기로 삼는다. [모두 8품 13칙이다.]

1) 선왕품(先王品) 2) 인지품(因地品)

3) 시생품(示生品) 4) 출가품(出家品)

5) 성도품(成道品) 6) 도생품(度生品)

7) 입멸품(入滅品) 8) 상주품(常住品)

1) 선왕품(先王品)[성씨(姓氏) 3칙 첨부]

혼돈(混沌)에서 하늘과 땅이 열리고

조상이 왕의 통치를 시작하다.

『석가보(釋迦譜)』에서 말하였다.

“겁의 시초에 천지는 큰 물로 가득 차 있었다. 바람이 불자 점점 소멸하면서 거품으로 응결되었다. 거품이 차차로 변화해서 천궁(天宮)이 되고 나아가 산악과 평평한 육지는 주(洲)가 되고 깊은 방죽은 바다를 이루었으니, 위로부터 아래에 이르기까지 예전대로 건립되었다. 광음천(光音天)의 사람이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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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내려왔는데, 저마다 몸에 빛이 있고 자유롭게 날아다녔으나 지미(地味)가 향기롭고 달콤하여 이것을 먹고는 몸이 무거워지고 빛이 사라져 다시는 날지 못했다. 해와 달이 처음으로 생기니, 이에 낮과 밤으로 나뉘었다. 먹기를 탐했기 때문에 마침내 지미가 사라지고 다시 바라(婆羅)가 생겨났다. 바라가 사라지자 다시 멥쌀이 생겨났다. 멥쌀의 길이는 네 치[寸] 반이었는데, 아침에 베어도 해질 무렵에 다시 자라났다. 이 쌀을 먹은 까닭에 남자와 여자의 모습으로 나뉘었다. 나중에는 탐을 내어 쌓아 두고 모으려 하자, 그 때는 베어도 자라나지 않았다.[기심(機心)이 한 번 움직이면 사물은 그 진실이 떠나게 된다. 일찍이 들으니 동래에서 조세를 더 받자 바다에서 고기가 나오지 않았고, 합포에서 진주를 탐하자 진주조개들이 멀리 떠나 버렸다고 한다. 근대의 일로 옛날에 견주어 보아도 부계를 합한 듯하니 멥쌀이 자라나지 않는 것도 그리 이상하게 여길 것이 없다.] 이후 서로 빼앗고 훔치는데도 능히 해결할 자가 없었다. 서로 논의해서 한 명의 지혜로운 자를 세우니, 삼마다(三摩多)가 평등왕(平等王)이 되었다. 그가 선한 자에겐 상을 주고 악한 자에겐 벌을 주니, 모두가 다 같이 넉넉하였다.”[채자함(彩字函) 제1권 . 혼돈(混沌)은 『삼재품(三災品)』과 『겁량품(劫量品)』 두 품에 상세히 보인다.]

『기세인본경(起世因本經)』에서 말하였다.

“이 평등왕의 자손은 33대[世]를 이어가다가 선사왕(善思王) 이후에야 비로소 전륜성왕(轉輪聖王)의 지위를 증득했다. 사천하에서 왕 노릇하면서 줄곧 사자협왕(師子頰王)에까지 이르렀는데, 모두 131만 56명의 왕이 이어졌다.

사자협왕은 네 명의 자식을 낳았는데, 첫째는 정반(淨飯)이고, 둘째는 백반(白飯)이고, 셋째는 곡반(斛飯)이고, 넷째는 감로반(甘露飯)이었다.

정반왕은 두 명의 자식을 낳았는데, 한 명은 실달다(悉達多)이고, 또 한 명은 난타(難陀)였다. 백반도 두 명의 자식을 두었는데, 한 명은 제사(帝沙)이고, 또 한 명은 난제가(難提迦)였다. 곡반도 두 명의 자식을 두었는데, 한 명은 아니루타(阿尼婁馱)이고, 또 한 명은 발제리가(跋提梨迦)였다. 감로반도 두 명의 자식을 두었는데, 한 명은 아난타(阿難陀)이고, 또 한 명은 제바달다(提婆達多)였다. 그리고 실달다[세존의 어릴 적 이름]는 한 명의 자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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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었는데, 그 이름은 라후라(羅睺羅)였다.”[영자함(映字函) 제10권]

『석가보』에서 말하였다.

“옛날에 왕이 동생에게 왕의 자리를 넘겨 준 후에 바라문(婆羅門)을 따라다니면서 배웠는데, 바라문의 성씨가 구담(瞿曇)이었다. 바라문은 왕을 받아들이면서 '마땅히 왕의 옷을 벗고 내 복장처럼 입고서 구담의 성씨를 받으라' 고 말하고, 소구담(小瞿曇)으로 불렀다. 깊은 산으로 들어가고 나서는 모습과 복장이 달라진 탓에 알아보는 자가 없었으며, 감자원(甘蔗園)을 정사(精舍)로 삼았다.[정반왕의 먼 조상이 나라를 버리고 수행했는데, 구담의 성씨를 받았으므로 구담씨라고 하였으며, 감자원(甘蔗園)에서 살았으므로 감자의 후예라고 칭하였다.]

도둑으로 말미암아 질서가 어지러워지자 도둑을 다스리는 법으로 그를 논죄했다. 나무로 그의 몸을 꿰뚫어서 본보기로 세워 두니, 피가 땅에 흘러 내렸다. 대구담(大瞿曇)이 천안(天眼)으로 이 광경을 보고는 신족통(神足通)으로 날아와서 말했다.

'나의 아들이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토록 잔혹한가?'

그리고는 땅에 있는 피를 진흙 덩어리로 만들어 가지고 정사(精舍)로 돌아왔다. 왼쪽의 피는 왼쪽 그릇 속에 붙이고, 오른쪽의 피도 역시 그렇게 한 다음 대구담은 주문을 외우면서 소원을 빌었다.

'이 도사(道士)가 만약 뜻이 참되다면, 피가 화해서 사람이 되게 하소서.'

그 후 10개월이 지나자, 왼쪽은 남자가 되고 오른쪽은 여자가 되었다. 그래서 그들의 성씨를 구담으로 했다.

또 의마왕(懿摩王)에게는 네 명의 태자가 있었는데, 설산(雪山)으로 내쫓겼다. 그러나 몇 년 지나지 않아서 그들의 덕에 귀의하는 자들이 마치 저자처럼 많았고, 그 결과 나라가 번성해서 강국이 되었다. 의마왕이 찬탄하면서 말했다.

'이야말로 참된 석자(釋子)로구나.'”[석씨의 의미는 제(齊)나라 말로 능(能)이다. 그래서 능자로 성씨를 삼는다. 채자함(彩字函) 제1권]

대장일람집(大藏一覽集) 제1권~ 대장일람집(大藏一覽集) 제5권은 첨부 파일에 있습니다_()_

출처:동국대 불교학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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