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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에는 문이 있다. - 승원스님
글쓴이 : 백련사 날짜 : 2009-01-09 (금) 16:16 조회 : 2742
이 름 :
승원 [등록일 : 2004-04-25 오전 7:41:00]
제 목 :
모든 것에는 문이 있다.
모든 것에는 관문(關門)이 있다.

> 세상의 모든 일에는 관문(關門)이 있습니다. 그 문을 통과하여야 비로소 그 일에 자유로울 수 있고 그 일에 얽매이지 않게 됩니다.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고 할지라도 통과해야 하는 경계가 있는데 이 경계를 통과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일에 대하여 말할 수 없습니다.

> 이 관문은 마치 물을 마심에 차고 더움을 스스로 알듯이 스스로 경험해보지 않고 지식이나 생각으로는 알 수 없는 세계가 바로 이 관문입니다.

> 어떤 일이나 운동같은 것도 아! 그렇구나 하는 경험을 하고 나면 진도가 일취월장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이 관문입니다. 우리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관문을 통과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 만의 착각속에서 마치 자신이 관문을 넘은 것처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러한 착각이 사람을 망치는 수단이 됩니다. 진실한 관문은 말이나 생각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생활속에 그대로 묻어나오는 것입니다.

> 상대를 이해하는 것도 하나의 관문입니다. 그 이전에는 상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였는데 어느 한 순간 상대를 이해하게 됩니다. 이것이 한 고비요 관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작고 하찮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 순간을 넘기기 못하면 아무 것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 선에서도 점오(漸悟)다, 돈오(頓悟)다 하는 것이 바로 이 관문의 차이입니다. 한번에 모든 관문을 넘어서면 바로 돈오(頓悟)요, 많은 관문을 하나하나 타파하면 이것이 바로 점오(漸悟)입니다. 현문(玄門)이니 현관(玄關)이니 하는 것들도 모두 현묘한 길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길을 말하는 것입니다. 문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결코 방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관은 바로 이 문과 같습니다.

> 선(禪) 뿐만 아니라 예도나 무도에도 이른바 관문이 있습니다. 그 관을 넘지 않고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경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 관은 결코 자신을 내세워서는 지나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관을 넘어서면 아무렇지 않게 하는 말이나 행동에도 도가 가득 담겨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평상심이 도라는 경계입니다. 깨달은 사람의 분상에서 보면 절을 하고 염불을 하는 것이 별 신통한 것은 되지 못할 것입니다. 절이나 염불이 깨달음의 자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역대 조사나 선지식들도 그것이 진리는 아니지만 진리에 도달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였으므로 더 열심히 염불하고 기도하였으며 후학들에게도 고구정녕하게 권장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근자에 이러한 기본수행을 외면하고 마치 마음을 깨달으면 되는데 그런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큰소리를 치는 눈먼 선지식이 있습니다. 그분들이 몰라서가 아닙니다. 그것들을 통하여 올바른 깨달음이 오기 때문입니다. 깨달은 분이 무엇이 부족하여 염불하고 기도하겠습니까? 그러나 역대의 큰스님들이 모두 절이나 염불과 기도를 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이 가장 절실한 가르침입니다.

> 그러나 이 관문은 쉽게, 아무나 통과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 참선회에 참석하였던 사람이 참선의 어려움을 다음과 같은 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문 하나를 지나가면 또 하나의 문이 있으니 사색하는 자여, 들어오지 말지어다.”

> 부처님을 바로 아는 사람에게는 곳곳에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 곳이 없고 불교가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은 하는 일이 모든 일이 불사가 됩니다.(事事佛供. 處處佛事. 佛事門中에 不捨一法) 허당록이라는 책에 국수월재수(掬水月在手)라는 글이 있습니다. 손바닥에 물을 떠올리면 달이 손안에 있다는 시입니다. 이 말은 부처님의 생명은 언제 어디서나 곳곳에 있다(實在)는 것입니다.

> 중국의 마곡산에 보철선사가 주석하고 계셨습니다. 무더운 여름날에 부채질을 하고 있는데 한사람의 구도승이 찾아와서 “나는 바람이 언제 어디에나 있다는 진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반적인 말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지금 이곳에 바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싶습니다.” 하고 가르침을 구했습니다. 구도승이 말을 하는 동안에 부채질을 멈추고 있던 보철선사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는 다시 부채질을 하기 시작할 뿐 한마디의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부채질을 하는 것이 선사의 대답이었습니다. “바람이 언제 어디나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지금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고 싶습니다”라는 물음에 대하여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고 행동으로 대답하고 있는 것입니다.

>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입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부채질을 하는 실천에 의하여 그 존재를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은 감각의 대상으로는 실감할 수 없는 부처님을 좌선이나 염불에 의하여 경험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 수행자는 어떤 의미에서 부채질을 하는 실천에 의해서만 경험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가르침을 받게 되어 크게 기뻐하면서 고개를 숙였습니다.

> 높은 하늘에서 땅위를 비추는 달도 손바닥으로 물을 떠올리는 실천이 따라야 손바닥에서 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꽃을 만지는 실천에 의해서 꽃의 향기가 전해지는 것입니다. 작은 것을 무시하지만 그 속에 진리는 담겨있고 나로서는 하찮다고 여기는 그 사람의 행동 속에 그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의 진실이 담겨있습니다. 관문은 큰 곳에 있지 않습니다. 작은 것도 넘기지 못하는 사람은 큰 것도 넘을 수 없습니다. 무엇이든 소중하게 생각하고 열심히 추구하는 사람, 그 사람이 진실하고 올바른 사람이며 그 속에 모든 진실이 담겨있습니다.

> 작은 것에 막힌 사람은 절대 큰 것을 수용할 수 없는 법입니다.

> 백련사에는 꽃이 한창입니다. 5월 2일 일요일의 철쭉산행에 꼭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오전 10시에 대웅전 앞에서 출발한답니다. 승원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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