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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해의 길목에서 생각한다 - 불기 2549년(2005년) 월간붓다에서
글쓴이 : 백련사 날짜 : 2009-01-08 (목) 22:55 조회 : 4208
이 름 :
백련사 [등록일 : 2006-06-09 오후 6:47:00]
제 목 :
가는 해의 길목에서 생각한다 - 불기 2549년(2005년) 월간붓다에서
책상 앞에 앉아서 글을 읽다가 문득 머리를 들어 창밖을 보니 나뭇가지에 끊어질 듯 대롱 대롱 매달린 초겨울의 마지막 잎사귀 몇 개가 그렇게 애처로워 보일 수 없다. 한 장만 달랑 남은 달력을 쳐다보면서 웬지 가슴이 답답해지고 매년 겪는 통과의례(通過儀禮)와 같이 괜히 눈물이 나오고 삶과 죽음의 문제나 진정한 존재의 의미를 찾는 일들이 아마 이맘 때에 겪게 되는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생각일 것이다. 생각해 보면 상쾌하고 맑은 생각보다는 늘 마음이 무겁고 안타까웠다는 기억이 난다.

금년은 어느 해보다도 이 지구촌에 많은 재해가 일어났다. 태풍이나 지진, 홍수, 질병 등이 세계 곳곳을 휩쓸고 지나가면서 수많은 희생자들이 생기는 것을 보면서 이것이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우리, 나 자신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책에선가 읽은 내용이다. "지금 우리들이 겪고 있는 자연재해는 우리가 너무 지구를 혹사하여 지구가 감기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라고, "그래서 홍수를 일으키고, 태풍도 불고, 지진도 일어나게 하여 스스의 몸을 치유하고 있는 것"이라고…….

자연도 이렇게 자기를 알아주지 않고 혹사를 시키면 심통을 부리는가 보다. 사람이 사는 세상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살피고 배려하면 서로 좋을 텐데 늘 자기만을 위하여 정신없이 살다 보니 주변을 돌아볼 여유는 더더욱 없을 것이다. 그러니 언제 나 아닌 다른 것들에 대하여 생각이나 하고 살았겠는가? 세상이 힘들고 어렵다 보니 우리들의 마음도 움츠러 들고 베푸는 손은 더욱 쪼그라들어가는 것만 같다. 며칠 전에 복지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어느 스님의 전화에 "올해는 김장하기도 어려웠다"는 말씀이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 자신의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불가(佛家)의 말에 회향(廻向)이라는 말이 있다. 흔히 무슨 무슨 기도 회향이나, 무슨 무슨 불사 회향이라는 말을 보면 마친다는 의미로 많이 쓰이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회향의 본래의미는 '변화시킨다', '어떤 결과를 얻게 한다', '방향을 돌려주다' 등의 의미가 있다. 보통은 한자의 의미로 해석하여 회(廻)는 돌리는 것, 향(向)은 그쪽으로 향하게 하는 것으로 자신의 깨달음이나 자신이 행한 일을 돌려서 다른 사람을 향하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을 한다. 회향이 자신이 쌓은 선행(善行)을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돌린다는 의미에서 독경(讀經), 염불(念佛), 기도(祈禱) 등의 모든 공덕을 가족이나 이웃, 중생에게 돌리는 것이 회향의 진정한 의미라고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이 매일 매일의 기도 중에 발원하는 회향게(廻向偈)야말로 진정한 회향의 의미를 잘 표현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저희들이 지은 바 이 공덕이 일체의 중생들의 공덕이 되어 모든 중생 빠짐 없이 성불하옵고 모두 함께 불도를 이뤄지이다[願以此功德 普及於一切 我等與衆生 皆共成佛道]"

수(隋)나라의 혜원 스님은 그의 저서에서 자신이 닦은 선행과 공덕을 깨달음을 얻기 위한 지혜로 돌리는 보리회향(菩提廻向), 자신이 행한 공덕을 모든 중생들에게 돌리는 중생회향(衆生廻向), 자신의 선행과 공덕을 평등하고 불변한 진리 그 자체로 돌리는 실제회향(實際廻向)의 삼처회향(三處廻向)을 설하였고, 당(唐)나라의 담란 스님은 자신의 공덕을 모든 중생들에게 돌려서 함께 아미타불의 극락세계에서 살 수 있도록 기원하는 왕상회향(往相廻向)과 정토의 삶을 마치고 다시 이 세계로 되돌아와서 중생들을 교화하여 불도(佛道)로 향하게 하는 환상회향(還相廻向)을 설하였는데, 중요한 것은 회향의 중심에 모두 나 아닌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회향은 마침이 아니고 또 다른 시작이며 회향은 살피고 배려하는 것이며 회향은 자비의 출발이다. 자비가 무엇이던가? 자비란 나 아닌 모든 존재에 대하여 나와 같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 순간이 바로 자비에 눈을 뜨는 순간이다. 그것이 자연이든 사람이든 진정한 회향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나는 보살(菩薩)이라는 말을 설명하면서 항상 이런 말을 하곤 한다. "보살은 영원한 현재진행형의 사람이다." 언제 보살의 원력에 처음과 끝이 있었던가? 무시무종(無始無終)이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것이 보살의 마음이다. 보살의 마음 속에는 삼세(三世)도 없고 시공(時空)도 없다. 오직 그 마음 속에는 중생이 있을 뿐이다.

한 해를 마치고 또 다른 한 해를 시작한다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마음 속에 회향하는 마음이 없다면 아무런 의미나 가치가 없는 그저 똑같은 해일 뿐이다. 나는 올해 과연 누구에게, 무엇을, 얼마 만큼 회향하였는가? 내가 편안하기 위해서는 주변이 편안해야 한다. 이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주변을 살피고 배려해야 한다. 눈과 귀와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한다.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지 않으면 결코 내가 편안해질 수 없는 것이다.

중국 여행 중에 관세음보살을 모신 전각(殿閣)에 심성구고(尋聲求苦)라고 쓰여 있는 편액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이 말은 관세음보살이 당신을 찾는 중생들의 소리를 듣고 그 소리를 찾아서 고통에서 구제해 주신다는 말이다. 나는 이 편액에서 불자들의 기도하는 마음과 스스로도 끊임없이 주변을 살피는 두 가지의 마음을 보았다. 내가 지성으로 관세음보살을 찾듯이 나 또한 나 아닌 다른 존재들의 소리를 듣고 찾아야 한다는 것을……

금년 한 해도 저물어간다. 지금 겨울 산사에서는 스님들이 동안거(冬安居) 결제(結制)를 맞이하여 세상의 모든 욕망을 버리고 오로지 화두(話頭)를 찾아서 용맹정진(勇猛精進)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도 을유년(乙酉年)의 부질없던 욕망과 번민을 모두 떠나보내고 희망찬 병술년(丙戌年)을 맞이하자. 편안하게 살고 있을 때 항상 위태로울 때를 생각하고 준비하는 거안사위(居安思危)의 마음으로 다가오는 새해에는 내가 아닌 다른 존재에 대하여 새롭게 눈을 뜨고 회향하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기도하고 발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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