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련사

홈 > 신행생활 > 주지스님 소참법문주지스님 소참법문


총 게시물 60건, 최근 0 건
   
영가천도-불기2549년 (2005)07-31 BTV 법회
글쓴이 : 백련사 날짜 : 2009-01-08 (목) 22:55 조회 : 4095
이 름 :
백련사 [등록일 : 2006-06-09 오후 6:57:00]
제 목 :
영가천도-불기2549년 (2005)07-31 BTV 법회
영가천도는 왜 해야 하며 영가천도의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알고 제사를 지내는 것이 나을 것이라 생각해서 오늘 그것에 대하여 말하고자 한다.
모든 종교가 사후의 세계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만 그 관점은 각각 다르다. 또 불교를 제외하고는 모두 사후의 세계가 인간의 의지에 의해서 결정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신의 뜻에 의해서 결정이 된다는 것이 유일신 신앙들의 공통적인 얘기들이다.
불교에서는 부처님이나 특정한 절대자의 뜻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행위와 의지에 의해서 결정이 되고 중생들은 자신의 그러한 의지와 행이 업력에 의해서 지배를 받게 된다. 그래서 모든 존재는 시간과 공간을 윤회한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그 윤회의 주체는 오직 자신일 뿐 다른 것이 자신을 윤회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불교를 믿는다고 해서 누구나 다 자기 마음대로 다음 생을 결정할 수는 없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업력에 의해서 수동적으로 끌려서 다음 생을 받게 된다.
그렇다면 신이나 절대적인 존재에게 의존해서 매달려야 할 것이 아니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의지하고 매달려서 즉, 권력이나 부를 가지고 있음으로 해서 자신의 삶을 마음대로 살 수 있다면 그러하겠지만 절대 그런 것이 아닌 것이다. 돈을 많이 가졌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며 높은 권력을 가졌다고 그 권력이 영원하지도 않다.
불가에서는 이 세상의 주체는 나이고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자신이라고 말한다. 이와 같은 인과와 윤회는 각자의 뒤바뀐 생각과 잘못된 행동이 가지가지의 업을 불러일으키고 그 업식이 가지 가지의 차별된 경계를 나타낸다.
예컨데 신동이 나왔을 때, 그 천재적인 재능이 부모를 잘 만났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자신의 결과물인 것이다. 다만 부모는 환경이라는 도움을 준 것 뿐이다. 성공의 요인이 주변사람의 도움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그 자신에게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과거로부터 오랫동안 축적되고 쌓여온 것이다.
다른 종교에서는 ‘인간의 삶은 결코 신의 지배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하지만 불교에서는 그 삶을 지배하는 것은 나고 그 원인은 나의 마음가짐과 행동 즉 업력이라고 말한다.
보살에게는 원력이 있지만 중생에게는 원력이 없다. 오랜 세월동안 축적된 힘이 있어야 원력이 생기는 것이다. 중생에게는 업력이 있는데 이 업력을 서원의 힘과 원력의 힘으로 바꾸어야만 천도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사나 천도의식은 마음을 바꾸어주는 의식이다. 천도제를 할 때 대게는 누군가에게 해 주는 것이라 생각 하는데, 이것을 나로 돌려 보면 자신이 천도가 되지 않고서 남을 천도해 줄 수 없다. 그러므로 자신이 열심히 사는 것이 자신을 천도하는 길이고 조상을 천도하는 것이다. 순화된 영가는 상대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지만 순화되지 못한 영가는 좋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스님이 영단에 영가축원을 할 때 말미에 ‘영가복위기부(靈駕伏爲記付)’라고 축원을 한다. 복위란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제사를 모실 때 하는 것이고, 기부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제사를 지낼 때에 하는 것인데, 그 이유는 그 영가가 천도 되기 위해서는 영가의 앞길에 막힘이 없어야 하기에 영가가 복위가 되고 또한 기부가 되어서 그 영가와 인연이 있는 여러 영가들을 천도하는 것이다. 인연 있는 영가들이 편안해야 쉽게 천도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업력의 힘에 의해서 미래가 결정 되므로 지금 어떻게 행동하고 무슨 생각을 하느냐 하는 것이 미래의 삶을 바꾸는 가장 중요한 열쇠이다. 우리들 윤회의 주체는 업식 즉, 팔식 아뢰야식(阿賴耶識)이다. 아뢰야식은 바로 우리의 저 깊은 곳에 있는 마음이다. 이 아뢰야식이 윤회를 하는 것이다. 아뢰야식은 생을 받는 근본 식으로 가지 가지 사건을 보고 사물을 접하고 사람을 상대한 정보를 수집하였다가 인연이 부합되면 가지 가지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내가 무슨 행동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윤회의 주체가 업식이고 그 업식, 인과는 자업자득이라고 말하는데, 어떻게 천도가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여기에 바로 불보살님의 자비의 원력이 요청되는 것이다.
돌을 물에 던지면 그냥 가라앉고 말지만 배에다 올려 놓으면 백 개의 돌이라도 뜰 수 있는 힘이 있다. 천도란 후손과 여러 인연있는 자들의 원력과 불보살의 자비의 원력이 바로 배와 같은 것이다.
가지력(加持力) 즉, 더해주시는 힘 보태주시는 힘이 있어야 한다. 보호해주고 더불어 해주고 힘을 보태주시는 힘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불보살님의 원력에 의존함으로써 우리가 업을 승화시킬 수 있는데, 이러한 행위가 살아생전에 업력에 의해서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된 생명을 보다 나은 곳으로 인도하는 것이 천도인 것이다.
결국 조상님을 천도하기 위해서는 자신도 천도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자신이 열심히 하는 것이 자신도 천도하고 조상님도 천도하는 것이다.
천도는 불보살님의 대비력(大悲力)과 자신의 회심(回心)으로써 좀더 나은 삶으로 전환이 되는 것이다.
또한 고통을 받는 망령은 인연자의 정성과 노력을 기다리고 항상 인연자가 구원의 손길로 천도해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그런 인연있는 자에게 꿈이 좋지 않다든지 장애가 있다든지 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가 정신적인 순화를 얻고 인생을 바르게 살아갈 때 이것 또한 천도활동인 것이다. 사실 제대로 된 천도란 생멸이 없는 것이다. 생긴 것은 반드시 없어지기 마련이므로 죽지 않으려면 태어나지 말아야 한다. 결국 생멸이 없는 것을 깨닫지 않고서는 천도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제사에서 늘 생멸이 없는 것을 깨달으라는 뜻으로 “영원담적(靈源湛寂) 무고무금(無古無今) 묘체원명(妙體圓明) 하생하사(何生何死), 신령스러운 근원은 고요한 것이라 옛날도 없고 지금도 없다. 우리의 신령스러운 묘체는 밝고 둥글어서 언제 태어나고 언제 죽은 것이 없다.”고 하여 영가를 깨우치고자 한다.
집착이 없는 삶, 생멸이 없는 삶이 최상의 삶인데 우리가 그렇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개인의 삶도 순화 시키고 여러 인연자들의 삶도 순화시켜서 모두가 편안하도록 하자는 것이 백중기도요 천도제인 것이다.
우리가 천도의 효(孝)를 가장 마지막의 효요 최상의 효라 한다. 효를 말 할 때 물질로서 보살피는 양효(養孝), 공경을 다하는 경효(敬孝),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는 심효(心孝), 불법으로 인도하여 참기쁨을 드리는 법효(法孝) 등이 있지만 출세간적인 효란 망자의 천도이다.
망자라는 것은 현생의 부모님 뿐만 아니라 먼저 가신 조상님과 나아가 모든 인연자를 말한다. 살아있는 자든 죽은 자든 하나의 영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생자는 육신을 지닌 영이고 망자는 육신을 떠난 영이다. 살아있는 사람은 그것을 생각이나 마음이라 부르고 죽은 자에게는 영혼이나 식이라 부른다. 살아있는 사람은 마음으로 움직이고 죽은 사람은 식으로 움직인다.
영(靈)들이 사는 모습은 실로 다양한다. 편안한 영이 있는가 하면 고통스러운 영이 있고, 가진것이 적어도 넉넉한 영이 있는가 하면 가진 것이 많아도 불평하고 불안한 영이 있다. 유난히 원망하고 집착하고 괴로운 영이 있는가 하면 무상의 이치를 잘 관찰해서 넉넉한 마음으로 여유롭게 사는 영도 있다. 그렇게 살다가 이 영은 잠시 머물든 육신의 집을 떠나서 식의 세계로 옮겨가는 것이다.
맑은 식을 가진 영은 생자에게 도움을 주지만 그렇지 못한 영은 스스로도 괴롭고 다른 이인자들에게도 장애를 끼친다. 옆에 마음이 편안한 사람이 있으면 따라 편안해지고 마음이 고약한 사람이 있으면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과 같다.
그래서 모든 망자를 위해서 법식을 베풀고 해탈의 법문을 해드리는 천도제를 올리는 이유가 그것이다. 육신을 가진 영과 달리 식으로 사는 영들은 육신으로 인해서 소멸되었던 다섯 가지 능력 즉 영가 오신통(五神通)을 얻는다고 한다.
육신을 떠난 영은 식이 아홉 배가 밝아진다. 그래서 생각하고 이해하는 폭이 아홉 배가 많아진다. 그래서 평소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했던 것도 영들은 능히 알아듣는다.
첫번째는 '호명즉지(呼名卽至)', 곧 이름을 부르면 바로 온다. 이름 부른 사람이 아무리 멀리 있더라도 시공을 초월하여 바로 온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혜안천리(慧眼千里)', 눈으로 천리 밖을 볼 수 있다. 산 사람은 종이 한 장 너머의 일도 보지 못하지만 영의 세계는 식으로 살아가는 세계이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에 매이지 않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세번째는 '장벽무애(障壁無碍)', 영의 세계에서는 문과 벽과 같은 장벽이 있어도 거침없이 지나다닐 수 있다. 영가가 지나다니지 못하는 것은 부처님의 금강보좌와 어머니의 아기집(胎) 뿐이다. 이곳에 들면 의식을 잃어버린다고 한다.
네번째는 '지인심명(知人心明), 사람의 마음을 먼저 안다. 과일과 음식을 차려 재를 지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실한 마음으로 조상님을 축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생각을 냈을 때 영가는 벌써 알아차린다. 형상을 보지 않고 마음을 읽기 때문이다. 제삿상을 아무리 잘 차려놓아도 재를 모시는 사람의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으면 영가는 그 생각을 읽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영가가 화를 내게 되고 제사를 지내지 못한 것 보다 못하게 되는 것이다.
다섯번째는 '족불이지(足不離地)', 영가는 땅을 여의지 못한다. 여기서 땅이란 모든 것이 존재하는 바탕을 뜻한다. 살아 있을 때 몸뚱아리와 물질 세계에 매여 살기 때문에 죽어서도 몸뚱아리나 식구, 재산에 끄달리게 된다. 몸이 없어도 몸에 집착하든 습이 있어서 그런 것이다.
그래서 영가를 천도한다는 것은 중요한 것이다. 이 세상은 모두 거대한 인연에 의해서 형성되고 유지된다. 만일 이 인연들이 편하지 못하다면 나 또한 편하지 못할 것이고 나의 일 또한 편하지 못할 것이 당연한 것이다. 주변이 편안 할 때 나도 편안한 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결국 천도란 나를 편안하게 만드는 것이고 주변을 편안하게 만드는 것이고 세상을 편안하게 만드는 것이다.
물고즉령(物古卽靈)이라는 말이 있다. 물건이 오래되면 신령스러워 진다는 것이다. 맑은 기운을 가진 물건은 나에게 맑은 기운을 주는데, 맑지 못한 기운을 가진 물건은 맑지 못한 기운을 준다. 결국 나이가 들수록 내가 주변에 향기를 풍겨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천도는 주변을 향기롭게 만드는 것일 것이다.
그러므로 불자로서 백중 우란분절 천도를 해야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열심히 기도를 하여 나를 신령스럽게 만드는 일에 동참해서 주변을 천도되게 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 게시물은 백련사님에 의해 2015-04-28 18:02:31 백련사 주지스님 소참법문에서 복사 됨] http://www.baekryunsa.org/bbs2/board.php?bo_table=brs_bub02&wr_id=129 [이 게시물은 백련사님에 의해 2015-05-21 05:50:49 교리상담실에서 이동 됨]

☞특수문자
h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