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련사

홈 > 신행생활 > 주지스님 소참법문주지스님 소참법문


총 게시물 60건, 최근 0 건
   
우리는 동업중생-불기2550년(2006)06-03 BTV법회
글쓴이 : 백련사 날짜 : 2009-01-08 (목) 22:56 조회 : 2862
이 름 :
백련사 [등록일 : 2006-06-09 오후 7:01:00]
제 목 :
우리는 동업중생-불기2550년(2006)06-03 BTV법회
요즘 산사에는 송화가루가 많이 날려서 여기저기 잔뜩 쌓이곤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며 ‘저 생물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세상은 열심히 사는 사람의 몫이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열심히 연기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존재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살고있다. 시간과 공간이 어우러져서 우리의 삶이 존재하는 것이다. 시간이 맞지 않으면 시대가 달라지고 공간이 맞지 않으면 세계가 달라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같은 시대 같은 공간 속에서 살고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동업중생(同業衆生) 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만남들은 시간과 공간이 맞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시간과 공간속에서 연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진리는 연기라고 하신 것이다.
아함경에서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 모든 것은 신의 뜻도 아니고, 운명적인 것도 아니고, 우연도 아니다. 오로지 연기인 것이다.”라고 하셨다. 우리 모든 존재는 연기의 중심에 있으며 연기의 주체는 나 자신인 것이다.
우리의 인생을 나무의 나이테에 비유를 한다. 나이테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동안 풍상을 겪고 여러 인연들이 모이고 쌓여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과거가 쌓이고 모여서 현재가 되고, 과거와 현재가 쌓이고 모여서 미래가 되는 것이다.
연기론이라는 것은 결국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살펴본 만물의 생성과정에 관한 일체의 고찰이다. 그런데 연기한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법칙에 의해서 연기하게 된다. 이것을 연기의 4법칙이라고 하는데, 인과(因果)의 법칙, 인연화합(因緣和合)의 법칙, 상의상관((相依相關)의 법칙, 법주법계(法住法界) 의 법칙이 그것이다.
인과의 법칙이란 모든 존재는 원인에 의해서 결과가 있게 된다는 것이고. 인연화합의 법칙이란 모든 존재는 혼자서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인과 연에 의해서 연기하게 된다는 것인데, 인과 연이 서로 화합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상의상관의 법칙이란 세상의 모든 존재는 혼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의지하고 서로 관계되어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것이 살 때 저것이 사는 것이고, 이것이 없어져야 저것이 없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연기의 법칙이나 진리들은 누가 만든 것이 아니라 본래 이 우주법계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법주법계의 법칙이다.
부처님께서는 잡아함경에서 “연기법은 내가 만든 것도 그 누가 만든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여래의 존재와 무관하게 법계에 항상 머물러 있다. 여래는 이 법을 깨달아서 중생들을 위해서 설법하고 깨닫게 하느니라.”라고 하셨다.
우리의 인생이 마치 나무의 나이테와 같은 것이라고 했었는데, 나무의 나이테는 나무의 역사이다. 나무의 역사가 그대로 축적되어있는 것이다. 우리가 업이라는 말을 하는데 수 없는 과거생에서부터 현생까지의 업이 아뢰야식(阿賴耶識)에 고스란히 저장되어있고 그것을 다시 우리가 쓰는 것이다. 나무의 나이테 속에는 태풍이나 장마, 가뭄이나 큰 추위등이 그대로 나무에 나타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가 기도하고 수행하는 것은 비뚤어진 결을 바르게 만드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옛날 당태종은 평생을 전쟁터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화살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한 신하가 화살을 잘 만들어서 바쳤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을 본 다른 신하가 당태종에게 고하기를 “폐하 그 화살은 나무의 결이 바르지 않아서 결코 바르게 날아가지 않을 것입니다.”하였다. 그래서 당태종은 그 화살을 쏘아보았고 역시 바르게 날아가지 못했다. 그래서 그 화살을 부러뜨려보니 결이 바르지 못하였다 한다.
또 당태종이 남긴 말 중에 “마상(馬上)에서 득천(得天)은 할 수 있으나 마상(馬上)에서 치천(治天)은 할 수 없다.”라는 말이 있다. 이후 당태종은 사람을 골라서 쓸 때에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의논을 많이 하고, 자신의 이야기는 적게 하고, 한 말은 실천을 하였다고 한다.
납으로는 보검을 만들 수 없다. 오직 오랫동안 재련되고 단련된 순수한 강철로만 보검을 만들 수 있다. 장인의 수 없는 재련과정에 의해서 아주 작은 결들이 모이고 모여 그 무엇으로도 부러지지 않고 자를 수 없으며, 또 그 어떤 강한 것도 잘라낼 수 있는 보검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고생없이 살아온 사람은 작은 시련 하나에도 무너지고 말며 작은 말 한마디에 상처를 입는다. 우리가 아무리 금강경을 읽고 외운다 해도 그것이 우리의 삶 속에서 실천되어지기는 힘들다. 행동이나 말에 걸림이 없는 경계에 이르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장인이 악기를 만들 때에도 나무의 결을 보고 만든다고 한다. 재료의 선택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과연 우리의 몸과 마음이라는 재료를 제대로 준비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가 수행하고 정진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을 간혹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에 비유한다. 야마무광자표고(野馬無韁自 )라는 말이 있다. 야생마는 들에서 풀을 뜯오먹고 살아왔기 때문에 자기 맘대로 살고있다. 그래서 고삐가 없어 자기 마음대로 날뛰며 살고있다는 것이다. 마치 물가에 내어놓은 아이처럼 잠시만 눈을 돌리면 위험에 빠지기 일쑤이다. 우리는 길들여지지 않아서 자재력과 절재력이 부족하여 그저 눈앞의 이익을 쫓으며 칼끝에 발린 꿀을 빨아먹다 혀를 다치게 되는 것이다.
심우도를 보면 소가 나온다. 그 소는 바로 자신의 마음이다. 마음의 흔적을 발견하고 마음을 찾아내어 길들여서 집으로 끌고와서는 다시 중생구제를 위해서 바깥으로 나가는 것을 형상화 해놓은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모른다. 하루아침에 우리의 마음이 길들여지고 다스려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하고 정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진정한 정진은 중도에 그만두지 않는 것이라 하였다. 우리는 오랜 생에 걸쳐 축적해온 업력으로 인해서 자기의 본성을 지키지 못하고 혼란속에 살 수 밖에 없다. 이것을 수행과 정진과 기도를 통해서 본성을 회복하는데 이것을 깨달음이라 하는 것이다.
당서(唐書)의 문예전(文藝傳)에 ‘마부작침(磨斧作針)’이라는 표현이 있다. 도끼를 갈아서 바늘을 만든다는 고사성어이다. 이백(李白)은 학문에 뜻을 두고 상의산(象宜山)에 들어가 공부를 했다. 그러나 도중에 싫증이 난 그는 산에서 내려와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냇가에 이르자 한 노파가 바위에 대고 도끼를 열심히 갈고 있어서 그 까닭을 물었다. 노파는 도끼를 갈아서 바늘을 만들려고 한다고 대답했다. 기가 막힌 이백이 반문했다.
'아무리 도끼를 간다고 해도 어떻게 바늘이 되겠습니까?'
노파가 태연히 대꾸했다.
'도중에 그만두지 않고 열심히 계속해서 간다면 바늘이 될 것이다.'
그 말에 이백은 크게 깨달았다. 그래서 집으로 가려던 생각을 버리고 다시 산으로 올라가 열심히 공부했고 결국 대문장가가 되었다.
과연 나는 얼마나 마부작침의 마음이 있을까? 기도하는 것, 염불하는 것, 사경하는 것, 독경하는 것, 사업하는 것 등. 눈앞의 작은 이익과 작은 성취와 작은 욕망에 나의 몸과 마음이 그냥 쓰러지고 말지는 않았는가. 그만두지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될 것이라는 것이 정진의 마음이다.
우리의 기도는 필요에 의해서 한시적으로 잠깐 하다가 필요하지 않으면 그만두는 것이었다. 나를 위해서건 남을 위해서건 기도나 수행이나 정진을 할 때에는 끊임없이 하여야 한다.
타성일편(打成一片) 이라는 말이 있다. 쳐서 한 조각이 된다는 뜻이다. 우리가 무엇을 하던 뒤로 물러서지 않고 스스로 “이것이구나!” 하는 확신이 생길 때가 있다. 그것이 타성일편이다. 이것이 생력처(省力處)요 득력처(得力處)이다.
공부를 하다가 힘만 들고 잘 되지 않다가 쉽게 되어질 때가 바로 힘이 덜어지는 시기를 생력이라 하고, 힘이 생겨서 할 수 있는 시기를 득력이라 한다. 누구나 그 시기에 도달할 수 있지만 대부분이 도달하기 전에 중도에서 포기해 버린다.
어떤 스님이 오랫동안 고생을 하고 요즘은 같이 지내고 있는데, 그 스님께서 말하기를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는 내가 잘 못사는 것이 나만 잘못되는 것인 줄 알았는데, 내가 잘 못사니까 주위가 다 피곤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신을 위해서 사는 것이 사실은 남을 위해서 사는 것임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고 하였다.
자신의 실패는 주위 많은 사람의 실패이다. 이것이 바로 연기고 인연이다. 이 세상은 인연공동체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만 다치고 피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주의의 많은 사람이 다치고 피해를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더욱 더 세상을 잘 살아야 하는 이유이다.
정진은 이와 같은 마음을 계속 유지하고, 중도에 그만두지 않고, 늘 자신을 살피고 다스리는 것이다. 우리는 그 힘을 부처님의 지혜와 복덕에 의지하여 얻고자 하는 것이다.
여름은 정진하기 힘든 계절이다. 마부작침의 마음으로 생력처, 득력처가 있기까지는 수많은 고난이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불보살님의 지혜와 가호에 의지해서 무더운 여름 야생마와 같은 우리의 마음이 함부로 날뛰지 않는 부처님의 그늘 속에서 평안한 날들이 되기를 바란다.
[이 게시물은 백련사님에 의해 2015-04-28 18:02:31 백련사 주지스님 소참법문에서 복사 됨] http://www.baekryunsa.org/bbs2/board.php?bo_table=brs_bub02&wr_id=132 [이 게시물은 백련사님에 의해 2015-05-20 17:53:15 교리상담실에서 이동 됨]

☞특수문자
hi